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아기와 나 Oct 17. 2017

어쩌다보니, 크랭크업

영화 <아기와 나> 릴레이 연재 : 두번째 - by 한만욱 촬영감독

데릭 시엔프랜스의 <블루 발렌타인>을 좋아한다. 거기 보면 라이언 고슬링과 미셸 윌리엄스가 삶에 지친 커플로 나오는데, 그쯤 되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저들은 할리우드 배우들이고 이것은 만들어진 영상인 거야. 란 어쩔 수 없는 느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는 이상하리만치 1도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은 게 아닌가. 말하자면 실재하는 사람들이 진짜 감정을 보여주고, 카메라는 그것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기록하는 데 충실했다란 느낌. 우와 씨 저런 건 어떻게 하는 거지?

시나리오를 보며 구상 중인 한만욱 촬영감독


프로덕션은 시작되었다.


어떻게 하는건지는 1도 몰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프로덕션은 시작되었다. 장편 프로덕션이 굴러간다는 것은 차라리 생활에 가까운 일이어서, 우아하게 정시 출근하여 에스프레소 한잔과 시나리오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시네마가 지닌 운동성의 모서리를 고민하거나 하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독립 영화니까요, 이건. 대신 우리는 한국 영화아카데미에 속한 서교동 모처의 사무실에 모여 수많은 문제들과 씨름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가진 제작비 통장 잔고로는 좀처럼 해결이 쉽지 않은 일들이 산재해 있었고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어떻게든 맨 땅에 헤딩해 가면서 방법을 찾아내던지,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밥이나 먹고 와서 다시 헤딩을 하는 것. 당시 그런 마음을 안고 수도 없이 찾았던 사무실 건너편 쉐프 차이나란 이름의 중국집은 올해 초쯤 라면집으로 바뀌었고, 주변을 지날 때마다 문득 샘 페킨파의 부고를 받은 것마냥 복잡한 기분이 들곤 한다. 저기서 간짜장에다 양장피 놓고 때려 먹은 소주가 몇 병인데...

촬영 내내 동고동락 했던 <아기와 나> 의 스태프들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그렇게 헤딩을 거듭하며 차차 <아기와 나>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우선 주인공 도일의 집으로 설정한 4인 가족의 주택을 촬영에 필요한 분량만큼 빌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당연하게도 세트를 지을 여유 같은 건 없었기에 우리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는 손태겸 감독의 집에 쳐들어가야 했다. 가족들은 몇주간 친척집에 머물게 한 채 남의 집 살림살이를 뒤집어 엎고는 다시 영화 속 집으로 세팅한 후에 촬영을 시작했다.

<아기와 나>를 연출한 손태겸 감독


손태겸 감독의 집이자 실제 촬영 장소였던 집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아기였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엔 아동도 아닌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아기가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여러 대역을 캐스팅하자! 인형을 쓰자! 이런 시나리오를 쓴 사람을 매우 치자! 와 같은 몇 가지 대응책을 고민해 보았으나 역시나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그 나이대의 아기치고는 놀라우리만치 낯을 가리지 않았던 이보림 피디의 사촌 동생 예준이가 캐스팅되기는 했으나 역시나,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영화 촬영장 같은 곳에서 모르는 사람 품에 안겨서 울지 않을 수 있는 아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예준이 등장하는 장면은 항상 테이크 중간에 울음을 터뜨린 예준이를 달래느라 촬영이 지연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실제 아기가 울어야 하는 장면은 또 애를 울려야 하는데, 도일이 한밤중에 일어나 우는 아이를 달래는 장면에선 실제로 감기 기운이 있던 예준이가 정말 아파서 우는데도 카메라를 돌리면서 눈앞의 장면이 잘 나오고있는지 관찰하고 있는 스스로가 정말이지 싫어지곤 했더랬다. 정말로, 쉽지않다. 란 소리가 절로 나오곤 했다.

 

아기 방 촬영 시 현장 메이킹 사진


 쉽기만 한 일뿐이라면 좋은 영화 만들기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그런 수많은 어려움의 와중에도 손태겸 감독과 항상놓지 않고자 했던 것은 이게 진짜 감정인가, 우리가 뭔가 잘못 생각해서 섣부르게 꾸며진 것을 좋다고 생각하고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계심이었다. 그래서 촬영의 대부분을 트라이포드에 고정하는방식보다는 카메라를 들고 조그만 움직임에도 반응할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블루 발렌타인>처럼. 아니, <블루 발렌타인 근처 어디쯤>정도라도. 항상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장면들이 좋아해 마지않는영화들의 옷깃이라도 스칠 수 있었으면. 내게 그토록 와 닿았던 영화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아기와 나>의 배우들은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자신들의 극중 역할에 충실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고, 어깨에 얹은 카메라로 그걸 바라보다 보면 힘든 만큼이나 짜릿한 순간들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보았을 때 받은 인상처럼, 비록 영리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전달하고자 하는 한 가지 강렬한 감정에 충실하다는 느낌. 그렇게, 처음으로 만드는 장편 영화는 수많은 맨땅에 헤딩을 거치며 어찌어찌 크랭크업까지 왔다. 쉽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처럼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 다음화에서 한만욱 촬영감독의 세번째 이야기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리며 ^^

   아래 이벤트도 많은 신청 부탁 드립니다. >> 참여 신청  https://goo.gl/forms/WSAHhVE45PK2qzgt2

             >> 참여 신청  https://goo.gl/forms/WSAHhVE45PK2qzgt2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보니, 장편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