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뭐길래

by 아기돼지

한 달 전의 일이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매주 에세이 한 편씩 쓰는 모임의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읽었다. 무려 십 주간, 에세이 열 편이다. 그것도 ‘어쨌든’ 쓰고 ‘닥치고’ 공개하라는데, 이 험한 길을 완주했다고 무슨 학위가 주어진다거나 출판사 계약 건이 성사되는 것도 아니다. (당연하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아닌가. 할 거리도, 놀 거리도 태산 같은 이 시대에 성과에 대한 보상 없이 노력과 시간을 쏟는 고비용 저효율의 노동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누가 황금 같은 여가 시간을 반납하고 글의 감옥으로 걸어간단 말인가. 그것도 내돈내산(참가비가 있다), 아니 내피내땀으로.


첫 오프라인 모임을 하는데 빙 둘러앉은 테이블의 자리가 꽉 차 몇 명은 뒤에 따로 앉아야만 했다고 한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 믿기지 않는 신청자 중 한 명이 나였기 때문이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랬다. 이 세상에는 글을 써보겠노라고 자발적 저술 노동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이리도 많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뒤로 한 채 글의 감옥에 갇혀 돌마(돌아서면 마감)의 굴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해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마음으로 별 각오 없이 신청했던 나는 자기소개를 하는 내내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내가 잠깐 미쳤었지. 신청서를 제출하던 저녁에 뭘 먹었던가. 이제 그 메뉴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먹지 않기로 한다. 이런 생각이나 하며 자리를 지켰다.


마감은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생업에 매여 현생을 살다가 토요일이 되면 나는 글쓰기(우리는 이것을 ‘숙제’라 불렀다. 하지만 검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타율보다는 자율에 가까운 이 행위를 숙제라고 할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선생이자 학생이었으며 검사자이자 수행자였고, 그러기 위해 이 모임에 자발적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세상에.)에 대한 압박으로 오전부터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써야 할 텐데. 뭘 쓰지. ‘어떻게’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 당장 ‘무엇을’ 쓸 것인지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가슴이 턱턱 막혔다.


당신은 유배를 가 본 적이 있는가. 있을 리가 없겠지. 나도 없다. 그러나 에세이 마감을 위해 노트북 앞에 앉으면 나는 곧 유배를 떠나는 죄인의 모습이 되었다. 지은 죄가 많아 글쓰기라는 형벌을 받고 봉두난발을 한 채로 한 걸음 한 걸음 외로운 발길을 떼는 자, 누구도 대신 갈 수 없는 길을 자처하며 홀로 걸어가는 자, 끝이 보이지 않는 멀고도 험한 길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자. (혹독한 귀양살이를 견뎌야 했던 선조들이여, 죄송합니다.)


엄살을 좀 부렸다만 매주 한 편씩 (불)특정 독자를 상정한 글을 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세이는 소설이 아니니 나의 이야기여야 했다. 동시에 에세이는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보는 일기와도 달라야 했다. 그러나 노트북 앞에 앉아 쓸 거리를 떠올리다보면 어떤 이야기는 너무 개인적이었고, 그래서 지나치게 내밀했으며, 어떤 이야기는 끝내 그것을 직면할 용기가 생겨나지 않았다. 결국 ‘무엇을 쓸 것인가’는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는 ‘무엇을 감출 것인가’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것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삭제되거나 유예된 진실은 어디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때로 결벽에 가까운 이러한 태도는 끝끝내 아무 것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나는 이어 쓸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나온 인생과 마주한 인생을 돌아보며 그 사이를 지나는 눅진한 질문을 살피는 동안 곁을 내주는 것은 결국 글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유배와도 같은 여정의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 조각의 진실이 빚어 올린 작은 구원이라는 것도.


살아갈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때로 그것은 살아온 힘을 묻고 파헤쳐 기록하는 행위에서 온다. 이 괴롭고도 기쁜 저술 노동에 자원한 멤버들의 완주를 빈다. (나만 잘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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