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생각한다(2)

by 아기돼지

그는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했다. 정해진 날짜가 하루라도 늦춰지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그가 어디서 무얼 하며 10년간의 세월을 보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간 품어왔던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그가 마주해야 했을 상실과 좌절은 어떤 모양이었을지, 그 또한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그가 되어본다. 남들보다 다소 늦은 학업의 출발선을 늘 의식하고 초조해했던 그였다. 세 누이와 군대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형님을 대신해 법관이 되어 부모의 어깨를 펴드리겠다 마음먹은 그였다. 그런 그가 10년간 졸업을 하지 않고 떠돌기까지, 그 마음 안팎의 행로를 쫓아가다보면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생경하기 그지없는 말들을 만난다. 연좌제, 신원조회, 국가폭력, 완전한 좌절.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관념이다. 현실에 의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나는 냉전이 저물던 시대에 태어나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민 직선제로 최초 당선된 대통령을 날 때부터 경험했다. 역사의 잔재는 남아있을지언정 그것이 내 인생에 덫을 놓진 않았다. 그러니 그의 좌절과 나의 좌절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에게는 관념이지만 그에게는 10년, 아니 평생을 따라다닌 실재이다.

그 실재에 대해 나는 이제와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의 좌절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그 생김새와 질감을 목도하고 싶다. 꾹 쥐어진 주먹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내듯 그가 이루어 낸 성취와 그 아래를 지나는 두려움에 대해 나는 보다 생생해지고 싶다. 그도 언젠가는 한 번쯤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를 두고 행해진 시대적 폭력에 대해, 그가 이겨내야 했던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었던 삶의 굴레에 대해, 그리하여 그에게 자리 잡은 불안의 가장 깊은 기저에 대해. 이제야 그 흔적을 따라가다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묻고 듣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못내 원망하고야 만다. 묻지 않았고, 들을 기회를 영영 잃었다.

다만 그가 자식들을 기르며 왜 모든 일의 ‘때’를 그토록 강조했는지, 자식들의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서 왜 조금의 불확실성도 견디기 어려워했는지, 동시에 자식들의 앞날에 자신이 걸림돌이 되지 않고자 얼마나 애썼는지 나는 그의 인생을 톺아보며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그는 내가 대학에 지원하던 해, 온라인으로도 원서 접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원서를 출력해 누런 대봉투에 넣고 대학의 입학처를 찾았다. 손에서 손으로 원서가 건네지고 접수가 완료되는 것을 보아야 마음을 놓았다. 교정을 걸어 나오며 처음 보는 학생들을 붙잡고 입학 당시 면접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또 물어 수첩에 빼곡히 적어 왔다. 대학 4학년이던 내가 큰 시험을 치르고 결과가 발표 나던 날, 그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를 못했다. 집 밖 지하철역 주변을 돌고 또 돌다가 나의 합격 소식을 듣고서야 그는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그가 때때로 못 견딜 만큼 답답했다. 그는 천지가 읽을 책이고,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으며,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노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자식들이 보다 성실히 인생을 살았으면 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나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깨우지 않으면 열 시고, 열 한 시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우리 삼남매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랑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가 가진 모든 것으로. 그게 그의 전부를 쏟아 부은 사랑이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사랑이 이토록 회색지대일 수 있는가, 나는 자주 물었다. 그의 사랑 안에는 애정, 희생, 헌신과도 같은 백색지대도 있었지만 좌절, 상실, 불안과 같은 흑색지대도 공존했다. 그 모든 명암을 끌어안고 나는 이제와 그를 생각한다. 명을 끌어안은 암에 대해, 암을 끌어안은 명에 대해, 그리고 끝내 구분하기 어려운 덩어리가 되어 나를 살아가게 만든 그의 사랑에 대해.


잘, 계시는지.

뭐라도 계속 써볼게요.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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