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에 담긴 엄마의 사랑

사랑은 싱크대 아래에서 창고와 베란다를 거쳐 다시 내게로 왔다

- 삐삐 삑!!

"음식이 다 되었으니 뚜껑을 여실 때는 압력추를 옆으로 젖힌 후 열어 주세요"

오쿠가 이유식이 다 되었음을 알린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우리에게 오쿠를 보내주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잘 해먹지도 않을 거 같은데 왜 보냈어."

엄마에게 투덜거렸다. 다양한 건강즙을 직접 내려 먹고, 다채로운 음식을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오쿠는 맞벌이하느라 바쁜 부부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라며 엄마는 목소리를 높였다.

처음 한 두 번은 요거트도 만들고, 삼계탕도 해 먹고, 사과즙도 내려 먹었지만, 엄마의 등쌀에 마지못해 사용했던 거라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오쿠는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는 골칫거리가 되어갔다.



엄마는 종종 오쿠의 안부를 물었다.

"잘 쓰고 있어?"

"응. 잘 쓰고 있어."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허울 좋은 거짓말만 늘어댔다. 어느 순간이 되자 엄마는 오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오랜만에 엄마는 통화하다 말고 오쿠의 안부를 물었다.

"오쿠 쓰고 있어?"

그날따라 투정 부리는 딸이 되고 싶었나 보다.

"요새는 잘 안 써. 일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주말에는 아이 보느라 정신없어서 요리 준비하는 것도 다 귀찮아."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사용해. 나중에 아기 낳고는 이유식 만들 때 요긴하게 쓴다더라."

그때는 흘려 들었다.



첫째를 낳고, 출산 휴가 3개월, 육아 휴직 3개월을 끝으로 복직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걱정이 앞섰다.

복직시기와 이유식 시작 시기가 맞물린 것이다.

이른 아침이건, 퇴근하고 나서건, 밤늦게 건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러다 구석에서 썩고 있던 오쿠가 보였다.

'아 맞아. 오쿠로 이유식도 해 먹는다고 했었지?'

검색을 해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쿠로 이유식을 만들고 있었다.

'글라스락에 재료만 넣고, 메뉴 선택을 누른 후 시작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이유식이 된다는 거지?!'



들뜬 마음으로 시도해보았다.

쌀을 뿔리고, 믹서기로 쌀과 재료들을 갈고, 글라스락에 옮겨 닮고 적정량의 물을 넣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잘 될까. 걱정 반 설렘 반.

오쿠는 1시간 40분 후 끝났음을 알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어보았다. 누가 봐도 이유식인 아기 밥이 따끈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게 오쿠는 내가 복직하고, 첫째가 돌이 될 때까지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퇴근 후 아이가 잠든 늦은 밤이든, 평일보다 더 바쁜 아이와의 주말이든, 이유식 재료를 넣고 시작 버튼만 누르면 완료 후에도 뚜껑을 열 때까지 보온도 알아서 해주는 오쿠는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다.




방법도 어렵지 않아 아이를 재우다 나도 같이 잠들면 신랑이 대신해주기도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엄마의 선물은 일을 다니는 내가 이유식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사랑도 유효기간이 지나면 식어버리듯, 오쿠도 첫째가 돌이 지난 후로는 손길이 뜸해지며 다시 구석으로,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오쿠는 장장 4년 동안 다시 골칫거리가 되었다.



부천으로 이사 올 때 오쿠를 정리할까 했다.

중고로 팔아버려. 말어?! 아이 귀찮아.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며 차일피일 미루다 1년이 또 지났다.

그 사이 나는 둘째를 임신하고 낳았다. 다시 이유식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 처음엔 오쿠로 이유식을 만들어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쿠는 오랜만에 부엌 싱크대에 다시 올려졌다. 근데 어찌 된 일인지. 만지고 싶지 않았다. 일하느라 첫째에게 못해줬던 것 그러니까 엄마의 손길이 하나부터 열까지 스며든 따끈한 이유식을 손수 만들어 먹이고 싶은 마음이 두 방망이질 친 것이다.

수고스럽더라도 냄비에 이유식을 저어가며 만들어 먹이기로 했다.



초기 이유식 때는 하나의 냄비가 사용됐고,

중기 이유식 때는 두 개의 냄비가 사용됐다.

후기 이유식 때는 세 개의 냄비를 꺼내어 만들었다.

재료 손질을 하고, 각각의 냄비에 담긴 이유식을 불 앞에 서서 저으며 동시에 정리까지 했다.

완성되면 각각의 용기에 옮겨 담고 사용했던 냄비와 식기들을 마저 설거지했다.

이유식이 만들어지고 정리하는 데까진 넉넉히 한 시간. 쉴 수 없이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시간.

그러다 낮잠 자던 둘째가 깨기라도 하면, 이유식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10개월 차가 된 둘째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 한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고, 엄마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울보가 되었다.

혼자 걷지도 못하면서 자기 겨드랑이에 내 양 손을 낀 채 집안 곳곳을 다니길 좋아했다. 허리를 굽힌 채로 아이를 따라다니는 일은 고역이었다. 앉히면 일어나겠다고 옷을 잡아당기며 소리 지르는 통에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에게 훈육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둘째로 하루하루 진이 빠졌고, 이유식을 손수 만드는 게 버거웠지만 이상하게도 오쿠는 손 대기 싫었다.

이 참에 중고로 팔기로 마음을 먹고 아예 베란다로 옮겨버렸다.



엄마의 땀이 베인 이유식을 아이에게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이유식이 끝날 때까지 해내리라.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첫째에게 못해준 정성을 둘째에게나마 해주고 싶은 마음.

첫째에게 못해준 사랑을 둘째에게나마 가득 주고 싶은 마음.

그건 일하느라 바빴던 엄마의 미안함이었다.



그러나 체력은 마음을 따라가질 못했다.

하루하루 고단한 나는 이유식을 만드는 게 점점 스트레스가 되어 갔다. 벼랑 끝에 서서야 오쿠의 편리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 팔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써보까. 오쿠가 편하긴 했지. 아이 보기도 버거운데 100% 엄마표 이유식을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오쿠를 베란다에서 꺼내왔다.

인터넷에서 이유식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여 따라 하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이유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사이.

사용했던 식기들을 설거지하고, 집안 살림을 정리하고도 아기 밥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은 남았다.

소파에 털썩 앉아 쉬거나, 밥을 먹기에도 시간은 충분했다. 덤으로 둘째가 깨지 않으면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짧게나마 주어졌다.



'삐삐 삑'

"음식이 다 되었으니 뚜껑을 여실 때는 압력추를 옆으로 젖힌 후 열어 주세요"

오랜만에 듣는 오쿠의 음성. 뚜껑을 열어 완성된 이유식은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이렇게 요긴한걸 왜 여태 외면하며 내 고집만 부렸던 걸까.

문득 친정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분명 쓸 날이 있으니 버리지 말고 갖고 있으라고 했던 엄마의 당부.

딸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요리하길 바랬던 엄마의 마음.

인터넷으로 손수 검색하여 딸에게 보낸 엄마의 모습.

그건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동안 귀중한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못난 딸.

'이번엔 둘째의 이유식이 끝나도 두고두고 활용할게 엄마.'

나직하게 혼잣말을 해본다.

관심에서 멀어졌던 사랑은 싱크대 아래에서 창고와 베란다를 거쳐 다시 내게로 왔다.

오늘도 난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오쿠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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