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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Oct 17. 2022

[,] 숫저운 콩나물국밥

요즘은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모를 때 가장 의욕이 넘치고 일이 손에 익으면 슬슬 열정이 사그라든다. 어린아이의 순수함 또한 세상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닌가? 세상의 비밀을 다 아는 사람에게 상상력이라는 게 있을까? 영화감독 뤽 베송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어린 시절 섬에서 장난감 없이 돌멩이를 가지고 놀며 상상력을 길렀다고 했다. 만약 그가 장난감이 가득한 도시에서 자랐다면 돌멩이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상의 지루함을 이야기할 때 흔히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하루'라고 말한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루를 다 보낸 기분이 든다. 불행히도 많은 어른이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다. 내 해결책은 어린아이의 삶을 본받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의 눈에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고 그래서 아이는 늘 호기심이 넘친다. 그래서 나도 일부러 내가 모르는 것, 서툰 것을 쫓아다녔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다가, 실용음악학원에서 노래를 배우고, 그러다 갑자기 스페인어 책을 사서 독학하고, 뜬금없이 독일어 동아리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토익 시험을 준비하고, 평소 관심도 없던 축구와 야구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하고, 아는 동생을 따라 우쿨렐레를 시작했다가, 문화센터에서 뜨개질을 배웠고, 종이접기에 빠져 온종일 색종이를 붙들고 살다가, 한 동영상을 보고 요요에 빠지기도 했고, 철학 강의를 듣거나, 식물 도감을 읽거나, 방송댄스에 도전하는 등 대중없이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 어느 것 하나 진득하게 붙들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나약한 내 의지를 탓했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새로운 걸 배운 덕에 매 시기를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내 목적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니었다. 계속 주위를 환기하며 우울함과 무기력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세상엔 아직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고 인생 다 산 것처럼 구는 건 미련한 짓이라고 자신을 다그쳤다. 낯선 세계로 들어서면 세파에 찌든 나는 사라지고 숫저운 어린아이로 다시 태어난다. 덩달아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숫접다
순박하고 진실하다.


국물 요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전자는 맑고 묽은 것, 후자는 바특하고 걸쭉한 것을 말한다. 콩나물국밥은 전자에 속하는 음식으로 개운함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다. 일단 고기를 쓰지 않아 기름기가 없어서 뚝배기를 다 비워도 속이 편하다. 평소 기름지고 열량 높은 음식으로 지친 위장도 콩나물국밥만은 배물리 먹어도 편하게 받아준다. 콩나물국밥은 달고 짜고 온갖 맛이 뒤섞여 찐득한 음식이 판치는 세상에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숫저운 산골 사람 같다. 자신을 치장할 줄 모르고 가장 맑은 국물을 우려내어 나를 감동시킨다.


살다보면 먹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오늘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지겹고 먹는 게 일처럼 느껴진다. 그럴 땐 어떤 음식을 봐도 입맛이 당기지 않고, 막상 음식을 시키면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맛이 느껴져서 질리고 만다. 식욕을 돋게 할 새로운 음식이 없을까 찾아봐도 결국 내가 아는 그 맛일 뿐이다. 어떤 음식은 하도 여러 맛이 섞여 이게 무슨 맛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다양한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 음식도 미각을 사로잡기 위해 여러모로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하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나까지 힘겨워진다. 잠깐 혀가 즐거울 진 몰라도 다시는 그 음식을 먹고 싶지 않게 된다. 이 음식, 저 음식을 전전하다 마침내 콩나물국밥에 도달했을 때 깨달았다. 먹는 건 지겨운 일이 아니라 행복한 경험이라는 것을.


어떻게 사람이 늘 치열하게 살겠는가. 살다 보면 힘을 쭉 뻬고 내 모습 그대로 세상과 마주해야 할 때가 온다. 어떻게든 돋보이려고 내가 아닌 것들로 꽉 채운 인생을 시원하게 털어내고 다시 시작한다면 어떨까. 투박하고 서툰 모습이라도 그게 본래의 나라면 감출 필요가 있을까.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조금도 지치지 않은 것처럼, 순도 높은 나로 씩씩하게 살아보자. 나에게 묻은 양념은 결국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남들 앞에서 콧대 세우고 싶어서 열심히 눈비음했지만 이제는 본래의 나를 찾아야 할 때이다.


사실 나는 멍청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는 사람이다. 남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고 별볼일없다. 세상 물정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겠고 배우고 싶지도 않다. 지도를 보고도 이게 어느 쪽에 있는지 못찾는 지독한 길치이자 실제 인생에서 길치이기도 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헤맨다. 하지만 그게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낯선 곳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신기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렸고 나만의 모험을 떠난 기분이었다. 한 나라의 왕이 되지 못한들 어떠랴. 모든 나라를 영원히 탐방하는 자유로운 나그네로 살면 그만인데. 업적 같은 건 남기지 않아도 좋다. 텁텁함 하나도 없이 개운한 맛 그대로, 맑은 정신만 지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 모든 음식이 튜닝 되어도 콩나물국밥만은 순정 그대로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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