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인생

by 아기돼지

과거 손석희 앵커가 쓴 ‘지각인생’이란 글이 온라인 상에서 잔잔하게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벌써 십수 년도 더 전이지만 당시 이십대 초반이던 나 역시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난 김에 다시 찾아 읽어보니 기억보다 훨씬 짧고 간략한 글이다. 새로운 감흥보다는 그가 인생에서 가장 뒤늦게 벌인 일이라는 외국 유학을 떠난 나이가 나도 곧이라는 점에서 새삼 세월을 실감하고 만다. 인생, 도대체 뭐기에 이렇게 눈 깜짝할 새에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칠순이 되어 버리는 걸까. (손석희는 올해 일흔이다.) 잠시 복잡한 마음으로 누워 있다 내 인생에도 이름을 붙여 본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벼락치기 인생이다.


나의 벼락치기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해야 할 일을 항상 미루고 미루다 막판이 되어서야 나는 요란하게 벼락을 쳐댔다. 노력과 시간을 매일 조금씩 적립해 나가는 행위 자체를 따분해 했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시험 하루 전 날이 되어야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 이틀 전에는 하루가 더 남았다는 생각에 두 발을 뻗고 잠을 잤다. 그러다 전날이 되면 전교 1등 저리가라 식의 열정으로 눈에 불을 켜고 책을 봤다. 마치 학문의 기쁨에 사로잡힌 하버드생이라도 된 것 마냥 밤새워 책을 쌓아두고 공부를 했다. 하루짜리 벼락치기였다.


시험은 당연히 못 봤다. 시험 범위를 다 건드려 보지도 못한 채 치른 시험도 여럿이다. 잔걱정이 많고 불안도가 높은 성격이었다면 나는 나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아주 잘 견뎠다. 나는 수능을 보면서도 바로 옆에서 나오는 라디에이터의 뜨끈한 기운에 취해 외국어영역 문제를 풀다 펜까지 떨어뜨리며 졸았다. 밥도 먹었겠다, 잠이 솔솔 왔다. (결국 재수를 했다. 내가 두 번째 수능을 보던 해, 엄마는 내가 또 밥 먹고 졸까봐 도시락을 쥐꼬리만큼 싸줬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10분 뒤에는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나는 10분이 지나도록 누워서 ‘아, 귀찮아.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따위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순간이동이 가능해진 세계에서의 나의 삶을 상상하며 혼자 멀티버스 속 나를 그리워한다. 와중에 완성도도 놓치지 않는다. 순간이동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들을 소환해 상상 속 내 멀티버스에 디테일을 더한다.


나는 미친 걸까. 가만히 누워 이렇듯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갈 준비를 미루고 또 미루다 갑자기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벌떡 일어나 생난리를 치며 옷을 꿰어 입고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가방을 낚아챈 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 택시를 잡는다. 수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나는 생각한다. 더 단정하게, 더 경제적으로, 더 준비된 모습으로 살 수 있었는데……. 벼락을 치느라 오늘도 실패다.


나는 대개 이런 식이다. 큰 시험을 앞두고도, 소소한 약속을 앞두고도 나는 늘 만족할만한 분량에 다다르지 못한 채로 데드라인을 맞았다. 이루어내야 할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욕망을 의지를 희생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주로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러다 막판이 되어서야 발등에 떨어진 불에 온 몸이 휩싸인 채 최선을 다해 벼락치기를 했다. 최선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에서 나온다.


나는 이런 나를 인정하나 긍정하고 싶진 않다. 좀 더 성실했더라면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은 어쩌면 내가 종종 감화 받는, 혹은 동경하는 그런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살아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가끔 나를 착실하고 의지가 굳은 인간으로 오해한다. 굳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면서 나를 설명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그건 내 소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한 번 되어보고는 싶다. 집에 가면 일단 화장부터 지우고 바로 씻는 사람, 마감이 일주일 뒤면 일주일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람, 자기 전에 불 끄고 자는 사람, 지각 안 하는 사람, 내일의 나에게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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