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AP 시장의 '슈퍼 갑' ARM 매각 이슈

by 경제를 말하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 '슈퍼 을' ASML이 있다면 휴대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 AP 시장에는 '슈퍼 갑'이 존재합니다. 바로 팹리스를 위한 팹리스로 불리는 영국 기업 ARM입니다.


ARM은 모바일 AP를 설계하기 위한 설계 도면에 대한 특허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AP 설계기업입니다. 즉 칩 제조사가 기똥차게 좋은 차세대 AP를 설계하려고 한다면 ARM의 AP 설계자산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칩 설계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모바일 AP 시장에서의 ARM의 영향력과 파워는 엄청납니다.


이러한 ARM의 가치를 일찍 알아본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ARM을 한화 40조 원에 인수하면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너무 투자가치를 고평가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에 손정의 회장은 5G 광대역 통신망과 이로 인해 발달하게 될 사물인터넷 시장에 주목했다고 밝혔습니다. 5G 시대가 본격화되고 초연결이 현실화될 경우 ARM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증대될 것이고 이러한 미래가치가 인수 가격에 포함되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야심 차게 웃돈까지 얹어가며 인수한 ARM은 소프트 뱅크의 투자 실패와 지난 1분기 사상 최대 적자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매각설이 불거지는 상황입니다. 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미래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하여 그 기업의 가치 상승을 돕는 미래지향형 펀드입니다.



공유경제가 새로운 경제모델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부각된 기업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버와 위워크인데요. 손정의 회장은 공유경제의 활성화를 예상하고 해당 기업을 인수합니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시들해지고 구독 경제로 빠르게 넘어가면서 우버와 위워크의 손실과 가치 하락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1분기 천문학적인 적자의 주된 이유 또한 손정의 회장의 비전펀드의 위워크 투자 실패에 대한 비중이 매우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소프트뱅크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면서 회사 내의 유동성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손 회장은 가장 가슴 떨리는 투자라고 벅차 하며 인수를 발표했던 ARM을 매각하여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뼈아픈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소프트뱅크가 ARM의 매각을 공식화한 것은 아닙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소프트뱅크가 골드만삭스와 함께 ARM의 전체 지분 혹은 부분을 매각하거나 혹은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공식화한다면 매우 치열한 인수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ARM의 인수 금액은 아무리 낮게 잡는다고 해도 5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수 시에 지불한 금액이 약 39~40조 원에 달했던 회사를 헐값에 팔 정도로 소프트뱅크가 어리석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체 매출이 약 2조 원 정도 되는 기업이지만 ARM이 반도체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야말로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모바일 AP 시장의 97%를 독점하고 있는 기업인 만큼 2조 원의 매출로는 설명되지 않는 엄청난 무형의 가치를 가진 기업입니다.



여러 회사들이 ARM의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인텔과 결별하고 ARM 아키텍처 기반의 애플 반도체를 천명한 애플이 있고요. GPU와 병렬 컴퓨팅의 강자이지만 AP와 CPU 등의 컴퓨터 운영체제에 대한 끊임없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엔비디아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인수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삼성전자는 정작 ARM의 인수에 그리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인텔이나 TSMC 등도 ARM 인수전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ARM의 몸값을 너무 많이 올려놓아서 어느 한 기업이 독점적으로 ARM을 소유하기에는 많이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이에 따라 컨소시엄 형태의 인수나 혹은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IPO 형식으로 매각을 진행할 것이라는 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컨소시엄 형태는 이해관계가 부합하는 여러 회사들이 합작하여 인수 대상 기업에 분할 투자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IPO의 경우에는 주식 시장에 상장해서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를 유치해 소프트뱅크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현실적으로 통째로 인수하는 방법보다는 여러모로 합리적인 방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삼성은 만일 ARM 매각이 본격화되고 단일 기업의 인수가 아닌 컨소시엄 형태나 IPO 형식으로 진행된다면 약 3~5% 정도의 지분 투자를 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ARM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기업이 누구인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단독 인수설도 불거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엔비디아에서 ARM을 인수한다면 그동안 엔비디아가 벼르고 있었던 모바일 AP나 저전력 CPU 등의 사업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엔비디아가 다른 여타의 회사들보다 ARM인수전에 부각되고 있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애플이나 삼성 등의 회사는 실제 ARM 아키텍처를 활용하여 모바일 AP를 제작하는 회사들입니다. 이 회사들이 ARM을 소유하여 상대방 기업에 무기로 사용한다면 엄청난 파워를 가질 것입니다. 사실상 ARM을 가져가는 기업이 속한 나라가 전 세계 모바일 AP 설계도 시장을 장악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국제법상 반독점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매우 높죠. 따라서 어느 쪽으로 인수가 추진되든 매우 험난한 여정이 될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컨소시엄이나 IPO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ARM이 어느 곳으로 향하느냐에 따라서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에도 매우 큰 변화가 있을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제가 생각해 보았을 때는 반독점 이슈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삼성이나 애플 등 AP 설계 제작 기업보다는 한걸음 빗겨 서있는 엔비디아 매각설이 좀 더 현실성 있지 않나 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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