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이었기에 2박 3일 입원을 해야 했다. 첫째를 떼놓고 병원에 있는 건 죄지은 사람처럼 불편했다.
그럼에도 회복하는데 집중할 수 있어서 편했고,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문턱에서 잠시나마 도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몸은 아파서 괴로웠지만 혼자만의 휴가처럼 달콤했다. 행복할 때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게 흘러갈까.
어느덧 퇴원 당일이 되었다. 신랑이 퇴원수속을 마치기가 무섭게 청소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나가시는 거죠?"
떠밀리듯 나온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섰다. 친정엄마 품에서 잠든 세윤이는 다른 세상에 있기라도 한 듯 평온하다. 둘째가 깰세라 조심스레 차를 타고 집을 향했다.
차 밖의 풍경들은 여느 때와 같았지만 새로웠다.
자전거를 타고 바삐 달리는 아저씨, 유모차를 밀며 신호등을 건너는 엄마, 아이 손을 잡고 마트에서 나오는 할머니, 하늘에선 구름이 지나가고, 나무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 옆으로 차들은 붕붕거리는 소음을 뿌려댔지만, 숲 속을 보듯 편안했다.
'아이를 분만하던 순간에도 바깥세상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겠구나.'
어둑한 분만실에서 악전고투하며 둘째를 출산하던 시간도 물처럼 흐르는 일상의 한 순간이었다.
시간의 물결은 멈춰지지 않음에 시계 한 바퀴를 돌게 했고, 덕분에 두렵고 무서웠던 분만도 끝이 났다.
첫 번째 분만은 뭣도 모르고 했다면. 두 번째 분만은 그 과정을 알기에 두렵기만 했다.
"겁먹지 마. 첫째보다 금방 끝나더라."
"진진통 오고 2시간도 안돼서 순풍 나오던데요?! 걱정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
주위에서는 걱정 붙들어 매라며 연거푸 말했다.
그들의 말을 위안으로 삼았지만 분만일이 다가올수록 심장은 제멋대로 쿵쾅거렸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무서운 장애물은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와 거대한 형체를 드러냈다.
7월 22일 일요일아침 6시 반 500원 정도의 크기로 갈색 혈이 애매하게 비쳤다.
'이게 이슬인가?!' 할 정도로 소량이었다. 첫째 때와는 달랐다. 헷갈렸다.
한 시간 뒤갈색 덩어리가 나왔고, 두 시간 뒤에는 갈색 덩어리와 극소량의 선홍혈이 비쳤다.
그제야 이슬이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행히 다니던 산부인과는일요일에도 응급환자를 위한 오전 진료를하고 있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바로 내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제 곧 분만을 하는 건가 싶어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그날따라 아기는 유난히도 폭풍 태동을 했다. 어찌나 쉬지 않고 배가 꿀렁대던지.
손에 땀을 쥔 채 병원에 도착했다.
"이슬이 맞긴 하네요. 근처에 사신다고 하셨죠? 이슬이 비치긴 했지만 진진통이 왔을 때 바로 오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의사의 말이 끝나자 간호사가 태동검사와 내진을 위해 검사실로 안내했다.
"자궁이 1.5cm 열려있네요. 태동검사와 종합해봤을 때 입원 하기엔 애매하긴 해요. 집도 가깝다고 하시니 증상이 보이거나 배가 아프면 바로 오세요."
머쓱하게 병원을 나왔다. 귀가하고 얼마 후부터 규칙적인 진통이 15분 간격으로 왔다.
병원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됐다. 공연히 갔다가 다시 귀가 조치를 받으면 유난스러운 산모란 꼬리표가 달릴 거 같아 싫었다. 더 지켜보기로 했다.11시부터 2시까지도 진통은 15분 간격으로 여전했다. 진진통이 분명했다. 신랑과 다시 병원을 향했다.
거짓말처럼 태동검사를 하는 40분 동안 진통이 없었다.
'요 녀석 봐라. 좀 움직여봐. 여태 잘 움직였잖아. 왜 안 움직여~!'
난처했다.
분명 11시부터 병원 오기 직전까지 규칙적이던 진통이 온데간데없었다.
간호사도 머쓱한지 애매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어서 답답하시죠? 그 마음 잘 알아요. 불안하시면 입원해도 좋아요. 근데 입원했다가 분만 진행이 더디면 병실에 계시는 걸 답답해하시는 산모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집도 가까우시니 편하게 있다가 오시는 게 좋잖아요. 근데 정 불안하시면 입원하시고요."
두 번째 출산은 진진통이 오면 빠르게 진행된다는 지인들의 말이 떠올라 겁이 났다. 그러나 만약 더디게 진행된다면?
무서운 것보단 곤란한 게 더 싫었다. 두렵긴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두 번이나 퇴짜를 맞으니, 이번엔 기필코 분만 징후가 임박했을 때 내원하리라 다짐했다.
그 순간에도 타인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내가 한심했지만, 창피하기 싫었고, 난처하기 싫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뱃속 아기는 요란하게 움직였고 진통도 돌아왔다. 어이가 없었다.
4시부터 시작된 진통은 8시까지 계속되었다. 참을만했다.
두 번이나 퇴짜를 맞으니 이게 진통인지 신경을 곤두세워서 배가 아픈 건지 가늠이 안됐다.
8시부터 11시까지 진통의 세기는 강해졌고, 10분 간격으로 규칙적이었다.
온몸이 떨렸다. 안일하게 참고만 있다가 혹여나 잘못되는 건 아닌지. 병원에 가다가 양수가 터지는 건 아닌지. 내원했다가 이번에도 헛다리 짚고 돌아오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 폭풍 검색을 했다.
검색하면 할수록 헷갈리기만 했다.
갔다가 또 별거 아니라고 세 번째 귀가 조치를 받으면, 고개를 들 수 없을 거 같았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혼자 쩔쩔매는 내게 신랑은 뭐 어떠냐며 또 틀리면 돌아오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보라고 두둔했다.
그럼에도 쉬이 전화번호가 눌러지지 않아 10분 동안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하며 만지작 거렸다. 신랑이 한번 더 격려해주자 쥐꼬리 만한 용기를 쥐어짜내 분만실 전화번호를 눌렀다.
밤 11시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여보세요? 분만실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다녀갔던 박현주 산모인데요. 증상이 애매해서요. 5시부터 진통의 세기가 강해지더니 지금까지 규칙적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항문 쪽이 종종 묵직함이 느껴지고 가끔가다 똥 쌀 거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아니!!! 산모님!! 그런 증상 보이시면 바로 오셔야죠!!! 어서 빨리 오세요!!!"
어안이 벙벙했다. 신랑과 함께 세 번째 병원 방문을 했다.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고 각진 뿔테 안경을 쓴 간호사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곧이어 내진과 태동검사가 진행되었다.
"자궁이 3cm 열렸고 태동검사 결과 5분 간격으로 진진통이 오고 있으니, 바로 입원해야 해요!!"
간호사의 말에 얼떨떨했다.
한편으론 헛다리 짚지 않았다는 게 마음이 놓였다. '이번엔 맞게 왔구나. 귀가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입원 준비를 했다. 오늘 처음 본 간호사에게 제모도 받고, 몸을 베베 꼬게 만드는 관장도 하고, 수액도 맞았다. 조금 있다가 마취 의사가 왔고, 새우등을 한 채 무통주사가 들어갈 라인을 잡아 주었다. 간호사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며 분만실로 안내했다.
분만실은 호텔처럼 쾌적하고 아늑했다. 여기서 대기하다 분만하게 된다고 간호사는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지와 조명은 갈색빛을 띠며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피아노 선율의 뉴에이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긴장이 풀렸다. 음악만 듣고 있자니 지루해서 TV를 켰다. 무턱대로 여기저기 돌리다 보니 '도깨비'가 방영되고 있었다. 역시 '도깨비'는 내 생애 최고의 드라마다.
김고은과 공유의 절절한 연기에 빠져 있다 보니 진통도 참을만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나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새벽 2시. 진통의 강도가 심해졌다.
- am2시 내진.
"자궁이 5cm 열렸네요. 무통주사 놔 드릴게요."
한 시간이면 무통주사 효과는 사라진다고 간호사는 말했다.
- am3시 40분 내진.
"자궁이 7cm 열렸어요."
"선생님 항문 쪽으로 묵직한 느낌과 변 마려운 느낌이 드는데 괜찮나요?"
"네.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어요. 좀 더 심해지면 알려주세요."
무통 효과가 사라지고 있었지만 극심한 진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간호사는 말했다.
"산모님은 체질이 타고났나 봐요. 다른 산모들보다 진통을 덜 느끼는 체질인 거 같아요. 진통을 너무 잘 참으시네요. 그리고 유도분만도 아닌데 진행상황이 무척 빠르고요."
간호사가 나가기가 무섭게 무통 효과가 사라지며 숨을 멎게 하는 진통이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내 몸에서 골반통째를 쥐고 흔들며 뽑아 가려는 거 같았다. 이러다 진짜 골반이 뽑혀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3분 간격으로 진통이 올 때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간호사가 주고 간 벨을 연신 눌러댔다.
"간호사 선생님 더는 안될 거 같아요! 골반이 뽑혀 나갈 거 같더니 지금은 항문이 빠져나갈 거 같아요. 더는 못 참겠어요!"
간호사는 황급히 내진을 했다.
am 4시 5분.
"어머!! 자궁이 9cm 열렸고, 아기만 내려오면 되겠어요! 분만 준비 바로 시작할게요! 그 사이 산모님은 아이가 내려오게 해야 하니까 진통이 올 때마다 항문 쪽으로 힘을 주고 계셔야 해요! 그래야 아기가 아래로 내려오니까요!! 알겠죠???"
'뭐?! 지금도 아파 죽겠는데, 진통이 올 때마다 항문에 힘을 주라고? 말이라고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냐!?'
간호사가 원망스러웠지만, 순산을 위해서는 따라야 했다.
얼마 후 간호사는 분만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때부터 하루 종일 달고 살았던 진통은 비교도 안될 만큼 엄청난 통증이 왔다.
항문이 뽑혀나갈 거 같았다.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안 되겠는지 내 손을 힘껏 잡았다.
"여태 잘 참으시더니, 분만 때 통증이 몰아서 오나 봐요!! 산모님 힘내세요!!"
어느새 당직 의사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내 양옆으로 간호사 세 명이 둘러쌓다.
이상했다. 첫째 분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분명 쉽다며, 순풍 나올 거라며, 진진통도 짧게 할 거라며.'
지인들이 말이 떠올랐다.
분만을 위해 힘주는 과정에서 다리에 경련이 오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더는 안 되겠다며, 산모가 너무 힘들어한다고 무통주사를 한번 더 놔줬다.
그러나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괴롭혔다.
간호사들이 한 번만 더 힘을 주라고 독려했지만 한 번만은 열댓 번이 되었다. 도저히 못할 거 같았다. 할 자신이 없었다. "어떡해~어떡해~못하겠어요. 어떡해 어떡해."를 남발하며 꺼억꺼억 울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간호사는 과호흡 하던 나를 재차 때리며 말했다.
"산모님 힘내세요. 이렇게 하시면 아기가 힘들어하고, 잘못될 수도 있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보려 발악했다.
"휴~! 휴~! 휴~! 휴~! 으~~~~~악~!!"
혼신의 힘을 한 번, 두 번, 세 번에 걸쳐 쥐어 짜냈다.
"응애~응애~"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탈진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는 경련이 일어나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원장님이 회음부를 꿰맬 때도 통증이 느껴졌지만 입을 뗄 기력도 없었다.
분만하고 나서도 훗배앓이로 고생했다. 훗배앓이는 늘어난 자궁이 원 상태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복통이다. 훗배앓이의 통증은 진진통과 똑같이 10분 간격으로 이틀 동안 왔다. 입원 중에 자궁 수축제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었고, 주사까지 맞았으니, 통증이 심하게 올 수밖에. 2박 3일 동안 병실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훗배앓이 통증으로 신음을 하며 미친 여자처럼 침대를 뒹굴었다. 회음부 상처 때문에 앉을 수도 없어 더 고역이었다.
둘째 출산을 하며 나는 다짐했다. 내게서 분만은 더 이상 없다고!!!!!! 분만이란 단어와는 영원히 이별하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