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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두리하나 Nov 23. 2018

온수행 마지막 지하철

야근후 마지막 전철 타고 퇴근하는 하루

오늘 야근하고 12시 10분 막차를 탔다.

건대역 7호선 온수행 막차 12시 10분 근무가 끝난 시간 12시 포기해야 되나 싶을 정도의 절박했던 시간이다.


6번 출구로 올라가서 7호선까지 타는 구간이 길기 때문에 마음 놓지 못하고 계속 뛰었던 것 같다.

겨우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늦어도 차비조차 주는 게 아닌데 택시 타고 갔으면 10만 원 정도 지출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비애이고 어떻게 보면 이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남들은 낭만이고 야근 수당이고 자기 발전인데 우리는 절박함이라는 것 어쩌면 이런 차이들이 평생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도 든다.

막차에 대한 낭만은 이미 사라졌다. 

절박함과 야근 수당의 차이 꼭 타야 하루 일당이 보존되는 것과 야근하면 야근수당의 뿌듯함과 영수증으로 보존 가능함의 차이 이게 결국 인생 전반의 차이라 생각된다.


막차는 술 취한 사람의 거의 없다.

막차는 절박함으로 타는 차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여기 사진에는 담지 않았지만 술 취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탄 건대역에는 특히나 사람들이 많아서 술 쉬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술 취한 사람은 오히려 10시 ~ 11시 차를 탔을 때 보다 적었다. 한두 명 보이는데 그렇게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힘들어하는 얼굴 그리고 자리는 여유가 있었다. 

다들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꼭 이 열 차를 타야 오늘 일당을 보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평생 택시라고는 타보지 않을 사람들 열심히 살지만 하루하루 절박하게 살아야 되는 사람들이 많다.


막노동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몹시 힘들어하신 모습이다. 그날의 하루가 얼굴에 보이는 것 같다.


다른 누군가도 내 얼굴을 보고 이 열차를 타기 위해 막 뛰었구나 하는 모습일 거다.


내 모습을 내가 봐도 그렇다. 중국산 신발 5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리고 옆은 터져 있고 때 묻은 백팩 작업복

뭐하나 멋진 모습은 없다. 신발은 옆에 터졌는데 버리질 못하는 것도 그런 이야기가 담긴 것 같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이다. 그냥 내 모습!!!

막차를 타야 만 하는 절박한 내 모습이 그대로 묻어 있다.


씬 소주 한잔 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쉽게 하지 못하고 혹시 실수할까 봐 건대에서는 소주 한잔 못한다. 온수역에 와서야 5000원 내고 맥주 한잔과 감자튀김 정도 마시는 게 내 일 년에 한두 번 마신 술의 전부다 


거기에 무엇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건대에서 소주를 마시면 1시간 온수행 열차를 타고 도착했을 때 그 과정에서 내 모습이 너무 처참하다. 


그건 양주가 되던 맥주가 되던 같은 이야기이다. 1시간 동안 술에 대한 후회만 한다. 온수역에서 잠시 마시는 맥주가 더 시원하고 하루 일과의 마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온수역에 오면 거의 사람이 없다. 그리고 항상 듣는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노래가 나온다. 

역에는 마지막 열차가 왔다고 더 이상 역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화장실 잠시 다녀오기도 바쁘다. 이제 이 바쁜 지하철도 쉬는 시간이다.


새벽 1시간 되어서 도착한 온수역 버스 정류장은 당연히 버스가 없다.

여긴 서울이지만 난 역곡으로 걸어간다. 


가는 길에 카페들도 문 닫았고 낙엽만 가득하다.

택시 한 대 있는데 어차피 태워 주지 않는다. 여긴 서울이지만 역곡은 부천이라 대부분은 걸어서 가는 게 맞을 거다. 


걸어서 집에 가는 길 30분은 걸어 가지만 이 길은 행복하다. 내가 오늘 이만큼 했구나 그리고 마지막 전철까지 챙겨서 타고 왔다는 제대로 지켰다는 생각이 든다. 


주머니에는 버스카드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이쁜 길도 아닌데 세상 행복하게 보인다.

택시비까지 챙겨 주던 회사에 다닐 때는 열심히 하면 그 뒤에 이야기는 없었다. 그냥 택시 타고 집에 가서 또 청구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새벽 공기는 내 찌든 폐까지 파고들고 걷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이 가방은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힘들까 하고 보면 맥북 프로 2013년도형 얼마 전 중고 팔고 바꾼 것 노트, 프린터, 이어폰, 이런 게 가득하다.

들여다볼 여유도 없다. 


사진을 좋아해서 보통 길을 가다 폰으로 찍는데 오늘은 그런 힘도 없었나 보다 사진 한 장 없다.


그래도 이틀 뒤면 딸아이와 나들이 갈 수 있다 는 기대를 안고 집에 왔다. 


가족들은 이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을 모르겠지 그냥 자고 있다. 

딸은 내일 유지원 졸업 사진 찍고 오늘 견학 갔던 꿈을 꾸고 있을 것 같다. 가장 행복한 때 아닌가 싶네.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한다. 2시 정도에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나오자!


내일에 대한 생각에 행복하게 잠든다.


이런 생각과 함께 내일은 여의도 가는구나 가방 그대로 가지고 나가면 되겠다. 1호선 타야지 갈아타야 하고 점심은 그 회사 식당에서 행복하게 먹을 수 있겠다. 6000원 커피 한잔 2000원 정도 저녁까지 일하면 사내 식당에서 6000원에 해결되고 지하철 바로 옆이라서 동선이 잘 나온다. 내일은 이동 시간은 적겠다. 


신길에서는 옥수수 사서 다혜 퇴근하고 줘야겠다. (2000원에 2개) 

6시 정시 퇴근하는 회사니깐 보통 5시 이전에 마치고 나온다.


이제 자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ZjF5NHkA-bs&t=148s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1768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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