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혈한은 과연 누구인가
살인자를 인터뷰하다
‘살인’ 이라는 소재는 매력적이다. 한 유명 소설가가 작품을 위해서 살인마를 인터뷰 한다. <카포티>를 보면서 최 근 여러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실화 원작의’ ‘실화 바탕의’ 라는 수식어가 붙는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 으로 제작된 영화는 이미 우리에게 놀랍지 않은 소재이다. 데이빗 핀처의 <조디악>이나 최근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의 진범이 밝혀지며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킨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그러하다. 이전의 살인 사건을 소재 로 한 영화들이 주로 살인자를 추적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살인자의 정체를 밝혀내는 수사적 관점에서 주로 진 행되었다면 최근의 경향은 조금 다르다.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살인자에 초점을 맞춘다. 살인자는 왜 살인자가 되었는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더 나아가, 대중들은 볼 수 없었던 살인자의 지인이나 친구의 관점에서 살인자의 인 간적인 모습을 조명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범죄 정당화를 부추기고 엄연히 살아있는 피해자의 유가 족들에게 모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는 힘들다. 최근 개봉해 연일 논란의 중점에 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영화 <조커>가 그렇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역시 미국의 유명 연쇄 살인마인 ‘테드 번디’ 를 소재로 테드 번디의 여자친구 였던 엘리자베스 클로퍼의 책 <The Phantom Prince : My Life with Ted Bundy>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연쇄 살인마의 여자친구의 관점에서 진행되며 여자친구의 관점에서 살인마 테드 번디를 조망하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성격을 부각시킨다. 살인자 혹은 살인자의 지인의 관점에서 새로 살인마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외에도, <카포티>를 포함해 살인자의 인터뷰를 소재로 이야기 를 풀어나가는 작품들도 두드러진다. <세븐>, <조디악> 등 살인 사건을 영화로 다루는 것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데이빗 핀처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마인드 헌터>는 FBI 요원이 에드먼드 캠퍼, 찰스 맨슨 등의 실 제 유명 연쇄 살인마들을 인터뷰 하며 그들의 범죄 유형을 분류하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작년 칸에서 아동 살해, 동물 학대 등 적나라하고 잔인한 살인 묘사로 논란을 일으켰던 라스 폰 트리에의 <살인마 잭의 집> 또한 살인 무용담을 늘어놓는 연쇄 살인마 잭과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남자의 대화로 이루어진 코멘터 리 방식의 인터뷰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살인자를 인터뷰하고, 살인자와 대화를 하는 형식이 살인 사건을 다루는 영화 매체의 하나의 방식으로서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극악 무도한 살인을 벌이는 살인자에 대하여 분노하지만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무엇이 그를 악마로 만들었고 또 그 정신 세계는 도대체 무엇으로 차 있으며 악마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인터뷰’ 라는 형식은 단순한 사실 관계의 범죄 사실 뿐만 아니 라 그 ‘살인’ 이라는 행위 한 가운데에 있는 인물에 집중한다. 바로 살인의 주체자인 살인마 말이다. 우리는 인터뷰 를 통해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 어떤 생각이었는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살인 사건 도중 어떠한 일 이 그를 폭발하게 만들었고 실행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는지, 살인 당시 그의 감정은 어땠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 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그리고 대개 이러한 인터뷰 형식은 실화 소재의 사건과 결합한다. 실화 소 재의 사건과 결합 했을때, 영화 속 살인자의 이야기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라는 힘을 가지게 되며 실제 살인자의 목소리와 겹친다. 우리는 그렇게 되면 영화 속 배우가 연기한 살인마와 실제 살인마를 겹쳐 보게 되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허구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 기 때문이다.
영화 <카포티>와 ‘트루먼 카포티’
영화 <카포티>는 유명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가 소설 <In cold blood>를 집필하기 위해 살인 사건이 일어난 캔 자스 주 작은 마을을 찾아가 그 진상을 취재하고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페리 스미스를 취재하게 되면서 일 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카포티는> 살인 사건의 진상을 다루기 보다는 트루먼 카포티가 책을 집필하기 위해 페리 스미스를 취재하면서 일어나는 일로, 책의 집필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렇듯 위에 언급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실 화와 인터뷰라는 소재가 결합된 영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트루먼 카포티는 페리 스미스에게 작가로 접근하게 되었지만 친구가 되면서부터 상황은 복잡해진다.불우 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면서 카포티는 그와 자신이 많이 닮아있다고 느끼며 그와 같은 집에서 태어나 나는 앞 문으로 나가고, 그는 뒷문으로 나간 사이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카포티가 페리에게 이성적인 사랑을 느꼈는지는 모호하게 언급되며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어쨌든 카포티에게 페리는 단지 소설의 소재를 위해서 인터뷰해야 하는
필름투데이 수 789 B599113 박수현 5번째 에세이
범죄자가 아닌 동질감을 느끼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카포티는 딜레마에 빠진다. 소설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사형 판정을 받은 페리가 죽어야하기 때문이다. 카포티는 후반부에 들어서 페리의 연락을 피하며 고통스러워 한 다. 카포티는 소설가로서 이야기를 끝내고 싶기에 그의 죽음을 바라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페리의 죽음에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고통스러워 한다.
이렇듯 영화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가 페리 스미스를 '취재'하는 과정과 그가 그의 소설 <In cold blood>를 집필하는 과정에서의 내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범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에서 벗어나 작 가이자 친구로서의 트루먼 카포티의 이중적인 태도와 선인과 악인에 대한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앞서 인터뷰와 실화 소재의 사건이 조합된 작품의 경우 인터뷰를 통해서 살인자나 범죄자의 이야기, 동기를 밝히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면 <카포티>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인터뷰에 답하는 인물 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하는 인물의 내면까지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다는 지점에서 다른 영화와 차별점을 느낄 수 있다.
In cold blood
영화 <카포티> 중 자신의 소설의 이름을 정했다며 기뻐하는 카포티에게 알빈은 이렇게 묻는다. In cold blood, 냉혈한이라는 단어는 과연 범죄를 지칭하는 말인지, 아니면 범죄자들과 얘기하는 자신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말이 다. 카포티는 이 질문에 속 시원히 답할 수 없었다. “사건의 한 조각 만 채워 놓으면 돼”, 생각보다 법적으로 사건 이 마무리가 빨리 되지 않고 페리와 딕에 대한 법적인 처분이 늦어진다. 카포티는 자신의 책 집필의 마무리를 위해 이들이 어서 사형 당하기를 바라게 되며 이 가운데 심각한 심적 괴로움을 겪는다.
뉴스 기사를 통해 트루먼 카포티의 책 이름이 ‘냉혈한’ 이라는 제목이라는 것을 알게 된 페리는 카포티에게 책의 이름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카포티는 사람들이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임의로 붙여졌으며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니라 그를 달랜다. 나는 그날의 진상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단어를 쓸 수 없노라고. 이어 서 페리가 드디어 1959년 11월 14일 밤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고백하는 장면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 한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으로, 우리는 어떠한 인물의 심연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악인의 선한 부분, 선인의 악한 부분, 영화의 후반부 부터, 이 ’냉혈한’ 이라는 단어는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호해진 다. 정말 진정한 냉혈한은 누구일까. 이것은 비단 페리나 그가 저지른 살인 만을 가르키는 단어는 아닐 것이다.
실화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
일가족 살인 사건과 수사 과정을 다룬 진실한 기록, 이것은 트루먼 카포티의 책의 부제이며 이것으로 실화 사건에 대한 카포티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모든 자료에서 내가 직접 관찰하지 않은 내용은 공식 기록 에서 따오거나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사람들을 상당기간 동안 여러 번 인터뷰해서 얻었다.” 리서치에 대 한 카포티의 이러한 자세는 실화를 다루는 창작자에게 있어서 리서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점인가를 상기시켜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리서치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창작자의 관점이다. 캔자스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한 살인사건을 가지고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카포티의 책 <In cold blood>, 그 책을 영화화한 영화, 그리고 영화 <카포티> 까지. 그러나 하나의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작품 모두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결국 어떠한 관점을 선택할 것인지, 진실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것은 창작자의 선택으로 남게 되는 것 이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를 선택했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찾아내 보여준 베넷 밀러처럼, 실화를 다 루고자하는 창작자는 영화화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를 찾아내고, 이를 부지런히 리서치하고, 이에 멈추지 않고 이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