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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17. 2022

[,] 주저로운 에그타르트

장래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던 때, 마음이 잘 맞던 친구와 연인으로 발전했다. 한 달에 하루나 이틀 말고는 매일 만났다. 알바로 번 돈 중 80퍼센트를 데이트 비용으로 썼다. 그렇게 서너 달을 만나다 어쩌다 한달 지출을 확인하게 되었고 고시텔에서 지내는 내 생활수준에 사치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십대 초반이었는데 자주 만난 날은 한달 데이트 비용이 약 90만 원이었다. 그렇다고 만나는 걸 줄이고 싶진 않았다. 알바와 데이트 말고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운동, 그림 등 여러 취미에 도전했는데 관심도 없는 걸 억지로 하려니 금방 주니가 났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색하고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 친구를 만나지 못한 날엔 휴대전화를 붙들고 살았다. 그 친구는 대학교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조별과제, 시험, 졸업 작품 준비 등으로 바빴다. 어떤 날은 떨어지기 싫어서 강의를 따라 들었다. 따뜻한 날씨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아무 상관도 없는 곳에서 꾸벅꾸벅 조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렇게 연애에 종속적인 일상을 유지하다 문득 경각심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만나자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막상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니 내가 견디질 못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붙어 있는 게 일상이었는데 겨우 저녁이나 점심 한 끼, 그마저도 주말에 한 번 만나다 보니 주저롭기 짝이 없었고 결국 어영부영 전으로 돌아가버렸다. 심지어 알바마저 관두고 그 친구의 집 근처로 이사했고 우리는 동거와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다툼으로 헤어졌다. 미래까지 생각하던 사이였는데.


주저롭다
넉넉지 못하여 매우 아쉽거나 곤란하다.


별로 디저트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카페에서 에그타르트만 보면 충동적으로 사먹게 된다. 샛노란 빛이 이드르르하게 흐르는 자태를 보면 참을 수 없다. 손으로 들고 먹으면 한입 크기이지만 나이프와 포크로 잘라 먹으면서 조금씩 음미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다. 특히 가장자리가 페스트리로 되어 있으면 커스터드 크림의 촉촉한 맛이 배가된다. 달보드레하고 몽글몽글한 크림을 입안에 머금고 있으면 바닐라빈 향과 고소한 달걀 향이 퍼지면서 마음까지 흐뭇해진다.


에그타르트는 아껴 먹기 힘들다. 워낙 아담한데다가 한 번 부드러운 맛을 보고 나면 다음 한입을 서두르게 된다. 노글노글한 크림은 왜 그렇게 빨리 입안에서 사라지는지 야속할 따름이다. 하나만 먹고 끝내자니 다소곳하게 전시장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는 에그타르트가 눈앞에 삼삼했다. 평소엔 유혹을 잘 이겨내는 편이지만 어느 날은 홧김에 네 개를 포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와서 답삭답삭 집어먹었다. 네 개나 있으니 크림을 소심하게 혀로 더듬거리며 녹일 필요도 없었다. 페스트리가 부서지는대로 꿀꺽 삼켰다.


그런데 세 개째를 먹는 데 벌써 감흥이 떨어졌다. 네 개를 사면서도 더 사지 못해 섭섭했는데 착각이었다. 하나를 먹고 주저로운 마음이 드는 것까지 에그타르트의 매력이었다. 그 마음을 지워보고자 실컷 먹고 보니 결국 네 번째 에그타르트는 거의 억지로 먹고 말았다. 하나만 먹을 때는 나도 모르게 새물거리며 입맛을 다셨지만 네 개를 먹으니 속이 느근거려서 혼났다.


결국 연애를 망친 주범은 나였다. 고소한 맛에 욕심을 부려 느끼한 맛으로 만들어버렸다. 질리기 전에 거리를 두었다면 더 오래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분명 소담한 에그타르트였다. 그걸 억지로 양을 늘였더니 전혀 다른 음식이 되고 말았다. 부드럽고 함함해서 입에 넣을 때마다 감동을 주던 식감은 번드레하고 미끄러운 불쾌함으로 바뀌었고, 나긋나긋하고 서글서글하던 따스함은 물컹하고 번질거리는 수상함으로 변질되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됐다. 다시는 에그타르트를 망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안다. 오붓하지만 질척이지 않게, 편안하지만 매시근해지지 않게, 애틋한 맛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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