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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귤 Aug 04. 2023

오늘은 운동 안 할 핑계가 없다.

3. 격렬하게 운동하기 싫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허리가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또는 눈꼽만큼 나아지긴 했고, 언젠가는 통증이 조금 덜해질 날도 올 것이었다. 내 허리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체중 때문이든, 아니면 자세 때문이든 또 다시 언젠가 허리는 또 아플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질 것이었다. 70대의 허리든, 80대의 허리든 언젠가는 내 허리가 남아나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운동을 해야 했다. 단순히 살을 빼고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코어 근육을 만들어 안 좋은 허리를 붙들어 둘 코어 근육이 필요했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나 혼자 하는 생각이 아니다. 자격 있는 도수 치료사님도 그렇게 말하고, 의사도 그렇게 말하고, <백년허리>라는 책으로 유명한 서울대 재활의학과 교수 정선근도 그렇게 말하고, 내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고, 나도 납득은 하고 있었다.


다만 운동하기가 싫었다. 정말 정말 싫었다. 이게 얼마나 싫으냐면, 너무너무 졸리고 피곤한데 나가야 해서 알람을 5분마다 새로 맞추며 씻는 것을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고 있는 그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나는 정말 운동과 담 쌓은 일평생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남들이 뛰어 놀 때 나는 혼자 책을 읽었다. 나는 <슬램덩크> 세대인데, <슬램덩크>에 열광하면서도 남들이 농구공을 가지고 놀 때 다른 스포츠 만화를 찾아 읽었다. 중·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체육 교사가 공 몇개 던져줄 때 나는 스탠드에 길게 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청했다. 군대에서도 축구를 안 한 몇 안 되는 인간이 나다. 


타고난 운동 신경도 없다. 남들 뛰어 놀 때 같이 뛰어 놀고, 공을 차고, 던지고 했더라면 길러지는 것이라도 있었을텐데 그것도 없다. 내 인생에 말랐던 적은 있지만, 근육이 탄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밖에 나가 노는 것 자체가 싫었다.


덕분에 체육 실기 점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잘하면 미, 보통은 양, 못하면 가. 점수로 따지면 50점 미만. 5점 만점에 3점 받으면 잘한 것. 체력장은 바닥. 100m 달리기는 느려 터졌고, 오래 달리기는 증오한다. 턱걸이는 이때까지 내 인생에서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나의 학창 시절 흑역사는 모조리 체육 시간 실기 평가 때다.


할 줄 아는 운동도 없고, 해본 운동도 없다.


물론 나도 유행에 휩쓸려 헬스장에 등록해본 적도 있고, 스쿼트인지 뭔지를 해본 적도 있다.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한데, 요가 강사 친구에게 요가 개인 강습을 받아본 적도 있고, 서울 시내 유명 요가원에 몇 달 다녀본 적도 있다. 필라테스 일일 체험도 해봤다.


그 모든 시도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운동이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업보가 '70대의 허리'라는 판정이었다.


하지만 운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테니스를 배워야 하는데, 라켓을 들고 코트에 나가는대신 <테니스의 역사>와 같은 책부터 꺼내드는 사람. 운전 연습을 할 때 주위의 무사고 운전자나 운전 강사에게 운전을 배우기 전에 <운전의 달인>과 같은 책을 사는 사람, 춤을 춰야 하는데 <사교 댄스의 이해>와 같은 책부터 읽는 사람.


그게 나였다.


책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정선근의 <백년 허리>, 수피의 <헬스의 정석 : 근력운동 편>, 피톨로지의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 과 같은 책들. 그리고 몇몇의 영양학에 관한 책들.


운동 도구도 사모았다.


요가 매트를 선물 받고, 폼롤러를 사고, 덤벨을 몇 개 사고, 스트레칭 밴드도 샀다.


덕분에 나는 SNS에 그럴듯한 다이어트와 운동 썰을 풀만한 가짜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운동은 하기 싫었다. 근력 운동은 지겹다. 유산소 운동은 지루하다. 스트레칭, 요가 같은 것은 잘 되지도 않고, 성과를 내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기초 체력 자체가 너무 부족해서 무슨 운동이든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하기 싫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누르고 눌러서 그나마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와 등산이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무작정 나갔다.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1만 걸음을 걷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환경은 좋았다.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잘 정비되어 쭉 뻗은 천변이 있다. 거기만 몇 시간 걸으면 1만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집에서 20분만 걸어가면 아주 높지도 않고, 등산로도 잘 되어 있는 산도 있다.


내 허리 통증은 아예 꼼짝도 할 수 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는 종류는 아니었다. 걷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 찌릿하는 통증이 엄습해 온다던가, 오래 서 있을 수 없다던가, 격렬한 움직임을 할 수 없다거나 하는 종류였다. 다행히 걷기는 가능했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다.


하루에 걷는 걸음이 3천 걸음 미만인 사람에게 1만 걸음은 더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말이 1시간, 2시간 걷기지 목적도 없이 몇 시간을 걷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 어떤 음악도, 팟캐스트도 지겨움을 크게 달래주지 못했다. 생각도 없이 돈을 건 후 1만 걸음을 일주일에 일정 횟수 이상 걸으면 상금을 주는 캠페인에 등록했다가 등록비만 날린 적도 여러 번이다.


내 글에는 "70대의 허리"라는 판정을 받고 충격을 받아 깨달음을 얻고, 각성하여 운동을 시작해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몸짱이 되거나 하는 스토리는 전혀 없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했다는 성공기를 몇개나 읽으면서, 나는 이게 가능한 일이냐며, 독한 사람들이라며 투덜거렸다. 


나는 계속 실패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시도한 것이 안 하는 것보단 나았다. 1만 걸음 걷는 데는 실패한 날도 7천 걸음 정도를 걷기는 했다. 대충 올라가다 말았지만, 어쨌든 숨이 찰 때까지 산을 타기도 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몇몇 간단한 운동 루틴을 따라하기도 했는데 끝까지 따라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30분짜리 루틴이면 10분은 따라하긴 했다.


죽어라 운동하기 싫다고 발버둥쳤고, 게으름을 피웠고, 의지는 수시로 꺾였다. 나는 게으름뱅이였고, 의지박약이었고, 진짜 운동이 너무너무 싫었다.


하지만 그거라도 하긴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어처구니없게도,


허리 통증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 또 한번 얘기하지만, 이 글은 '수영일기' 입니다. 언젠가 수영이 등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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