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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Dec 27. 2022

[,] 어린왕자와 나의 첫 만남

지금은 아니지만 중학생 때 나에게 《어린왕자》는 좀 시시했다. ‘어린왕자? 왕자병이야, 뭐야.’ 막상 읽어 보니 어린왕자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지만, 삐뚜름하게 보기 시작하니 어린왕자의 모든 행동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특히 소설 속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태도가 그랬다.


비행기 엔진 사고로 사막에 떨어진 ‘나’에게 어린왕자는 대뜸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심지어 ‘나’는 자고 있었다! 속으로 ‘이 버릇없는 꼬마 좀 보소. 부탁하는 자세가 안 되어 있잖아?’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린왕자는 지구에 오기 전 들른 다른 별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썼지만 ‘나’에게는 대뜸 반말을 썼다.(번역을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맞닥뜨리자 얼떨결에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 양을 그려준다.


하지만 이 까다로운 아이는 세 번이나 퇴짜를 놓는다. 엔진 수리가 급했던 '나'는 결국 상자 하나를 그려주며 이 안에 네가 원하는 양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린왕자는 이게 내가 원하는 양이었다며 얼굴이 환해진다.


생각해 보니 국어 교과서 탐구활동에 이 대목을 인용해 놓고 ‘나라면 어떤 양을 그렸을지 자유롭게 상상해보자’, 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문학의 가치 중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양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 아이가 어른인 ‘나’를 휘어잡는 말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이후에도 어린왕자는 ‘나’가 비행기를 수리하는 일을 방해했고 ‘나’는 그걸 귀찮아했지만, 어린왕자가 한 마디만 하면 이내 미안해하며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했다.


이후 어떤 문학작품을 읽어도 어린왕자와 ‘나’의 첫 만남만큼 매력적이고 기억에 남는 만남은 없었다. 양을 사 달라는 게 아니라 양을 그려 달라는 말도 곱씹을수록 묘했다. 이 상황에 꼭 맞는 고유어가 있다.


자드락거리다
남이 귀찮아하도록 자꾸 성가시게 굴다.

우리말에는 음상의 묘미가 있다. 음상은 '한 단어 안에 표현 가치가 다른 모음이나 자음이 교체됨으로써 어감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라면 '야위다'와 '여위다', '깜깜하다'와 '캄캄하다'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자드락거리다'도 음상을 활용하면 다음과 같이 바뀐다.


짜드락거리다
남이 귀찮아하도록 자꾸 성가시게 굴다. ‘자드락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지드럭거리다
남이 몹시 귀찮아하도록 자꾸 성가시게 굴다. ≒지드럭대다.
찌드럭거리다
남이 몹시 귀찮아하도록 자꾸 성가시게 굴다. ‘지드럭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부사: 자드락자드락, 짜드락짜드락, 지드럭지드럭, 찌드럭찌드럭


'자드락거리다'와 '지드럭거리다'의 어감을 비교해보면 '자드락거리다'보다 '지드럭거리다'가 어두운 느낌이다. 'ㅏ'는 양성모음 'ㅓ'는 음성모음이기 때문이다. 뜻풀이에도 '지드럭거리다'에 '몹시'가 더해졌다. 남을 귀찮게 하는 것도 느낌과 방법이 다 다르다. 대놓고 귀찮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서서 뭐라고 하기엔 고민될 정도로 드러나지 않게 성가시게 구는 사람도 있다. 위에서 자드락거리다의 뜻을 기억하는가? '남이 귀찮아하도록 자꾸 성가시게 굴다.'이다. 이 문장에 순서를 바꿔보라. 여기에 '은근히'라는 뜻을 더하면 '지근거리다'가 된다.


지근거리다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찌근거리다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지근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치근거리다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지근거리다’보다 거센 느낌을 준다.
자근거리다
조금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자근대다.
짜근거리다
조금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자근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차근거리다
좀 성가실 정도로 은근히 자꾸 귀찮게 굴다. ‘자근거리다'보다 거센 느낌을 준다.
부사: 지근지근, 찌근찌근, 치근치근, 자근자근, 짜근짜근, 차근차근
강조어: 지근덕거리다, 찌근덕거리다, 치근덕거리다, 자근덕거리다, 짜근덕거리다, 차근덕거리다


그냥 귀찮게 하는 것도 성가신데 말과 행동에 유치한 장난기가 섞여 있을 때가 있다. 야비한 의도로 치근댈 때는 떼어내기도 힘들다.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은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과는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이처럼 남을 귀찮게 하는 것도 정도와 양상이 다양하다. 그렇다면 상황에 맞게 적절한 말을 쓰는 게 한국어 화자의 의무 아닐까.


자분거리다
좀스럽게 짓궂은 말이나 행동 따위로 자꾸 남을 귀찮게 하다. ≒자분대다.
지분거리다
짓궂은 말이나 행동 따위로 자꾸 남을 귀찮게 하다. ≒지분대다.
자분닥거리다
좀스럽게 짓궂은 말이나 행동으로 자꾸 남을 성가시게 하다. ≒자분닥대다.
지분덕거리다
짓궂은 말이나 행동으로 자꾸 남을 성가시게 하다. ≒지분덕대다.
작신거리다
「1」 【…에게】【…을】 조금 짓궂은 말이나 행동으로 자꾸 귀찮게 굴다. ≒작신대다.
「2」 【…을】 자그시 힘을 주어 자꾸 누르다. ≒작신대다.
직신거리다
「1」 【…에게】【…을】 짓궂은 말이나 행동으로 자꾸 귀찮게 굴다. ≒직신대다.
「2」 【…을】 지그시 힘을 주어 자꾸 누르다. ≒직신대다.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봤다. '나'가 어린왕자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뭉클했다. 세상 만사 부정적으로 보던 십대에는 어린왕자가 '나'를 귀찮게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여전히 부정적인 가치관을 지녔지만) 지금은 어린왕자를 귀찮아하는 '나'가 답답해 보였다. 숫자는 확실히 편리하다. 그래서 어른은 숫자를 통해 세상을 본다. 하지만 숫자가 우리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어린왕자는 소행성 B612에 핀 장미꽃을 우주의 n번째 장미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로 다루었다. 그래서 이름도 필요 없었다. 자신이 돌보는 장미꽃이 유일한 장미꽃이니까. 숫자로는 이런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알면서도 책을 덮고 나면 또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니 어린왕자든 어린공주든 아무때나 나를 찾아와 귀찮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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