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구름 Oct 17. 2022

[,] 되숭대숭한 타코

카페에서 글을 쓰면 가장 좋은 점은 눕고 싶어도 누울 수 없어서 어떤 식으로든 자판을 두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좋은 점은 백색소음이다. 요즘엔 유튜브에 각종 백색소음이 올라와 있지만 역시 직접 카페에 가는 것만 못하다.


나는 의심 한 점 없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없다. 그런데 카페가 그런 친구 노릇을 한다. 카페는 나를 우울함에서 건져내려고 옆에서 되숭대숭하는 친구이다. 말소리가 아니더라도 커피콩 가는 소리, 유리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소리,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 의자가 밀리는 소리, 접시에 포크를 내려놓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꼼꼼하게 정적을 지운다. 그 소리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우울한 기분에 빠질 틈이 없다.


되숭대숭하다
말을 종작없이 지껄이다.


음식 중에서도 되숭대숭하며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타코다. 사실 얼마 전에야 처음 먹어봤다. 다른 식당에 갔다가 준비 시간에 걸려  빈속으로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충동적으로 들어간 곳이 멕시코 식당이었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해서 새우 타코 두 조각을 시켰는데 허기를 꽉 채울 정도로 푸짐했다.


한입 크게 베어 물고 볼이 불거질 정도로 꺼귀꺼귀 씹다 보면, 쫄깃하고 얇은 또띠아가 점점 눅눅해지고 사워크림과 살사소스에 버무려진 토마토와 양파, 파프리카가 상큼함과 촉촉함을 남기고 잇사이에서 뭉개졌다. 거기다 토치로 불맛을 입힌 통통한 새우의 탱글거리는 식감이 기분좋은 저항감을 남기면서 으깨졌고 고수의 시원하고 매콤한 향이 마지막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입안이 여러 식감과 맛으로 소란스러워지자 카페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위안을 받았다. 씹을수록 타코 속 재료는 맛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며 곤죽이 되었는데 이게 꼭 백색소음과 닮았다. 모든 재료가 한꺼번에 나에게 말을 거니 나는 어떤 말도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하고 기분 좋은 모호함에 빠졌다. 백색소음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가게를 나서자 금방이라도 꺾일 것 같던 다리가 쌩쌩해져서 얼마든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다를 나타내는 우리말(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