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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아기와 나 Sep 29. 2017

어쩌다보니, 장편 영화

영화 <아기와 나> 릴레이 연재 :  첫번째  - by 한만욱 촬영감독

<아기와 나> 한만욱 촬영감독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을 좋아한다. 거기 보면 총잡이 빌리 더 키드가 자신과 무언가 앙금이 있는 친구를 우연히 마주치고는 어찌저찌 말을 몇 마디 나누는 듯 하다가 결국 결투를 하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모르긴 몰라도 그 앙금이란 게 대화로 해결이 가능한 정도의 선인데다가 주변 사람들도 꼭 이래야만 하겠느냐고 우려 섞인 말을 건네지만 두 사람은 등을 마주대고 선 후에 꼭 열 발자국을 걸어가서 서로 총을 쏘고야 마는 것이다. 왜냐면 매우 바보 같게도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영화란 걸 만들어보겠다고 카메라 언저리에서 깨작깨작거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가끔, 스스로에게 그런 종류의 바보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이 또한 엄연히 직업의 일부일 것인데, 왜 이토록 적은 보수와 불규칙한 생활과 예민한 인간들의 기싸움을 견뎌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죽네 사네 해서 만들어진 영화는 과연 몇 명이나 되는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와 같은 생각들을 하노라면 문득 허무해지면서 얼핏 누군가 꼭 이래야만 하겠느냐고 충고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지만 뭐 어찌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이것밖에 도통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배우를 세우고 카메라를 돌리고 컷을 붙이고 편집을 해서 어찌저찌 영화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내곤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샘 페킨파 얘기부터 늘어놓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관계의 종말>은 국내명이고 원제는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 올시다.



나이는 어느덧 서른 즈음..

장편 영화같은 거를 한번 만들어보아야 하지 않겠나


돌이켜 보면 문제는 항상 샘 페킨파 같은 인간들이다. 세상 어딘가는 그렇게 대단한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찌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한국 영화 아카데미에 진학해 몇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는 어느덧 서른 즈음에 왔고 역시나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기도 하고 해서, 기왕 자초한 인생,장편 영화라는 거를 한번 만들어 보아야 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영화 아카데미는 1년의 정규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장편 영화 제작 과정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파수꾼>, <소셜포비아>,<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연애담>과 같은 작품들이 영화 아카데미 장편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로, 몇십 몇백억이 들어가는 상업 장편영화에 비하면 미세한 수준의 제작비가 주어진다만 그런 만큼 본인과 같은 쪼렙도 샘 페킨파 비슷한 거!!를 외치면서 선뜻 카메라를 잡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하겠다.



손태겸 감독과 장편영화에 도전하다


당시 장편 과정의 연출 중 한 명에는 손태겸 감독이 합격해 있었다. 그와는 학부 동기이자 영화 아카데미 동기이며, 몇 편의 단편 작업을 함께 하며 손발을 맞춘 적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개그 코드가 잘 맞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안성의 좁은 자취방에서부터 대학로와 흑석동의 강의실, 홍대 길거리까지 십여년 넘는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각자 버전의, 말하자면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 같은 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도 우리는 비슷한 생각을 하지않았나 싶다. 이걸 이렇게 좋아하는 만큼, 언젠가는 부족한 깜냥으로나마 장편 영화라는 걸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기와 나>는 그가 예전부터 장편 영화로 만들어 보고자 하던 이야기로, 높은 파고의 감정을 피해가지 않는시나리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거기에 그걸 마냥 신파로만 풀어가지는 않을 거란 믿음도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던 - 말하자면 좋은 영화 비슷한 거.를 함께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때는 2015년 여름, 우리는 <아기와 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첫 장편 영화였다. 정말이지 샘 페킨파 같은 사람들만 만드는 줄만 알았던.



*영화 <아기와 나> 브런치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에서 한만욱 촬영감독의 두번째 이야기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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