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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Feb 06. 2021

선택적 청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FM보이(2019)/육일공/네이버 웹툰

그 어디에도 생각한 그대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상대가 말하는 대로 듣지 않는다. 발화자에서 청자에 이르기까지 말은 여러 번 모습을 바꾼다. 그리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면서도 서로의 진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럴수록 말은 더 많아지고 길어지지만 진심이란 것은 점점 미궁 속으로 모습을 숨긴다.


만화에서나 존재할 법한(!) 착하고, 잘생기고, 성실하고, 순수한 고등학생 오사랑은 타인이 하는 험한 말을 듣지 못한다. 그에게 욕설과 비난은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한편 입이 험하고 괄괄한 성미의 소리나는 맘대로 욕을 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녀가 아무리 성질을 부리고 거친 말을 쏟아부어도 남들 귀에는 모두 바르고 고운 말로 정제된다. 오사랑은 자신의 능력을 축복으로, 소리나는 저주로 여긴다.


부정적인 세계로부터 원천 차단당한 오사랑의 능력은 과연 축복일까? 자신이 어떤 말을 하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소리나의 능력은 과연 저주일까? 답은 바라보기 나름일 것이다. 중요한 건 축복이든 저주든 두 능력 모두 당사자에게 심각한 소통장애를 겪게 한다는 점이다. 타인의 진심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거나,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전할 수 없거나, 외롭기는 매한가지이다. 굳이 수치로 표현 하자면 두 사람의 언어는 순도 0%짜리다.


오사랑과 소리나의 특이 체질은 서로에게만은 통하지 않았다. 오사랑은 소리나가 내뱉는 비속어를 그대로 들었다. 사전에서만 보던 욕설을 실제로 들은 오사랑은 충격에 빠졌고, 그의 반응을 본 소리나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남에게 화 한 번 제대로 못 내고 천사소녀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로 남들의 기대대로 사는 것이 지긋지긋했던 그녀는 그와 급속히 가까워진다. 그들은 오해와 의심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고 상대를 볼 수 있는, 더없이 완벽한 한 쌍이었다.


사람들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곤 한다. 우리는 쉽게 오해당하고 또 오해한다. 그러다 보니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고 타인의 기대에 맞춰 연기하는 일은 흔해졌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평생 남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남의눈에 맞춰 행동하는 사람은 갈수록 더 큰 기대에 맞닥뜨리고 결국엔 감당하기 버거운 지경에 이르러 무너지고 만다.


사랑을 갈구하는 건 누구나 갖고 있는 욕망이다. 그러나 구걸로는 결코 사랑을 얻을 수 없다. 용기 있게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 역시나 사랑을 주는 것 또한 만만찮은 배포가 필요하다. 어떠한 잣대 없이 상대방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그 사람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믿는 자만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 오사랑, 소리나는 주파수 민감자라서 서로 공명이 일어나 소통에 왜곡이 없었던 것이다. 정보교사 임아영은 '진실한 소통'으로 서로 공명하게 되면 평범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요한 건 제각각인 모든 사람의 주파수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소통을 나누는 자는 한 명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모두의 기준'이라는 모호하고 부정확한 기준에 맞추려 애쓴다. 그건 공명이 아니라 내 주파수를 지우고 그 자의 주파수를 도청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사람이 있고 유일한 그 사람을 찾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계속 시도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소리나의 체질은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게 되는 것이었다. 소리나를 좋아했던 방송실 선배는 오사랑이 사이비에 빠졌으며 포교를 목적으로 소리나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비뚤어진 마음에 오사랑에 대한 질 나쁜 소문을 퍼뜨린다. 급기야 소리나를 스토킹 하기에 이르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가 꺼지라는 험한 말을 하는 데도 그는 '도와줘'라는 말로 듣고 그녀를 포기하지 못한다.


오해의 과정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보단 그 자를 바라보는 자의 생각이 먼저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소통의 우선순위는 먼저 자신의 욕망을 파악하는 것이다. 타인에게서 유발된 생각이나 느낌을 오롯이 타인의 책임으로 돌릴 순 없다. 그 속에 자신의 본심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소통을 시작하기도 전 착각의 속임수에 빠지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오사랑은 어릴 적 파양을 당하고 뒤이어 겪은 수녀님의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을 떠난다.'. '내가 관계를 망치는 주범이다.'라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래서 소리나를 좋아하면서도 말없이 그녀를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소리나는 가장 두려워야 할 것은 당장의 이별이라고 그를 설득한다. 그녀에게 불행을 떠안기게 될까 봐 겁먹었던 오사랑은 그녀의 진심에 생각을 바꾸고 두 사람은 쭉 서로의 곁에 있어주기로 약속한다.


때로 우리는 소중한 것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행여 그것을 잃게 될까 봐. 인간관계란 얼마나 허무한가.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포기하고 떠나면 지금까지 어떤 시간을 함께 했든 그 순간 관계는 끝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열성을 다해 소통해야 한다. 관계의 기본은 맞닿아 있는 것,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 소통이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을 수 있는 범위에 머무르는 것, 힘들어하는 상대방에게 내 목소리를 전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소통의 FM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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