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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by
박하
Aug 28. 2024
부산에서 태어나고 살던 나는
2005년 울산이라는 도시로 왔다.
여동생과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울산에 있는
대학가 앞에 호프집을 차렸다.
가게를
인수 한후
자매간의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주방을 맡기로 하고
동생은 홀은 맡아서 운영하기로 했다.
일은 분업으로 했지만 장을 보는 건 늘 함께했다.
나는 호프집을 차리고 2007년이 되는 해
결혼을 하고 허니문 베이비를 가지게 되었다.
임신을 하니 먹고 싶은 게 많았다.
가게에 발목이 잡혀서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먹으러
나
갈 수가 없었다.
뱃속 아이의 예정일은 겨울의 마지막 달인 2월이었다.
주방에서 일을 하니
파전 냄새가 나에게는 제일 곤혹이었다.
파전의 기름 냄새만 맡으면
어지럽고 속이
미슥거려 견디기 힘들었다.
그럴
땐 가게 냉장고에 있는 수박하나를
먹으면 그나마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한창
입덧이 있을 때는 여름이 지난 계절이라
수박이 너무 비쌌다.
과일 안주로 나갈 수박을 내가 먹고 싶다고
마구 먹을 수가 없었다.
동생과 동업을 하다 보니 눈치도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몰래 먹는 음식이 맛있다고
동생 몰래 수박을
여러번 꺼내 먹었다.
가끔 비싼 수박 먹는다고 타박을 주는
동생이 미웠지만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임신기간 내내
수박에만 유난히 손이 많이 갔다.
그 당시
단물이 슝슝 나오는 빨간 수박은
나에게 영양제이자 생명수 같은 존재
였으니깐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들이 태어났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수박이 그렇게 맛있더니
태어난 두 아들 모두 수박 킬러가 되어
이 세상
에 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여름에 먹는 수
박의 양은
어마무시했다.
수박을 사 놓는라 등골이 휠 정도였다.
사춘기가 되니
수박을 헤치우는
속도는 더 빨라졋다.
수박
한 통 사면 하루 만에 수박을 해치워 버렸다.
올케네가 수박 농사를
했었는데
한
해 수박이 못나서 못 팔았다며
수박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 생각났다며
수박을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suv차량
뒷좌석 가득 수박을 챙겨 와
여기저기 나눠주고
우리 집에는
나름 계산해서 넉넉하게
10통가량
내려두었다.
크기도 컷고 10통의 수박을 넣어둘
냉장고도 없었다.
하지만 밭에서 바로 가져온 수박이라
싱싱해서 인지 밖에 두어도 달고 맛있
었다.
그
맛있는
수박을 우리는 한통도 썩히지 않고 다 먹어치우는
기염을 토해냈다.
올케네도 놀라고
우리 가족도 놀라고
우리 가족
의 수박 먹성에 온 가족이 놀래기도 햇다.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할 그날의 수박을
우린 잊지도 못하지만 그 이후로
같은 맛의 수박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올해는
기후 탓인지 수박 가격이 비싸서
수박을
몇 통 먹지 못했다.
수박
농사하던 올케네 부모님도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수박농사도 접어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여름이면 꼭 회상한다.
그때 그 10통의 거대한 수박을...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또 먹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마지막 여름밤 우리는
그때의 수박을 회상하며 맛있는 수박을
다
해치운 우리 가족이 대단하다며
한바탕
웃으며 여름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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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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