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근마켓 헤비유저다. 당근마켓에 처음 가입한 연월은 2019년 12월 12일. 때는 이사를 앞두고 집 안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던 시기였다. 평소 예쁜 쓰레기들을 잘 사다 모으는 바, 이삿짐 패킹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 잡동사니들을 바라보니 내다 버려야 할 것들 천지였다. 이것들을 이고 지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닐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까웠다. 누군가는 요긴하게 쓰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말로만 듣던 당근마켓(이하 ‘당근’)이라는 앱을 다운 받아 설치하기에 이른다.
처음으로 당근에 올린 물건은 캔들워머였다. 당근을 해보자 마음먹고 집안을 둘러보니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캔들워머가 눈에 띄었다. 고가의 물건도 아니고 첫 거래용으로 시험 삼아 올려 보기에 적당한 것 같았다. 캔들워머는 평소 향초를 잘 사용하기에 구입했던 것인데, 알고 보니 나는 향초에 불을 붙여 태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성냥을 긋는 행위부터 심지에 불이 옮겨 붙으며 내는 소리와 타오르는 불꽃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향초를 밝히는 일련의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캔들워머를 산 뒤에야 알았다. 조명의 열로 캔들을 녹이는 방식의 캔들워머는 그래서 오랫동안 집안 한구석에 방치되었다.
때가 왔다. 나는 구석에서 시들시들 앓고 있던 캔들워머를 마침내 집어 들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이리 저리 돌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사이즈와 구성품, 상품의 상태 등을 가능한 정확하게 적어 두는 것이 중고 거래의 매너이자 추후 구매 희망자와 대화 시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채팅을 방지하는 길일 터. 간단하지만 명료한 설명을 달고 마지막으로 적정 가격을 기입하고는 ‘작성 완료’ 버튼을 눌렀다. 이게 뭐라고 떨렸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이게 팔릴까? 그냥 내가 쓸까? 별의별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전에 동시에 두 개의 채팅 알림이 울렸다.
-저 주시겠어요
-구매 희망합니다
이렇게 빨리 채팅이 온다고? 얼결에 제일 먼저 메시지를 보낸 사람에게 답을 하려던 찰나, 새로운 채팅 알림이 계속 이어졌다.
-제가 살게요
-혹시 직거래 하시나요?
-안녕하세요. 구매 가능하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나의 당근 진출을 이토록 온 우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후에도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 왔다. 성공적인 데뷔였다. 그게 그냥 가격 책정 실패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중고 시장에도 엄연히 시세라는 것이 존재했다. 뛰어난 판매자들은 시세를 면밀히 파악해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물품의 상태에 따라 가격을 매겼다. 그런 걸 몰랐던 초짜 당근러(=나)는 문전성시를 이루는 사람들에 신이 나서 연신 ‘이보시오! 줄을 서시오!!’를 외치며 ‘나 당근에 소질 있나 봐’하고 설레발을 쳤던 것이다. 내가 당근에 올린 캔들워머(미개봉 새상품이었다.)의 가격은 6,000원. 실제 판매가는 약 50,000원이다.
그렇게 순조롭게(?) 당근 생활을 시작한 나는 이후 옷, 가방, 향수, 폼롤러, 선풍기, 청소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물건들을 내다 팔며 당근온도 76.5도, 재거래 희망률 100%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당근인’에 등극하게 되었다. 나에게서 쓸모를 잃은 물건이 누군가에게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내심 뿌듯하다. 자원의 선순환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당근에 내놓으면 된다 생각하고 더 쉽게 물건을 들이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겨나긴 했지만.
어느덧 당근 생활 7년 차다. 나는 지금도 심심할 때면 이따금씩 당근에 들어간다. 당근 구경이 얼마나 재밌게요. 당근은 꼭 거래를 위해서만 접속하는 앱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관찰하기에 탁월한 인류학의 보고이자 사회학적 통찰의 장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소비의 흐름과 한 개인이 지닌 취향과 기호, 일관된 호응을 얻는 특정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힌트가 당근에 있다. 그뿐인가. 아래 캡쳐본을 보자.
당근에서는 물건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소개팅권을 올려 두었는데, 나는 소개팅 1회권의 가격이 25만원이라는 점에서 한 번, 구매 문의를 한 사람이 14명 이상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랐다. 그가 두 번째 만남에 인연을 만났다니 다행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이 사람은 당근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하여 눈물겨운 사연을 올려 두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려 앵무새를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나는 헤아릴 길이 없으나 그는 절박해 보인다. 앵무새의 특징을 적어 놓은 행간에서는 깊은 사랑과 슬픔이 읽힌다. 지역 생활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당근은 동네 인증을 거쳐 사용자 위치를 기반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반려동물을 찾는 광고를 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런가하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번에는 갑자기 집으로 날아 들어온 앵무새 주인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공교롭게도 앵무새가 가출한 동네와 같은 가락동이다. 가락동이라는 동네는 본디 앵무새가 자유롭게 날아가고 날아드는 그런 곳이란 말인가? 생김새를 보니 두 앵무새는 서로 전혀 다른 종이다. 부디 각자의 주인에게 잘 찾아갔기를 빈다.
그 뿐이던가. 당근에는 이런 중고 거래도 있다.
세탁소에서 옷을 찾을 때 주는 옷걸이를 파는 사람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집에 차은우를 들여보라는 달콤한 말과 함께 7,000원이라는 가격을 매겼다. 창조 경제다.
이게 다가 아니다. 당근에는 ‘알바’ 메뉴가 있어 동네에서 알바를 구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일정 기간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사업자도 있지만, 개인이 일회성으로 사람을 구하는 구인글도 종종 올라온다. 대표적인 것이 집에 출몰한 바퀴벌레를 잡아 달라는 글이다. 나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한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 다른 한 손에는 에프킬라를 들고 결연한 표정으로 바퀴벌레를 잡으러 출동하는 알바 지원자를 상상하며 건투를 빌게 된다.
가끔은 이색 알바가 올라오기도 한다. 아래와 같은 알바는 어떠한가?
7세 아이와 막춤을 추는 알바이다. 처음 보는 아이와 부모 앞에서 신나게 흔들어 재끼며 열과 성을 다해 놀아 주어야 한다. 자칫 5세 동생까지 합세해 셋이 흔드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어떠한 현타도 깃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오늘도 당근에는 인생의 수많은 희로애락이 출렁인다. 누군가는 마음 좋게 무료 나눔을 하고, 누군가는 사기꾼을 찾는다며 지명 수배에 나선다. 겨울이면 한마음으로 붕어빵 파는 곳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품 안의 붕어빵만큼의 온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오늘도 평화로운 당근마켓.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쇼핑백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보이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그를 지나친다.
혹시 당근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