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옷장에는 가디건이나 후드티 같은 간절기 옷이 걸려있는데, 출근 준비를 하며 꺼내드는 옷은 얇은 반팔이다. 어느새 한낮에는 연신 땀을 훔치며 걸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
서른 무렵까지 내가 가장 기다리던 계절은 겨울이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품고 있는 속성과 물성, 그 무드가 주는 모든 판타지마저 사랑해 마지않았다. 보드라운 실로 꼬아 만든 목도리를 칭칭 감고 하얀 입김이 부서지는 쨍한 공기 속을 걷노라면 어느새 거리에는 전구가 반짝였다. “아 추워”를 연발하며 종종걸음으로 걷다가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훅 끼쳐오는 온기에 온몸이 무장해제 되는 계절을, 정다운 얼굴을 마주보고 따뜻한 오뎅과 정종을 길어진 밤의 길이만큼 오래오래 먹고 마실 수 있는 계절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느 계절을 제일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그래서 항상 가을이었다. 가을이 제일 좋아. 왜냐면 곧 겨울이 올 거니까. 겨울을 목전에 둔 가을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마침내 오고야 말 겨울을 기다리는 가을이 나는 제일 좋았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같은 마음이었달까.
더위에 지쳐 늘어지고 둔해진 감각은 청명한 가을 하늘을 지나며 명징해지기 시작해 코가 얼얼해질 정도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장 섬세하게 뻗어나갔다. 그 감각이 좋았다. 그 감각을 감각하는 것이 좋았다. 겨울은 그런 계절이었다.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 그리하여 그 수형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 있는 계절. 그 직면과 생의 감각이 두렵지 않던 시절의 나는 그래서 그토록 겨울을 기다렸나.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나가며 삶은 흘렀다. 어떤 시절은 통과했으나 어떤 시절은 껍데기만 지나간 채 그대로 남았다.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시절은 복잡한 슬픔의 형태를 띤 채 겨울마다 고개를 쳐들고 나를 찾아왔다. 겨울은 침잠하는 계절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겨울의 긴긴밤을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헐벗은 나뭇가지들은 더 이상 찬란한 것이 남아있지 않은 내 인생에 대한 은유 같았다. 아무리 여며도 날카로운 바람은 품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저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더워서, 너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저 더워 죽겠다는 감상 말고는 계절에 대한 특별한 상념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여름을 내심 반기게 된 것은 그래서이다. 작렬하는 태양부터 귀가 떨어져라 울어대는 매미에 이르기까지 여름은 집념에 가까운 생명력이 대기에 가득한 계절이었다. 그것을 우악스럽다 여기던 시절의 나도 있었다. 존재 자체가 봄인 어린 아이들은 봄에 대한 감흥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아시는지. 동시에 꽃만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며 카메라를 갖다 대는 사람들은 모두 주름이 자글자글한 이라는 것도. 나는 내 안에 없는 것을 희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지나간 일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눈앞의 삶을 살아내기에 여념이 없어 보이는 여름은 이상한 위안이었다. 남김없이 쏟아내고 끊임없이 자랐다. 기꺼이 삶에 자신을 투신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스스로는 갖지 못하는 그런 마음을 나는 여름에 기대 갖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어본다.
어느새 창밖은 여름. 노트북을 덮고 집까지 가는 길, 두 팔을 흔들며 힘차게 걸어가 보기로 한다. 여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