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 대한 고민은 어릴 때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뭐가 되긴 되어야겠는데 뭐가 되어야 할지 모르던 시절의 고민도 괴로운 것이었지만, 뭐가 되긴 되었는데 이대로 영영 다른 꿈은 꾸지 못할까 봐 헛헛한 마음을 부여잡는 지금의 고민도 복잡한 것은 매한가지다.
학창 시절 나의 장래 희망은 꽤 오랜 기간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노 연주자가 되겠다는 또렷한 자의식이 있었다기보다는 피아노 외에 별다른 특기가 없다 보니 늘상 써야 했던 장래 희망란에 편의상 피아니스트라고 적어 넣었던 것에 가깝다. 나는 여섯 살에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았고, 서울의 한 예술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한 후부터는 클래식 피아노와 빠르게 멀어졌다.
입시는 전쟁이었다. 고작 고등학교 입시인데도 그랬다. 경쟁과 선발이 없던 시절의 피아노는 내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악기였는데, 입시를 준비하는 기간의 피아노는 내가 다룰 수 없는 유일한 악기가 된 것 같았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이상한 좌절에 빠졌다. 그렇다고 연습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연습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태로 나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았는데, 그 때 말려 들어간 어깨가 지금도 펴지지 않아 평생을 라운드 숄더로 살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노력과 연습 같은 것들로는 넘을 수 없는 견고한 벽이 그 세계에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좀 뻔하긴 하지만 그 벽에 ‘재능’이라는 이름을 조심스레 붙여 봐도 될까. 수많은 예술계 지망생들이 한 번쯤은 고뇌해 봤을 재능과 성취,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부러움과 시샘, 열등감, 우월감, 갈망, 욕구, 환희 등의 감정들이 그 벽 언저리와 너머에 있었다.
재능은 송곳 같은 것이었다. 가만히 두어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레슨을 기다리며 연습실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노라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송곳 같은 연주가 귀에 앉았다. 아, 내가 피아노 연주로 밥 먹고 살지는 못하겠구나. 입시를 준비하는 기간은 이 사실을 천천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즈음부터였나. 십 대 시절의 나는 꽤 오랫동안 재능을 탐했다. 갖고 싶어 한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재능이 나의 것이길 원했다. 똑같이 건반을 누르는 것인데도 누군가의 음표는 귀를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의 음표는 마음에 들어 오고야 말았는데, 그 작지만 명명백백한 차이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재능이었다. 음악적 재능, 문학적 재능, 수학적 재능… 뭐든 좋았다. 저 반짝이는 것을 손에 넣으면 나는 마침내 날아오를 수 있을 테지. 진로에 대한 고민도, 존재에 대한 좌절도 없는 세계로.
그러니 십 대 시절이란 얼마나 순수하고도 어리석은가. 그런 세계는 없다는 것을, 인생은 몹시도 길고 지난한 여정이라는 것을, 그 여정 속에서 재능이 담보하는 삶의 영역은 그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으므로 재능을 흠모했고, 재능을 흠모했으므로 나는 자주 풀이 죽었다. 십 대란 그런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났다. 나는 피아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지만 때때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나를 붙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재능이라는 요소는 더 이상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버틸 수 있느냐 묻는다. 반복할 힘이 있는지 자문한다. 앞으로 나아갈 힘은 재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오랜만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연주를 들었다. 손열음은 이미 오래전에 세계적인 피아노 솔리스트의 반열에 오른 연주자다. 그런 그녀가 나와 또래라는 사실은 자랑스러우면서도 이따금씩 이상한 회한에 젖게 했다. 그러기도 잠시, 가진 재능과 주어진 책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오직 성장을 동력 삼아 걸어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그녀가 건반에 손을 올릴 때 나는 한 문장이라도 더 쓰겠지. 세상은 그렇게 다채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