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50분의 엄마

by 박하

아침 7시 50분,

핸드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면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알람을 끈다.

그리고는 엎드린 채 고양이 자세를 취한다.


나에게 7시 50분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라

고2 큰아들을 깨우는 시간이다.


침대를 없애고 두툼한 매트 위에서 잠을 청한 이후로

벌떡 일어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굳은 허리를 고양이처럼 천천히 풀고 나서야

비틀비틀 일어나 아이들 방으로 향한다.


“지호야, 일어나.”


세 번쯤 이름을 부르고 나면

나는 이미 오늘 할 일을 다 끝낸 사람처럼

다시 소파로 몸을 던진다.


그 시간, 둘째는 이미 집에 없다.

공부도 안 하는데 왜 그렇게 학교를 일찍 가냐고 묻자

둘째는 늘 같은 대답을 남긴다.


“난 그냥 아침 공기가 좋아. 그래서 일찍 가.”


가볍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침형 인간은 타고나는 거구나.'


남편은 그 시각,

안방 화장실에서 변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전날 먹은 모든 것을

아침에 정직하게 비워야 하루가 시작된다며

좀처럼 화장실 문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 있다.


올빼미 인간으로 산 지 오래된 나에게

완벽한 아침이란 없다.


문득 어린 시절의 아침이 떠오른다.

새벽같이 출근하던 아버지를 위해

정성스레 상을 차리던 엄마.

세 남매의 서로 다른 입맛을 맞추며

도시락을 싸던 손길.

그리고 꼭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야 했던 나를 위해

미역국, 콩나물국, 재첩국, 시래기국…

날마다 다른 국을 끓여주던 엄마.


나는 그렇게

아침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딸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두 아들, 아니 세 남자의 아침을 차리지 않는다.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던 남편은

너무 거한 아침을 요구하다가

오랜 실랑이 끝에 남편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제는 스스로 아침을 해결하는

세상 다정한 남편이 되었다.


입이 짧은 첫째는

아침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며 거부했고,

그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렇다면 둘째는?

챙겨주면 챙겨주는 대로 먹지만

늘 내가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선다.

그래서 둘째는

냉장고를 열고 알아서 아침을 챙겨 먹는

효자 중의 효자가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면

사람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엄마 맞나?


엄마 역시 말한다.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진 않았는데…”


맞다.

엄마는 나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모든 엄마가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밤에 일을 해야 비로소 능률이 오르는 사람이고,

완벽한 밤을 살기 위해

아침을 조금 내려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아침에 불평하지 않는 세 남자에게

고마움은 늘 마음 한가득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

나는 누구보다 단정한 커리어우먼으로

아침을 살아낸다.

완벽한 아침형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다.

완벽한 저녁형 엄마가 되면 되니까.


오늘 아침도

나는 소파에서 책을 읽다 스르르 잠든

철없는 엄마였지만,

저녁에는 누구보다 환하게

세 남자를 맞이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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