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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을 가라앉힐 잠깐의 시간도 허용되지 않는 거야?


고단한 하루의 막바지에 육아의 울분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 시작은 오랜만에 가진 나만의 새벽시간을 20분 만에 반납하는데서 출발했다.
새벽녘에 잠깐 깬 첫째가 함께 자고 있던 엄마가 안 보이자 놀랐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를 불러댔다.

깜짝 놀란 나는 급하게 노트북을 끄고 허둥지둥 첫째 옆으로 달려가 토닥여주니 다시 깊이 잠든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둘째 녀석이 울며 깨났다.
"휴~"
쏜살같이 둘째에게로 갔고, 그렇게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둘째는 100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다고 목소리가 커지고 성질을 냈다.
누나가 등원하고 나서도 깊게 자지 못했고, 재우고 눕히면 20분도 안돼서 울면서 깨나기를 반복했다.
본인도 푸~욱 자지 못하니 졸린지, 일어나서도 찡찡이다.


'하루 전과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을까...'


100일 넘은 아기라고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머리끈 질끈 묶고 시위하는 거 같았다.

혼자 놀라고 바운서에 앉히고, 쏘서에 앉혀봐도 찡찡 끙끙대며 나를 찾는다.
집안일 하다 칭얼거리는 소리에 말 한번 걸어주면 좋다고 방긋 웃는데, 어찌나 해맑게 웃던지 투덜대며 짜증내는 내 모습에 미안함이 묻어났다.

마음을 가다듬고 둘째가 더 찡찡대기 전에 서둘러 집안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마음이 급하니 집안일도 허둥댔고, 밀려 있는 집안일이 서로 양쪽에서 잡아당기니 나는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설거지하며 수저통에 넣던 수저는 자기 집 아니라며 튕겨 나왔고, 밥통은 밥이 떨어졌다고 입을 크게 벌려 시위했고, 젖병은 온몸이 간지러우니 씻겨달라고 게거품을 물고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때마침 둘째는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순간 신경질이 났다.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감정은 통제가 안되었고, 둘째에게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나 노는 거 아니라고! 그만 좀! 찡찡대라 좀!! 제~~~~~~발!  혼자 좀 놀라고!!'


울분을 토해냈지만, 성에 차지 않았고, 남은 울분들이 목을 뜨겁게 찢어댔다.

그렇다고 집안 정리를 놔버릴 수도 없는 갑갑하고 미련한 엄마.

첫째 하원 전에는 집안일을 끝내야 저녁시간이 그나마 수월하기에 멈출 수 없는 엄마.


엄마 마음을 알 수 없는 어린 둘째는 계속 품에서만 놀라고 했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끓어오르는 엄마는 둘째를 거칠게 안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본능은 있기에 둘째는 당연히 울어댔다.

그러다 배고파하면 분유 먹이고, 놀다 졸려하면 재웠다.
그러나, 눕히면 30분도 안돼서 깨나는 통에 잠깐이라도 자는 시간이 제한시간이 되어 서둘러 집안일을 끝내야 했고, 나는 점점 녹초가 되었다.


울분이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배꼽시계는 어김없이 울어댔다.

아무리 슬프고, 힘들고, 피곤해도 본능은 어쩌지 못하는 인간이란 존재가 작디 작음을 실감했다.


'나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쩌겠어. 어서 먹자'


한 숟가락 떠먹는데 둘째가 울며 깨났다. 삶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사람답게 밥 먹을 시간이라도 달라고 기도해보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기가 생겨 다 먹고 둘째에게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마음이 조급하니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5분 만에 마시다시피 하며 서둘러 먹고, 둘째에게로 갔다.

어느새 첫째의 하원 시간이 되었다.
걱정했던거와 달리 첫째는오늘따라 말을 잘 들어줬다.
어찌나 고맙던지 얼굴에다가 뽀뽀로 도배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둘째가 문제였다.

아침부터 저녁이 돼가도록 뭔가가 불편하면 성질을 냈고, 낮에 푹 자지 못했기에 계속 칭얼거렸다.
놀아줘도 칭얼거려, 눈 마주치며 말 걸어줘도 칭얼거려.

답이 없었다. 계속 울게 놔둘 수도 없으니 안고 있을 수밖에......

얼굴을 비비고, 건드는 모습에 졸린 거 같아 재워보지만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처절한 극기 훈련이 따로 없었다.

재우긴 재워야 했기에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백색소음, 쪽쪽이, 아기띠'

비장의 무기로 무장하니 간신히 재워 눕힐 수 있었다.
바로 그때 첫째가 "엄마~~~~~!!!! 여기로 와봐!"라고 소리치는데, 내 주먹이 빛보다 빨리 날아가 첫째를 휘갈길 뻔했다.
동생에게 두 시간이나 엄마를 양보했으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엄마를 얼마나 불러대던지.... 히스테리가 올 거 같았다.
그 소리에 둘째는 당연히 울며 깼다.


첫째는 짜증내고, 둘째는 운다.

내 몸은 하나인데, 어쩌란 말이냐....

이 상황이 숨이 막히고, 심장은 큰 바위에 짓눌려 터질 거 같았다.


순간, 내 신세가 비통했다.

열심히 해도 끝이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줄줄이 넘어야 할 미션들이 날 위협하며 떨어졌다.

점점  머리가 아파지더니, 편두통도 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울 때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왼쪽 머리엔 바늘에 박혔다.

울음이 쏟아질 거 같았지만, 운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고, 돌파구도 없다는 걸 알기에, 입술을 꽉 깨물고 맞닥뜨려야만 했다.

급한 대로 타이레놀을 까서 삼킨다.

우선, 오래 기다려준 첫째에게 가서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주고나서,  "동생이 우니 데리고 와서 같이 놀자."라고 타일러 둘째를 데려왔다.
둘째 녀석은 잠을 잘 자지  못했으니, 어떻게 해줘도 여전히 찡찡 모드였다.
다시 왼쪽 머리에 바늘이 박히기 시작했다.
첫째에게 미안하지만  또 한 번 양해를 구하고 둘째를 재우기 시작했다.


드디어 구세주가 퇴근하여 난장판인 현장에 등장했다.
신랑은  녹초가 된 내 모습에 서둘러 첫째를 케어해줬고, 그 사이 둘째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둘째를 안은 채로 멍하니 TV를 보는데 <대화의 희열:아이유 편>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걸 보며 오늘의 피곤함과 울분을 가라 앉히고자 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도 퇴근하셔서 오셨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나?!
갑자기 첫째가 졸리다며 자기 방으로 가서 눕겠다고 했다.
그 소리에 신랑도 시어머니도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내 짐작대로 첫째는 눕고 나서,
"엄마~~~ 빨리 와"라며 나를 찾는다.
어찌나 소리치던지....
첫째에게 가고 싶지 않던 나는,  못 들은 척 멍하니 TV만 바라봤다.
첫째 목소리는 커졌고, 칭얼거리며 "엄마~~ 보고 싶어! 엄마~빨리 와!"라고 연신 불러댔다.
신랑도 어머니도 어서 첫째에게 가보라고 눈치를 줬다.

그 순간이었다.
모든 게 부질없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울분을 가라앉힐 잠깐의 시간도 내겐 허용되지 않는 거야?!
난 사람 아니야?!!!!!!'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 했다.
둘째를 눕히니 역시나 깼다.
둘째 재운 지 20분도 안돼서 내 고생이 물거품이 되니, 더욱 신경질이 났고, 감정은 소용돌이치며 걷잡을수 없었다.

"알았어!!!! 간다고!!!!"


모두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소리쳐버렸다.
어머니랑 신랑은 놀랬다.
난 모두에게 시위하듯 보란 듯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신랑은 눈치를 채곤, 어머니는 둘째를 맡으셨고, 신랑은 첫째를 어르기 시작했지만, 씨알도 먹히질 않았다.
신랑과 어머니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첫째는 한 옥타브씩 높혀 소리 쳤다.
난 그렇게 10분을 멍하니 앉아있었지만, 목에선 불이 뜨거웠고, 속에선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감정이 좀 진정되자 첫째의 칭얼거림을 끝내줘야 하는 건 나라는 걸 알기에 마지못해 첫째에게로 갔다.


신랑과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며,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 했다.

역시나 첫째는 잘 생각이 없다.
'하긴 시간이 8시 반인데 잘 리가 있나.. 11시 반에 자는 녀석인데...'
첫째는 책도 읽고 싶고, 놀고 싶다고도 했다.
난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어서, 굳은 표정으로 신경질을 내며 신랑을 불러댔다.


그렇게 2시간이 흘러 상황은 안정이 되었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신랑은 내게 무슨 일 있었나며 묻는데 말을 할 수 없었다.
말을 하면 하루의 울분이 댐에서 넘쳐흘러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어느덧 첫째를  재울 시간이 됐고 나의 마지막 미션이 던져졌다.
그렇게 11시 반이 되어 마지막 미션을 종료했고, 나는 드디어 쉴 수 있었다.

첫째의 자는 모습을 보니 미안함이 마음을 깨트렸고, 엄마는 뿌연 안개에 둘러 쌓여 흐려졌다.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무겁고, 버겁게 느껴졌던 하루.

어떻게든 엄마라는 짐을 이고 나아가야 할 텐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 속상했다.

과연 나는 아슬아슬하게나마 끝까지 짐을 이고 갈 수 있을까.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이 눈을 부시게 한다.

우리 엄마도 이 길을 걸어갔겠지.

자기 존재를 버려야 하고, 감정도 없는 인형이 되어야 하고, 벗어나고 싶다고 벗어 수도, 외면할 수도 없기에 맡은 바 책임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시간은 흘러 할머니가 된 엄마는 내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웃으며 말한다.

아픔과 슬픔도 추억이 되면, 그리움으로 반짝인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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