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윗도리, 파란색 아랫도리의 체육복 바지를 입은 아이 복잡한 운동장에 어리둥절 해하며 서있다.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아이는 점심시간에 체조를 하러 나온 초등학교 전교생 틈을 헤집으며 자신의 반을 찾고 있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던 아이에게 한 선생님께서 다가오신다.
“요기는 3학년 자리가 아인데, 니가 와 요기 서 있노. 어여 우리 반으로 가자.” “아, 그기 아이고요....”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도착 한 곳은 3학년 2반이다.
거기에는 흰 윗도리, 파란색 아랫도리의 체육복 바지를 입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상고머리, 앞머리와 정수리 부분 머리를 묶은 사과 꼭지 머리를 똑같이 하고 있는 아이가 한 명 더 있다. 같은 얼굴 생김새와 깨밭에 엎어져 생긴듯한 주근깨, 똑같은 의상, 목소리와 비슷한 시기에 빠진 앞니까지.
“으이? 여기에 니 하고 똑같은 애가 한 명 더 있네? 너네 뭐고? 쌍디가?” 상대편에 서 있는 거울 같은 아이는 이런 일이 일상 인 양 짧은 한숨을 쉰다. 난처해하는 이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시던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반인 4학년 2반을 알아내 데려다주시며 아이가 없어져 당황해하고 계신 우리 담임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시며 돌아가셨다.
그렇다. 나는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났다. 딸 둘을 낳으시고 다음은 아들을 기대하며 유난스럽게 부푼 배를 아들이라 믿었던 우리가 두 명의 딸로 태어나자 부모님들은 적잖이 당황하셨다고 한다. 없는 살림에 아이 둘을 같이 학교에 보내기가 힘드실까 봐 우리는 호적에 연년생으로 되어있다. -부모님께서는 미안하셨는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동사무소 등록할 때 깜빡했다고 말씀하신다. - 아쉬운 기대에 부응하고자 우리는 아들들이 흔희 한다는 온갖 말썽을 다 피우고 다녔다. 유리 깨어먹기는 기본이요, 옥상에서 보자기 두르고 뛰어내리기, 계단 구르다 턱 깨기 등. 일주일에 두세 번은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어 귀에 붙여 벌을 세우느라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바빴다.
우리는 언제나 둘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장난감을 마구 살 형편이 아닌 탓도 있었지만, 둘이라서 함께하는 무언가가 좋았다. 아버지의 텅 빈 담뱃갑에 날개와 새 부리를 달아 새를 만들었고, 온갖 사람이나 그림을 그려 오려낸 뒤에 벽에 붙이거나 실과나무토막을 달아 인형극도 했다. 겨울에는 눈이 오게 만들겠다며 약국에 가서 솜뭉치를 사서 실을 붙여 천정에 달았다. 각자 길이가 다르게 붙여 얼핏 진짜 눈 오는 방으로 보이기도 했다. 4컷 만화를 한 주씩 돌아가며 그리기도 했고, 체바구니를 벽에 붙이고 풍선으로 농구를 하기도 했다.
사이가 좋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삐치고 싸우는 일도 많았다. 성별이 여자 인지라 머리를 뜯으며 싸울 때는 재미나게도 둘 중 누가하나 ‘하나, 둘, 셋’을 외치면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토라져서 싸우는 날이라도 둘 중 누군가 악몽을 꾸다가 깨면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잠을 다시 청했고, 아침에는 서로를 깨우며 등교를 하고, 서로 다른 교복을 보며 바꿔 입어보기도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 우리의 취향은 달라지고 있었다. 동생은 긴 머리와 프릴 달린 옷과 함께 여성스러운 면모를 보여주었고, 나는 짧은 커트머리와 애교 구렛나루로 소년 같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혼동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쌍둥이 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혼동해서 동생 지인이 나에게 아는 체하며 뒤통수를 때려 버럭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엿한 학부모가 된 동생과 아직도 철이 없는 나는 여전히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이다. 가끔 힘이 들 때 만나면 백두산 마냥 든든하고, 허물을 보여 주어도 허물 같지 않고, 가족인데도 항상 친구 같아서 언니들조차도 우리를 부러워한다.
부부의 연이 겹치고 겹치면 쌍둥이로 태어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수많고 또 수많은 세월을 같이 지냈으니 태어나기까지 한 것이 아닌가. 이 전 생애는 기억이 나질 않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도, 계단을 굴러 피가 났을 때도, 선생님의 손에 의해 다른 반에 갔을 때도,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에도, 입원을 했을 때에도, 동생이 아이를 낳았을 때에도 우리는 서로를 단단히 묶는 믿음과 사랑과 우정의 끈을 묶고 있다. 이번 생애의 최고의 친구이다. 물론 앞으로 살 생애가 더 길겠지만, 그 남은 생애조차 부푼 가슴으로 미리미리 감사한다.
“항상 고맙다. 내 도플갱어 동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