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수금이면 5:55에 알람이 울린다. 비몽사몽간에 알람을 끄고 나는 5분여간 더 누워 있는다. 일명 정리잠을 자는 시간이다. 피곤한 날엔 종종 10분, 15분도 더 누워 있는데, 대체로 모든 날이 피곤하다. 마지노선은 6:10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고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화장실로 향한다. 씻고, 로션을 펴 바르고, 머리를 질끈 묶고는 요가복으로 갈아입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변함없다. 5년 가까이 반복된 새벽 루틴이다.
요즘 같은 한여름의 5:55은 이미 동이 튼 이후라 사위가 밝다. 새들은 지저귀고, 불을 켜지 않아도 빛은 도래해 있다. 그러나 12월의 5:55은 어떠한가. 폭설이라도 내린 뒤의 1월과 2월은. 온 세상이 잠든 듯 어둡고 고요한 새벽에도 알람은 여지없이 울린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나는 요가복 위로 스웨터와 두꺼운 외투를 켜켜이 챙겨 입고 문밖을 나선다.
나 혼자 깨어 도로에 나왔다 생각한 것은 그러나 오산이다. 올림픽대로는 이미 수많은 차들로 가득하다. 다들 어찌됐건 열심히 사는 것이다. 앞 차의 붉은 후미등을 보며 나는 주로 그날의 일과와 처리해야 할 업무, 해결되지 않은 삶의 문제 등을 생각한다. 그 상념의 덩어리 사이사이로 때로 한숨은 얇은 유산지처럼 빈틈없이 끼어든다. 사는 것은 대체로 번민이라고 말해도 될까.
동호대교를 건너며 풀리기 시작한 교통 정체는 이내 수월하게 나를 목적지까지 이끈다. 도착한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내 몸 하나 겨우 뉘일 만한 작은 매트다.
처음부터 아침 일찍 요가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잠이 많기로, 그 중에서도 아침잠이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다. 아침마다 정신을 못 차리는 나에게 누군가 왜 그러느냐 물으면 늘 저혈압 투병중이라는 농담으로 배시시 웃어넘기곤 했다. 그랬던 나인데, 삶이라는 것은 꽤나 잔인한 구석이 있어서 인생의 어느 국면에 다다르자 나에게 잠을 헌납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근심과 불안을 쥐여 주며 어느 시기엔 불면의 밤을, 어느 시기엔 눈을 뜨는 것이 괴로운 아침을 지나게 했다. 뭐라도 해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엇은 신체의 움직임을 동반하는 것이어야 했다. 나는 몸의 언어가 지배하는 세계로 건너가고 싶었다.
왜 요가인가. 혹 묻는다면 글쎄, 또렷한 대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같은 시각에 필라테스도 해보고, 수영도 해봤다. 그런데 나는 요가에 정착했다. 요가에는 대개의 운동이 가지고 있는, 반복과 훈련을 통해 몸의 성취를 쌓아가는 신체적 유익이 분명 존재했다. 내가 바란 것이 그런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매트 위에서 그 흔한 소도구 하나 없이 오직 내 몸뚱이 하나에만 의지한 채 버티다 보면 어느샌가 몸은 잊혔다. 나는 몸을 쓰면서도 몸을 잊었다. 내가 버텨야 하는 것은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수없이 흩어지는 산란한 마음을 매트 위에 잡아다 놓고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은 배와 허벅지를 가까이 붙여 내려가다보면 거기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고통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나를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고통과 자유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매트 위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며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요가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유익은, 그러니까 육체적인 것이 아닌 셈이다.
요가는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구하지 못했다. 삶에는 애초에 숏컷 따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가는 내 삶을 구하지 않고도 내가 살아가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견디어야 하겠고,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러니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의지는 매트 위에서 조금씩 생겨났다.
내일도 알람은 5:55에 울릴 것이다. 일어날 일 없이 천년만년 누워 있는 새벽도 좋지만 알람 소리에 깨어 더 눕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화장실로 향하는 새벽도 소중하다.
어차피 인생은 밸런스 게임인 것. 아침에 요가를 하는 삶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아침부터 요가를 하지 않아도 견뎌지는 삶이 있다면 나는 그 삶을 선택하고 싶다. 다음 생에선 가능할까. 그러든 말든 이번 생은 이대로 간다.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