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앞의 사람

by 남정은

나는 꽃 선물을 받고 기쁜 척만 해봤지 정말 기뻤던 적은 없다.

실용적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꽃 자체를 예쁘게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식물의 번식 기관인 꽃이 향기롭고 화려한 것은 곤충을 꾀려는 것이니까

이것을 사람에 대입해 보면 음흉한 속물이었다.

의인화라는 게 지극히 사람 중심적인 편협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더분한 이파리와 퍼벌한 나뭇가지의 가치를 다 가려버리는 것 같아서 미웠다.

아마 내가 꽃처럼 산 적이 없어서 심술이 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꽃에 무심한 태도는 꽤 오랫동안 굳건했다.

그러다 오죽 따분했던 오월 어느 날 혼자 장미 축제를 보러 갔다.

'장미'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꽃은 한 송이도 없었다.

꽃잎 생김새나 배열, 색깔, 크기까지 낯선 품종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팻말에 적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은 뚜렷했다. 하나같이 날 좀 보랄 뿐이지 숫기 없는 꽃은 한 송이도 없었다.

정원 어디에 눈길을 두든 아로롱다로롱 고운빛이 마음을 살살 녹였다.

그런데 갈수록 눈길을 끈 건 꽃이 아니라 그 꽃을 어여뻐하는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굳은 얼굴로 드바삐 걸어다니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다들 꽃잎처럼 표정이 부드러웠다.

꽃이 피워낸 건 웃음뿐이 아니었다.

꽃은 사람들 입에서 자꾸 예쁜 말만 피워냈다.

귓가에 스치는 말소리는 하나같이 포근했고

산책로를 걷는 내내 "예쁘다"라는 말을 흔히 들었다.

꽃이 그걸 해냈다.

꽃 속에서 사람들은 한껏 삽삽하고 상냥해졌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비딱하게 꽃을 바라보고 있었던가.

꽃이 그토록 화려한 건 자신을 뽐내려는 게 아니라

세상에 이렇게 예쁜 풍경도 있다고,

그러니 이 순간만큼은 마음 놓고 웃으라고 말하는 것임을 바보같이 몰랐다.

꽃은 언젠가 질 줄 알면서도 피어난다. 이 감궂은 세상에 기어코 아름다움을 보탠다.

겨우 한철인데 그 한철도 없으면 우리의 마음은 예쁜 걸 예뻐하는 힘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꽃을 더 자주 눈에 담고 싶다.

보면서 자꾸 예쁘다는 말을 되뇌고 싶다.

그러다 보면 점차 마음이 봄의 정원을 닮아가지 않을까.

누가 둘러봐도 웃으면서 거닐 수 있는 그런 정원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신기하다. 꽃이 좋아졌을 뿐인데, 사람을 더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오늘이라는 톱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