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험난한 육아 복판에서 지켜내고자 했던 마지막 자존심이 있었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며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엄마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아이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횟수는 줄어들고, 책을 접하는 횟수는 늘어나기에 육아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그것만큼은 기어코 지키려 노력했다.
아이와 나가 놀거나, 촉감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었던 모든 순간들은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미디어에서 아이를 보호해주었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지 않고 책을 읽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마치 승리자가 된 듯 훌륭한 엄마라는 깃발을 있는 힘껏 흔들었다.
난 엄마로서 훌륭해.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멋진 엄마라며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나면서 5년간 지켜냈던 엄마의 자존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6개월간은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아기띠로 둘째를 안아서라도 첫째와 놀아주며 책을 읽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둘째가 크면서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내려달라고 엄마 다리를 팡팡 차기 시작하면서 위태롭게 지켜냈던 방법이 한계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둘째에게 신경을 쓰는 날은 늘어갔고 첫째와 노는 게 버거워졌다.
동생을 재울 시간이면 오래 걸릴 수도 있기에 첫째를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둔 채 태블릿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동생 재울 동안만이야."
둘째를 재우고 나서도 내가 쉬기 위해 태블릿을 보는 첫째를 건드리지 않는 날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여줬던 태블릿은 20분이 30분으로, 30분이 한 시간으로, 한 시간이 두 시간으로, 신랑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자기 전까지 보여주었다.
어느새 나도 미디어가 주는 편안함에 중독되었고, 첫째가 먼저 태블릿을 찾길 바라기도 했다.
하원한 첫째는 소파에서, 식탁에서, 거실 바닥에서 태블릿을 보고 한쪽에서 엄마는 둘째를 돌보는 게 신랑이 귀가하기 전까지의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지루하거나, 엄마가 둘째를 재우거나 케어를 하기라도 하면, 놀다 말고 태블릿을 찾기 시작했고, 하물며 엄마와 놀 수 있음에도 태블릿을 보고 싶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가 기력을 쥐어짜 낼 수 있겠다 싶은 날에는 태블릿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지만, 동생이 울어댈 때면 흐름은 깨지고, 첫째는 어김없이 태블릿을 찾았다.
엄마의 노력에도 미디어를 찾는 아이를 볼 때면 힘이 쭉 빠졌다.
6살인 첫째와 9개월인 둘째를 동시에 케어한다는 건 몸이 하나인 엄마에게는 한계였다.
이럴 거면 둘째를 괜히 낳았나 싶기도 했다. 외동으로 기르며 원칙을 지켰다면 스마트폰은 멀리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도 밀려왔다.
그러나 형제는 있어야 한다는 고집이 더 큰 나.
그래. 미디어 좀 본다고 뭐가 잘못되나?
나는 맞벌이하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
초등학생때가 기억난다. 텅 빈 집안에 혼자, 아님 언니나 동생과 투니버스를 틀어놓고 종일 만화에 빠져 지냈었다. 아따아따, 루팡 3세, 세일러문, 카드 캡처 체리와 같은 만화들은 나의 혼을 쏙 빼먹으며 초침을 뱅뱅 돌려놓았다.
나도 그렇게 살았는 데 뭐. 그렇게 봤다고 지금의 내가 어디 잘못되기라도 했나. 어디 덧나지 않게 사회의 일원으로 녹아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어릴 적에 내가 못한 걸 아이가 깨닫고 해 주길 바랬던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면 됐지 뭘 더 바래.
아이가 태블릿을 가까이할수록 걱정도 되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미디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와 5년이란 시간 동안 쌓아 올렸던 공든 탑이 나약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의 노력 자체도 부정당한 듯 괴로웠지만, 둘째가 조금 더 클 때까지는 스마트폰의 도움을 외면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둘째가 크면 먼지가 소복이 쌓인 엄마의 자존심을 다시 꺼내 들어 노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도 숨 좀 돌리며 하루를 살아내야 하기에 아이에게 태블릿을 쥐어준다.
타인들이 지적한다 해도 막다른 육아를 헤처 나가는 건 그들이 아닌 바로 나이기에.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고 있는 곳을 지나야 하는 건 나니까.
축축한 비안개가 엄마에게 드리워졌고, 그녀는 뚜벅뚜벅 걸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