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셔니스트 (2010, 실뱅 쇼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by 베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어쩔 수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어렸을 적 아파트 상가 1층에 있던 비디오 가게는 중학생 때 없어진지 오래다. 자주 가던 만화방도 사라졌다. 그럼 물건만 사라지는가 하면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버스 안내양, 전화 교환원, 영화 간판 화가들.. 직업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예전의 일만은 아니다. 인공 지능의 발달로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예측하는 기사들이 요근래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바뀌고 새로운 것들이 생기고 옛것들은 사라진다.


<일루셔니스트>에는 늙은 마술사 ‘타티셰프’가 있다. 그는 마술을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는 한물 간 마술사이다. 그러나 소녀 팬들이 열광하는 락 밴드 멤버들처럼 그는 젊지도, 새로 탄생한 영화와 티비 매체처럼 그는 신기하기도 않은 존재이다. 새로운 매체에 눈을 뜬 관객들에게 그의 공연은 트릭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구닥다리에 시시하기만 하다. 그는 공연 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파리를 떠나 스코트랜드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가게 된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간 허름한 선술집에서 공연을 마친 그는 그 곳에서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는 소녀 ‘앨리스’를 만난다. 앨리스에게 그는 마법사다. 작은 비누 조각을 크게 만들어주고, 다 떨어진 낡은 구두를 새 신발로 바꿔 준다. 허공에서 동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앨리스는 타티셰프가 그동안 만났던 심드렁하고 냉담한 관객들과 달랐다. 앨리스는 그의 마술을 처음으로 믿어준 관객이 된다. 앨리스는 마술사가 보여준 환상 하나에 그렇게 마을을 떠나 마술사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이들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이들의 앞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마술사는 앨리스의 환상을 계속 지켜줄 수 있을까?


<일루셔니스트>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마술사 타티셰프 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타티셰프와 앨리스가 머무는 숙소인 호텔에는 괴짜 이웃들이 있다. 인형으로 복화술을 하는 복화술사, 광대, 곡예사들은 이들의 이웃으로 타티셰프와 소녀의 일상에 문득 문득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타티셰프와 같이 사회에서 소외된, 소위 한물 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린 소녀인 앨리스를 즐겁게 해주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지만 사실 아픈 현실에 부딪히고 있는 중이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광대는 자살을 기도하고,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인형을 골동품점에 팔고 길거리에 나앉은 복화술사의 모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을 준다. 복화술사가 돈 몇 푼과 바꾼 인형은 나중에는 기어이 ‘for free’ 라는 태그가 붙는다.


<일루셔니스트>에는 극 영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떠한 정서가 있다. 펜촉으로 그린 듯한 아름다운 그림체와 파리 부터 에든버러, 스코트랜드의 정취가 느껴지는 표현이 그렇다. 유럽의 정서가 물씬 느껴지는 풍경과 거리 묘사는 카메라로 그대로 찍은 것보다 현실적이다. 비바람이 불고 발끝이 시린 듯한 스코트랜드의 풍경 묘사와 후반부 타티셰프가 소녀와 이별할 때 비가 오던 에든버러의 모습은 가끔씩 생각날 것만 같은 여운을 남긴다. 표현만이 특별하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아름다운 그림체에 반해 쓸쓸하고 서정적인 이야기는 <일루셔니스트 >만의 감동을 준다. 클래식한 투디 그림체와, 클래식을 떠나보내는 이야기의 만남은 아름답기에 슬프고, 슬퍼서 아름답다. 애니메이션인 형식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의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Magicians do not exist

타티셰프가 보여준 마술이라는 환상에 이끌려 그를 따라왔던 소녀 앨리스는 사랑이라는 새로운 환상을 찾게 된다. 그 모습을 본 타티셰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차가운 세상으로 부터 소녀의 환상을 지켜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작별하기로 결심한다. 소녀와 마술사라는 직업 모두 떠나보낼 때가 된 것이다.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길을 걷다가 한 남자와 행복하게 길을 걷는 앨리스를 마주쳤을 때 그는 옆에 있 는 공연장으로 급히 몸을 숨긴다. 몸을 숨기기 위해서 들어간 공연장에서는 배우들의 공연 대신 큰 영화 스크린이 펼쳐져 있다. 공연장에서 나온 그는 마술사 생활 내내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이자 친구인 토끼를 산에 풀어준다. 그리고 작은 짐가방 하나만 든 채 어두운 밤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행복한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앨리스는 마법사의 직접 전하지 못한 작별 인사를 마주한다.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아.’ 이 한마디에 그동안 소녀의 환상을 지켜주고자 한 타티셰프의 노력이 담겨있다. 그는 사랑했던 소녀에게 마지막으로 그동안 선물했던 환상 대신 현실을 알려주기로 한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읽은 앨리스는 이내 호텔 밖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친구와 함께 새로운 여정을 떠난다. 한편 기차를 탄 타티셰프는 맞은 편 앉아있는 소녀가 몽당연필을 떨어트리자 고민한다. 긴 연필로 바꿔줄지 그대로 몽당연필을 돌려줄지 고민하던 그는 결국 그대로 몽당연필을 건낸다. 허름한 선술집에서 작은 비누를 큰 비누로 바꾸어 소녀에게 돌려주던 마법사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꺼져가고 마지막 공연 장의 불빛마저 꺼지자 영화의 막이 내린다.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술사의 고백은 서글프고 현실과 맞닿아 있다. 모든 마법 뒤에는 마법사인 척 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을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산타의 존재를 믿는 아이 들을 위해 산타 변장을 하고 산타를 연기하던 여느 부모님들처럼. <일루셔니스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법사 인 척 했던 이들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상기시켜주며 위로를 건내는 듯 하다. 정작 자신에게는 마법을 믿게 하지 못 했던 타티셰프와 그 같은 이들에게.


앨리스를 위한 변명

<일루셔니스트>의 한 줄 평 에서는 놀랍지 않게 앨리스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흥미로 웠던 것은 앨리스의 철없는 행동에 대해 답답해 하다가 앨리스가 자기 자신으로 겹쳐 보였다는 반응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타티셰프는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으로 잘 알려진 자크 티티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감독인 실 뱅 쇼메는 자크 티티가 자신의 딸 소피 타티세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일루셔니스트>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고 마술사 타티셰프와 앨리스의 관계를 아버지와 딸 관계로 느끼는 사람 들이 많은 듯하다.

<일루셔니스트>에서는 인물의 입체성 대신 상징성을 부과해 마지막 장면에서의 슬픈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다. 사실 앨리스가 타티셰프의 노고를 이해하고 그가 자신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하는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면 이토록 마지막 마술사의 모습이 쓸쓸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앨리스는 순수하고 착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존재, 그리고 타티셰프는 현실의 씁쓸함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마술사이자 보호자로 상징된다. 아무 댓가 없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앨리스의 행복을 위하는 타티셰프를 보며 관객들은 자신과 부모님을 떠올린다.

그러나 앨리스가 철이 없고 허영심만 넘치는 소녀는 아니다. 앨리스에게는 말 그대로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가 있다. 일을 하고 돌아온 타티셰프를 위해 따뜻한 스튜를 끓이는 앨리스는 호텔의 이웃들에게도 스튜를 나누어 준다. 보드카를 마시고 천장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려던 광대는 앨리스의 따뜻한 스튜 한그릇으로 인해 자살을 포기하게 된다. 이렇듯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풀 줄 아는 앨리스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단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다. 또 앨리스는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들에 지친 타티셰프의 마술을 처음으로 무조건적으로 믿어준 최고의 관객이 아니었던가. 타티셰프가 앨리스의 환상을 지켜주고자 노력한 것은 앨리스의 기뻐하는 모습이 곧 그에게도 기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 말보다

<일루셔니스트>는 이렇듯 한 마디 대사보다 정취로, 분위기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한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공연 을 하는 마술사, 마술을 믿는 순수한 소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기쁘지 않은 광대 등 페이소스 있는 인물들의 삶과 생각이 말보다 장면으로 성큼 다가온다. <일루셔니스트>는 타티셰프가 공연의 막을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공연장의 간판에 불이 꺼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타티셰프의 마술사로서의 인생이, 그의 공연이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영화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타티셰프는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걸까? 소녀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 행복했 을까? 그 사랑은 환상이었을까? 타티셰프가 풀어준 토끼는 야생으로 돌아가 잘 적응 했을까? 타티셰프를 그리워 하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여운과 궁금증들은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증거일 것이다. 마법이라는 환상으로 어쩌 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쓸쓸하고 아름다운 영화는 아마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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