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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무지 그리고 사랑>

by 윤그린

폭설이 끝난 병원 근처의 새하얀 공원

당신과 처음으로 강가까지 걸었던 날,

고요함이 영원할 듯 늘어지는 동안

우리의 마지막 산책이 끝나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멀리서 당신 발자국만 밟아댔다


어제는 거울 너머 그토록 굽었던 어깨가

잔소리를 듣지 않을정도로 적당히 말려있던 날,

이제 당신 등이 대신 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어도

식탁에 앉은 당신의 옆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오늘은 손마디 사이로 너 목소리가 빠져나갔다

모든 둥지의 골수를 빼먹은 뻐꾸기가 되어서야

다른 최선들이 선명해져


모든 것이 흩어진 뒤에는

내가 안으로 떨어진 날과 내가 밖으로 떨군 알들을 마주한다


기억을 따라 헤매던 눈꺼풀 아래 암흑도

침대 위를 뒤덮은 미지의 질문들도

두렵지 않을 때 즈음


둥지 안에 스며드는 햇빛과 밀려나는 어둠 그리고 나의 무엇


그래- 이제는 손바닥을 마주보며

어린 사랑들을 곱씹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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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무지 그리고 사랑>

윤그린:: 그날의 여운

2024년 11월 03일 (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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