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면 많은 변화가 있다. 피부도 퍽퍽해지고, 살은 물컹 거리고, 머리는 허구한 날 빠지며, 얼굴에선 화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쌩얼로 집안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아줌마가 되어 간다.
싱글 생글했던 아가씨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풋풋했던 아가씨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아이 보고, 집안일을 하다 잠깐 숨 돌릴 때면 무표정하게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아줌마가 내 앞에 서있었다.
그 아줌마는 피곤으로 입술이 터 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눈동자는 메마른 사막처럼 황량했다.
주위에서 조금만 신경을 건들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짜증과 신경질을 꺼내 들어 상대방에게 쏘아댔다.
내가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 되다니.... 상상하지 못했던 낯선 모습을 마주할 때면 섬찍하기도 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나는 누구였으며, 내 안엔 얼마나 많은 모습들이 고개를 숙이고 숨어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쩔 땐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예민함이 극에 달할 때면 숨어 있던 괴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올 채비를 했다.
헐크처럼 자아의 분열을 일으키며, 포악한 파괴본능을 드러낸 채 상대방에게 괴성을 질렀다.
지금까지 상대방에게 이토록 괴성을 지르며 화를 낸 적이 있었던가.
괴물 같은 모습을 내보인 건 내 인생에서 아이가 처음이었다.
멋도 모르는 아이에게 고래고래 괴성을 지를 때면, 나 자신도 소름이 끼쳤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애 앞에서 무슨 행동을 하는건지 한심함의 끝이었고, 내가 이토록 불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화의 불씨를 잘도 감춰두며 살았구나 싶었다.
나란 인간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많은 생각이 몰려와 나를 집어삼켰다.
생각해 보면 아이와 신랑에게 화를 낸 적은 많았지만, 여태 머리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날의 기억이 있다.
첫째가 5살이었고, 내가 둘째 임신 중기를 달리고 있던 때였다.
그 시기에 첫째는 자주 찡찡대며 알아듣기 힘들게 입안에서 웅얼거리며 말하기 일쑤였고, 그날도 그랬다.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해서 평소에 잘 먹던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주었는데, 아이는 자기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며, 부리나케 냉동실 문을 열더니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없다며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네가 다 먹어서 없어. 일단 있는 거 먹고,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은 또 사러 가자”
타일러 보지만, 안 먹겠다고 찡찡대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아이스크림을 제외하면 냉동실에는 많은 아이스크림이 있었는데, 아이의 투정을 받아주며, 사러 나간다면,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어 이런 상황이 올때마다 떼 부릴 것이 불에 보듯 뻔했기에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냉동실에 다른 아이스크림이 많은데, 이걸 다 먹어야. 다시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지. 이 아이스크림 먹기 싫으면 다시 넣어 둘게”
아이에게 주려던 아이스크림을 도로 냉동실에 넣으려고 하자, 아이는 찡찡대며
“아니야.... 먹을 거야”
그래서 주면...
“(찡찡대며) 먹기 싫은데....”
갈대처럼 몇 번이나 흔들리던지 맥이 빠졌고,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냉랭해진 엄마의 아우라를 느꼈는지, 첫째는 위축됐지만, 눈치를 보며 여전히 찡찡댔다.
아이의 계속되는 칭얼거림에 숨이 턱 막혔지만, 화를 삼키며 달래 본다.
“우선 이거 먹자! 있는 거 먼저 먹어야 네가 사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지!”
아이스크림을 아이에게 건넸더니, 안 먹겠다며 내 발 앞으로 던졌다.
그 순간 내 머리에선 나사가 풀렸고, 자제력이 터지며 나도 터지고 말았다.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며, 오른발이 앞으로 나갔고, 아이스크림을 있는 힘껏 짓뭉개고 있었다.
“그래! 먹지 마!! 먹지 마~!! 먹지 말라고!!!!”
짐승처럼 밟고 또 밟았다.
나의 감정의 파편들은 사방팔방으로 터져 나갔다.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에게,
한심한 이 상황에,
분을 이겨 내지 못한 나를 향해 밟고 또 밟았다.
아이스크림은 포장지가 터지며 내용물이 흘러 바닥을 진득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아 서글펐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서 헤어 나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이는 놀라서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숨 막히는 공기를 계속 들이마시다 보면 괴물이 다시 나를 집어삼킬까 무서워, 성급히 방으로 피신하고 말았다.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지만, 이 상황에 대한 불신, 못난 나에 대한 한탄의 파편이 깊이 박혀 빠지지 않았다.
첫째는 여전히 거실에서 서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못난 엄마를 불러대며.... 목청이 터져라 ‘엄마~ 엄마~’라고....
자격도 없는 엄마를 엄마라 불러주는 첫째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감정조절을 못한 것에 대한 자책
아이에게 심하게 화낸 것에 대한 한심함
육아가 버거워 미칠 거 같은 괴로움
그 이외의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은 얽히고설켜 온 몸을 휘감았다.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며, 아이에게로 갔다.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신 안 그럴게요.... 다신 안 그럴게요...”
라고 말하기만 할 뿐이었다.....
엄마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엔 입이 떼어지지 않았지만,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선 해야만 했다.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정말...”
“으아아 앙”
아이는 더 운다..... 그리곤 내게로 와서 안긴다.
두 번 다시는 아이에게 오늘과 같은 상황을 안겨주지 않겠노라 다짐했고, 여태 같은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아마 아이가 큰 이유도 있겠지만, 나도 그만큼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라는 자리는 내 안에 깊숙이 숨어 있던 어두운 감정들을 이끌어 내며 파국으로 이끌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이 되어 아이에게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보일지도 모른다. 육아가 버거운 상황에선 괴물이 자주 뛰쳐나오려고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차차 하나하나의 직면한 상황들 속에서 얻은 지혜들로 실타래를 이루며 튼튼한 줄이 되어 아이와의 줄다리기에서 흥분하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 힘들겠지만, 괴로운 육아를 이겨내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힘든 순간에 얻은 순간의 깨달음들은 기폭제가 되어 더 나은 육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