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밀려드는 바다 물결 위로 햇빛이 난반사되어 누가 별이라도 심어 놓은 양 반짝거린다. 여름 바다의 황홀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나는 이내 조금 아득한 기분이 되고 만다. 어느새 입추가 지났다고 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지나온 여름을 돌아보며 이 글을 쓴다.
한때 나는 책방을 열고 싶었다. 2016년에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쓴 적도 있다.
빵집 옆에서 책방 하면서 살고 싶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풍기는 갓 구워낸 빵 냄새를 맡으며 책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얼마나 산뜻할까. 어제 읽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모두가 다 스토리를 잔뜩 품은 주인공처럼 보일 것만 같다. ‘종류별 빵과 가장 어울리는 책 찾기’ 같은 병맛나는 대회도 열고, 골라 가는 책 목록을 살피며 그 사람의 취향이랄까 성격 같은 것들도 멋대로 상상하면서. 빵집 열 사람 찾습니다.
그러니까 책방은 책방인데 이제 옆에 빵집을 곁들인, 그런 책방을 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람 참 안 변하지. 거의 10년 전인데 난 여전히 빵집 옆에 책방을 열고 싶다. 식전빵도 먹고 식후빵도 먹는 자타공인 빵순이로서 최근에는 이런 문장을 혼자 보는 일기의 말미에 쓴 적도 있다.
빵 없이 살 수 있나, 나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혹한 질문은 이것이다. 책 없이 살 수 있나.
빵과 책을 좋아하는 내가 꿈꾸는 노년의 풍경은 그러니까 빵집 옆에서 책방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혈당 걱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하고 월 임대료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건강하고 돈 많은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매우 요원해 보이나 꿈꾸는 데에 돈 드는 것 아니니 나는 종종 자기 전 이런 상상을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으며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 한두 편 정도는 거뜬히 읽는 할머니. 통밀빵이나 잡곡빵 같은 건강빵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브리오슈 같은 버터와 계란이 듬뿍 들어간 폭신한 빵이면 좋겠다. 커피는 따듯한 블랙으로. 그러다 책방 여는 시간에 맞춰 가방을 챙겨 출근하는 할머니. 챙겨 든 가방 안에는 수영복이 들어있다. 책방 오픈은 9:30. 그 시간이면 책방 옆 빵집에서 갓 구운 빵냄새가 골목을 채우는 즈음일테지.
작가 박경리는 생전 남긴 마지막 시에서 이렇게 썼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옛날의 그 집’ 중 일부
나는 오래전부터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되기 싫어도 어차피 될 터인데, 시간의 속도에 경악하면서도 할머니가 된 이후의 삶을 꿈꿨던 것은 젊은 날의 번뇌와 부대낌을 감당하기에 벅차서였다. 마음이 괴로워 잠 못 이루던 날에는 그래서 ‘이리 편안한’ 할머니가 된 나를 생각하며 불면을 견뎠다.
책방은 하계에는 17:30, 동계에는 16:30에 닫을 예정이다. 퇴근하며 다음 날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 가방에 넣고 나는 수영장으로 향한다. 오렌지색 수영복을 꺼내 입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25m 레인을 몇 바퀴씩 유영하는 할머니. 한 시간의 수영 후 선풍기 앞에서 털레털레 머리를 말리고 집으로 걸어오는 할머니. 집에 와서는 그 날의 집안일을 하며 음악을 듣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 될 수 있을까. 이 여름, 책상 앞에 앉아 바다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즐거운 상상에 잠긴다. 여전히 빵집 열 사람을 찾는 중이다. 관심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