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미국 IT 공룡들이 잇따라 자체 칩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전통의 CPU 강호 인텔과 GPU 최강자 엔비디아가 위기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애플과 아마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체 칩 개발 이슈에 대해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상황은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여전히 애플은 M1 칩의 성능을 계속 업그레이드 하면서 자체 반도체를 탑재하는 기기의 범주를 지속적으로 넓히고 있습니다. 애플은 IT 기기 회사를 넘어서 자체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는 등 회사 자체의 외연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체칩의 열기는 비단 애플만 뜨거운 것이 아닙니다. 아마존은 2015년 인수한 반도체 개발업체인 안나푸르나 랩스 팀을 통해 네트워크용 칩을 개발중에 있습니다.
구글 또한 자사 픽셀폰에 탑재되는 AP를 개발 중에 있으며 곧 출시되는 신형 픽셀폰에 자사의 AP를 탑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구글은 자사의 AI 칩셋도 자체 개발하여 자사의 데이터센터에 탑재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도 가상현실 VR 기기 오큐러스를 위한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테슬라 또한 자체 칩을 오래 전부터 개발하여 자사의 전기차에 탑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칩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인텔과 AMD, 그리고 엔비디아 등 범용 칩을 만드는 회사들의 제품을 사용하던 미국의 IT 공룡들이 자사 칩을 개발하면서 탈 범용칩을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 정도의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인텔, AMD, 엔비디아 등 범용칩 회사들이 시장을 주름잡던 시대와는 달리 너무나 다양한 고객의 니즈가 생겼고 범용칩 회사들은 이러한 고객의 니즈에 유기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범용칩 회사들은 말 그대로 뭔가 표준화 되고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칩들을 생산합니다. 표준화된 칩셋에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를 모두 품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반면 애플을 비롯한 IT 업체와 다양한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의 경우 자사가 운영하는 서버와 알맞은 호환과 성능을 갖춘 맞춤형 칩셋을 원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칩을 개발할 만한 충분한 역량까지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사의 니즈와는 상관없이 표준화 되어 나오는 범용칩을 사용하기 보다는 자사의 소프트웨어나 기기와 꼭 맞는 호환을 갖춘 자사의 칩셋을 탑재하여 자사 제품의 성능을 극대화하겠다는 마음을 갖기에 충분한 요건이 갖춰졌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다수의 IT 기기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애플의 경우 인텔이나 엔비디아 등 기성 범용칩을 활용하기 보다는 자사의 기기 특성에 맞는 자체칩을 개발하여 탑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수익적으로 훨씬 유리하다는 계산이 끝났기 때문에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한 페이스 북 등 메타버스 기업이나 아마존, 구글과 같은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기업들, 그리고 테슬라와 같은 전기자동차 기업 등도 자사가 갖춘 인프라와 맞는 호환을 가진 전용 칩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범용 칩이 아닌 자신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전용칩의 개발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사가 개발한 전용 칩을 훌륭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파운드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IT 공룡들에게 자체 칩을 개발하여 자사의 팹을 통해 반도체를 생산까지 하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기업들이 자체칩 개발을 포기할 것입니다. 그만큼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데에 소요되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설계와 생산이 철저히 나뉘어 있는 분업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팹리스 업체가 자체 칩을 설계하여 파운드리에 제공하면 파운드리는 팹리스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준수하게 자체 칩을 생산해 줍니다.
굳이 인텔과 같이 설계와 생산을 함께 진행하는 종합 반도체 업체를 통해 생산되는 범용 칩을 사용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사의 전용 칩을 개발하여 생산할 수 있는 산업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사의 범용칩을 생산하여 대량으로 표준화된 성능의 칩을 일괄적으로 공급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기술이 고도화 되고 고객사들의 니즈 또한 다양해지는 만큼 반도체 업계는 범용칩의 시대를 지나 전용칩의 시대로 이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팹리스, 파운드리로 대변되는 반도체 업계의 분업화가 더욱 확연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성 범용칩 업체들은 자사의 생산시설을 파운드리로 전환하여 활로를 찾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인텔과 AMD입니다. AMD야 벌써 생산부문을 분사하여 글로벌 파운드리를 출범시켰습니다.
인텔 또한 최근 IDM 2.0을 발표하면서 인텔 파운드리를 천명하였습니다. 인텔이 파운드리 산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자 아마존,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들은 환영의 뜻을 비쳤습니다. 자사의 전용 칩을 생산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옵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이 적용된 고성능의 전용 칩을 생산할 수 있는 회사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 뿐이었지만 인텔 파운드리가 출범하면 빅테크 기업으로서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기는 것이니 나쁠 것이 없는 것이겠죠.
아마도 몇 남지 않은 IDM들은 자체칩 생산 업체들의 매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용칩 개발을 염두에 둔 회사들은 반도체 생산 능력이 없는 회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국 파운드리에 생산 위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트랜드는 IDM의 붕괴를 가속화 시킬 것이고 팹리스 – 파운드리 분업 시스템을 고착화 시킬 것입니다. 다양한 대형 IT 회사들이 자사 칩을 개발할수록 파운드리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증가할 것입니다.
결국 빅테크 기업의 자사칩 개발 붐은 파운드리 산업의 팽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범용칩을 생산하는 회사들과 IDM의 입지는 더욱 가파른 속도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운드리 산업의 팽창은 ASML이나 램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 등 장비업체들의 수혜로 이어질 것입니다. 반도체 산업의 팽창은 곧 엄청난 설비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빅테크 기업들의 자사 칩 개발 붐은 팹리스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대형 팹리스들이 난립하면서 이들에게 설계 툴을 제공하는 회사들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놉시스 등 설계 툴을 제공하는 기업들도 주목해야 할 섹터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제작되는 자체 칩들은 대부분 환경 문제와 결부되어 저전력을 지향합니다. 즉 저전력 프로세서 설계 IP를 제공하는 ARM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높겠죠?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ARM의 최종 거처는 어디가 될까요? 이것도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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