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바닥을 닦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청소를 마치고,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고, 요리를 하며 백인 가족의 시중을 드는 모습에서 우리는 곧 그녀가 입주 가정부, 곧 하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는 이렇듯 멕시 코 중산 가정의 입주 가정부인 ‘클레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을 잠에서 깨우고, 설거지를 하고 주인 부부가 집에 돌아오면 그들을 마중하는 클레오의 일상의 삶이 꾸밈없이 보여지며 관객들은 클레오를 중심으로 이 가족의 생활을 관찰하게 된다. 이 가족의 삶 속에서 클레오는 단순한 하녀가 아니라 아이들의 큰 언니로 보이기도 하며 이 들과 친밀하며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것으로 보인다.
클레오는 가족들과 같이 TV를 보고, 식사를 같이하고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에도 동행하는 등 모든 일상을 함께하 며 얼핏 보기에는 가족 구성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를 깨는 것은 문득문득 느껴지는 계급의 벽이다.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다가도 남편의 차를 가져다 달라는 소피아의 말에 일어서야 하고, 가끔씩 소피아가 딱히 클레오의 잘 못이 아닌 일에 모진 말을 뱉을때도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그 때마다 관객은 클레오의 위치를 새삼스럽게 다시 실감하곤 한다. 그녀의 직업이 ‘하녀’라는 것을. 그러나 이런 클레오의 일상에도 소소한 행복은 존재한다. 친구 아 델라와 일과를 마치고 운동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남자친구 페르민과의 데이트가 그것이다.
영화는 클레오의 이런 일상의 낯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롱테이크를 이용한 촬영 기법이 두드러지는 데 수평적인 움직임이 강조되는 패닝이나 인물의 행적을 쫓는 트래킹 샷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촬영이 클레오라 는 인물의 삶과 그녀가 담담하게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담은 내용적인 측면과 맞아 떨어지며 후반부에 응축된 감 동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어떠한 자세나 태도를 강조하지 않고 그녀가 친구 아델라와 거리를 질주하며 영화관으로 향하는 순간,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린 후 연락이 없는 남자친구 페르민을 찾아 훈련장으로 향하는 그 녀의 순간 순간을 그저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특히 <로마>에서의 사운드는 마치 당시 멕시코시티의 작은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치 역할을 한다. 클 레오가 페르민을 찾아서 흙먼지 날리는 길을 지날 때 들리는 자동차의 털털거리는 엔진소리와 바람소리, 훈련받는 사람들의 기합소리, 클레오가 할머니와 배 속의 아이의 침대를 사러 왔을 때 폭력 사태가 벌어지고, 그 위급한 상 황에서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향할 때의 차의 클락션 소리, 급박한 사람들의 외침, 총탄 소리, 앰비언스 등이 생생 하게 펼쳐지며 우리를 1970년 멕시코시티 가운데에 있는 듯한 청각적 체험을 하게 한다. 이렇듯 인물 중심의 담 담하고 절제된 군더더기 없는 정돈된 촬영과 세심하게 설계된 사운드 레이어들이 클레오라는 인물의 삶을 함께하 며 마지막 바다 시퀀스까지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개인의 삶이 가장 역사적이다
<로마>는 1970년의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역사적 사건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개되었던 민주화 항쟁이나 시대적 배경이 묻어나올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개인의 이 야기가 곧 역사이고 역사 안에서 개인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바로 클레오가 임신한 아이의 침대를 사러 가구점을 갔을 때 창문 밖으로 목격한 ‘성제 축일 대학살’ 장면이다. 거대한 교차로에서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는 시위 의 학살 장면은 클레오의 시선을 빌려 2층 가구점에서 내려다보게 되는데 이는 가히 압도적이다. 시위 한가운데가 아닌 관조적인 시선임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기에 이 엄청난 사건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 다.
뒤이어 폭력을 피해 가구점 안으로 도망쳐온 사람들을 따라 들어와 끝내 숨을 끊는 우익 단체 인물 안에 페르민이 있다는 것, 살인자가 된 페르민의 모습을 페리오가 목격하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민이라 는 인물이 페리오 개인에게 상처를 준 인물일 뿐만 아니라, 멕시코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역사적 인물로 변하게 된다. 이 순간부터 ‘성제 축일 대학살’이라는 사건은 멕시코 역사의 일부분인 동시에, 페리오라는 개인의 인물에게 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된다. 덧붙이자면 이 날 클레오는 아이를 출산하게 되지만 죽은채로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사건들에서 페리오라는 인물의 역사를 다룬 영화가 멕시코 격변기를 다루는 영화로 확대된다. 굳이 어떠한 정치적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이러한 멕시코의 당대 사회상을 보여주며, 이로 하 여금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개인 뿐만이 아닌, 멕시코 국민들의 역사를 담은, 더 나아가 이러한 민주화 항쟁을 거친 나라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영화가 된 것이다. 이는 <로마>라는 영화의 큰 장점으로 보이며 이러한 격변기 속을 살아가고 있는 페리오 라는 인물의 삶의 이야기가 가진 힘은 더욱 강해지며 우직한 그녀의 성품을 더욱 강조한다.
도망치는 남자와 버티는 여자들
<로마>에서 남자들은 비겁하고 여자들은 강하다. 아무 이유 없이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가족을 버리고 도망치 는 아버지 안토니오와 임신 소식을 알린 후 연락이 없자 자신을 수소문해서 겨우 먼 곳까지 찾아온 페리오에게 되 려 적반하장으로 매몰찬 말을 하며 위협까지 가하는 페르민까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 는 남자들의 모습과 대비대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절망하지 않고 묵묵하게 내일을 살아가는 여자들의 모습이다.
남편이 떠난 소피아는 절망과 슬픔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남편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채우고자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로운 직업을 구하고, 아버지가 떠났다는 소식을 아이들에게 전하며 우는 아들에게 ‘우리 더 자주 모 험을 하면서 살자’ 는 말을 하며 가장 슬플 자신이 되려 아이를 위로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을 상황에 수영을 못함에도 불구하고 망설임없이 거친 파도에 몸을 던져 중력을 거 슬러 올라가며 두 아이를 구해내는 페리오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뽑힌다. 아이들을 어떻 게든 구해내 모래사장에 쓰러지듯 기진맥진해 주저 앉은 페리오를 감싸 안는 소피아와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 는 그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감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예민해져서 괜히 짜증을 내기도 하고, 남편의 외도 사실을 대화를 엿들은 아들이 알게 되자 되려 페리오에게 소리 를 지르기도 하는 소피아의 모습에서 페리오와 가족들 사이에 보이지 않은 신분의 벽이 있다는 것은 관객 모두 느 낄 수 있었을 것이다. 페리오 자신도 그 신분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고 가족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으로 보 이는데 이것은 페리오가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외적으로 숨길 수 없는 임신사실을 소피아에게 털어놓은 것 말고는 아마 페리오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페리오가 아이를 낳으러 병원으로 갔을 때 할머니는 클레오의 기본적인 개인정보를 묻는 직원의 질문에 이름과 성 말고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클레오와 그 오랜 시간을 함께 했 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은근한 선은 앞서 언급한 모래사장에서 가족이 감싸안는 시퀀스에서 허물어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클레오 의 ‘아이가 낳고 싶지 않았어요.’ 라는 대사나 소피아의 ‘우리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라는 대사가 그렇다. 한번 도 위와 같은 속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감싸 안으며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며 서로 를 의지하며 삶의 의지를 굳건히 한다. 이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에서 우리는 버림받은 두 여자의 연대와 그들 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 아마 우리는 그동안의 페리오의 삶을 따라온 것이 아닐까.
Para Libo
알폰소 쿠아론은 그래비티(2013)를 마무리한 후 다음 영화는 좀 더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했 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 멕시코에서의 유년 시절을 소재로 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키워준 멕시코 출신 의 여성 ‘리보 로드리게즈’를 주인공으로 자신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을 재현한다. 실제로 그는 그의 유년시절의 배 경이 되었던 멕시코시티의 ‘로마’라는 지역에서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과 가장 닮아 있는 집을 찾아 개조하고 그안 의 가구들과 소품들을 실제 자신의 집에 있었던 가구 등으로 채웠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기억 속의 리보와 가장 닮은 배우를 찾기위해 수천 명의 오디션을 본 후에 연기 경력이 전무한 배우를 클레오 역으로 캐스팅하고 그녀가 자연스럽게 연기할수 있도록 극 중 클레오의 친구로 등장하는 아델라 역을 실제 배우의 가장 친한 친구로 등장하 게 했다. 또 이례적이게도 영화 촬영에 용이한 순서가 아닌 영화 스토리상의 시간 순서대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자신의 오랜 기억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한 노력과 진심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희미한 기억을 재현하고자 흑백영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흑백영화를 통해 이 영화가 과거 기억을 토대로 한 영화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흑백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흑백이라는 제한된 화면 속의 공간을 자신의 기억의 색채로 채색해 나갈 수 있다. 어딘가에서 한번쯤 들어본, ‘우리의 삶이 가장 영화 같다’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화면은 첫 화면과 대비되며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다. 옥상으로 향하는 페리오의 모습을 틸트 업으로 담고 페리오가 화면에서 사라지자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간다.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서 바닥을 닦던 하녀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시선이다. 이는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자신을 키워준 여성들에게 표하는 일종의 존경으로 보인다. 아이 들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생활과 같이 가족들의 잔 심부름을 하고 빨랫감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가는 페리 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가 여전히 이 집안의 하녀라는 것을 실감하지만 처음 등장해서 바닥을 닦던 인물을 보 는 눈과는 다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무술실력을 과시하지만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에 쏜살같이 도망친 페르민보다, 자식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아이들 을 직접 마주보고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하는 아버지 안토니오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하녀인 페리오가 그들 보다 강해보이는 이유는, 그래도 불구하고, 묵묵히 삶을 제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인물이 가진 힘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속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리보를 위해서’ 라는 마지막 자막이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삶 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바치는 영화로 보인 것은 내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