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이의 엄마가 된다는게 이렇게 혹독할 줄 몰랐습니다

둘째 분만과 그 후#2

둘째 분만과 그 후#1








집을 향하는 차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분만하던 게 꿈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바보처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떨리는 눈 커플에 힘을 주어 떠보니 분만이란 거대한 산은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어떡해?! 어떡해!!?? 진짜 끝났어? 끝난 거야? 정말이지? 진짜 끝난 거지?!'


옆에서 자는 갓난아기가 꿈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후련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이 엄습했다.

앞으로 펼쳐질 육아의 2막이 힘들 거라는 걸 각오하고는 있었지만, 두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2박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전과 달랐다.

아기 용품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는 거실, 3개의 젖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부엌. 거실 창문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암막커튼. 그 옆으론 흑백모빌이 천장으로부터 기다랗게 내려와 대롱거리고 있었다.

공간에 드리워진 공기의 무게는 앞으로의 두려움과 걱정, 고민을 무겁게 내리깔고 있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첫째를 등 하원 시켜 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산후조리원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내 몸보단 아이의 생활이 우선이었다. 고민 끝에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정부지원을 받아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조금 더 보태 2주에서 3주로 연장했다.

9시부터 6시까지 이모님과의 생활은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식사를 차려주시고, 아기를 돌봐주시고 목욕시켜주시는 도움의 손길은 3주란 시간 동안 큰 버팀목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신없는 일상은 이어졌다. 모든 게 어색하기만 했다.

아기 안는 법도, 모유 수유하고, 목욕시키고, 대소변 횟수를 체크하고, 먹는 양을 기록하고, 잠을 재우고, 새벽 수유를 하는 것은 분명히 첫째에게도 했던 일들이었지만 처음 하는 거처럼 허덕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긴 했지만, 나의 모습은 사람의 모습과는 멀어졌다.


세수는 무엇이며, 화장은 무엇이던가.

특별한 날에나 아침에 세수를 했다.

펄이 들어간 형형색색의 아이섀도우는 화장대에 방치되었고, 마스카라는 쓰지도 않았는데 말라버렸다. 고운 피부를 위해 장만했던 영양크림과 립스틱은 잊힌 채 화장대 두 번째 선반에 고이 모셔졌다.

옷이라고는 아이 침과 모유로 얼룩덜룩한 옷 몇 벌을 돌려가며 입었다.

머리는 대체로 기름이 껴 번지르르했다. 육아가 버겁다 보니 씻을 시간에 쉬고만 싶었다. 머리가 가려워도 휴식을 택했다. 신랑은 더럽다고 놀려댔지만 내겐 대수롭지 않은 농담이었다. 잠시라도 쉬지 않으면 아이를 돌 볼 수 없으니까. 외적인 모습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컨디션을 유지하고 아이를 돌보는 게 내겐 무엇보단 중요했다.

잊고 있던 4년 전 내 모습이 기억났다. 첫째가 돌이 될 때까지 추락했던 내 모습을.

둘째와의 1년도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게 막막하고 착잡했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둘을 키운다는 건 피를 말리는 거였고, 둘째보다 첫째를 돌보는 게 더욱 힘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큰애는 동생이 생긴 후로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모든 이들에게 날카로웠다.

바닥에 누워 악을 쓰고, 장난감을 던지고, 괴성을 지르며 있는 대로 심통을 부렸다.

종잡을 수 없는 탱탱볼처럼 이리 튕기고, 저리 튕겼다.

나를 돕기 위해 신랑, 친정 엄마, 시어머니가 팔을 걷어붙였지만 아이의 예민함에 두 손 두 발을 들 뿐이었다.

그러므로 첫째를 가장 비중 있게 돌봐야 하는 건 나의 몫이 었다.

떼를 쓰고, 짜증을 내고, 징징거리는 것은 엄마의 관심을 갈구하는 행동이니까.

모난 아이의 마음을 손질해줄 수 있는 건 엄마의 사랑이니까.

사실 도우미 이모님이 계실 동안은 이모님께 세연이를 돌봐달란 요청을 할 참이었다. 산후조리를 하는 몸으론 큰 애를 감당할 수 없었을뿐더러, 누군가 첫째를 돌봐주기만 한다면 둘째를 케어하는 건 한결 수월할 테니까.

하지만 세연이는 이모님을 보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고 나는 바로 포기해야 했다. 등 하원도 이모님과 하길 거부했기에 출산하고 일주일도 안된 내 몸은 바깥공기를 맞아야 했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연이를 예민한 상태로 내몰았던 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더욱 악화되었던 거 같다.

"엄마~ 이게 안돼~엄마~와봐~"

"엄마~ 같이 놀자."

평소 때였으면 엄마가 도와주거나 놀아주건만, 동생이 생긴 후로는 좀처럼 힘든 일이 되었다.

"세연아 엄마 동생 맘마 먹이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줘"

"세연아 아기 재우고 있으니 재우고 갈게. 기다려줘."

"동생 기저귀만 갈고 갈게. 기다려~."


기다려줘. 기다려줘, 기다려줘.... 입이 마르도록 아이에게 했던 말.

모유 수유를 하거나 아기를 재울 때 첫째가 나를 부르는 상황이 가장 난감했다.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해본다고 끙끙거리며 요리조리 손을 써봐도 안되니 아이는 자기 분에 못 이겨 소리를 지를 수밖에. 한두 번이 아닌 기다림은 아이의 신경을 곤두세웠고, 조금만 어긋나면 과민하게 짜증을 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매번 놓이다 보니, 내 신경은 둘째를 보살피면서도 첫째에게 가기 일쑤였다. 어서 먹이고, 어서 재우고, 어서 기저귀를 갈고 큰애가 짜증내기 전에 아이에게 가야 했다.

애타게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신경질을 내며 울기 시작하는 걸 일기에.

그래서 나와 두 아이만 덩그러니 집에 남겨질 때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거마냥 발을 동동 굴렸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내 몸과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나의 예민함도 극에 달했고, 끝내 아이보다 더 짜증을 내고, 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은 잠기지 않고 빈번히 새어 나왔다.










우리 딸은 잘 이겨낼 거라 믿었던 건 내 욕심이었을까.

출산 전부터 동생이 생긴 첫째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여러 책과 인터넷을 통해 알아봤었다.

동생이 생기면 첫째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둘째는 다르다>라는 책에서는 동생이 생긴 첫째를 폐위된 왕으로 비유한다. 폐위되기 전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존경과 관심을 받지만, 폐위된 후에는 누구 하나 관심을 주지 않는다. 폐위된 왕의 박탈감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이 뜯기고 짓이기는 괴로움이 내게도 전해진다.



어른들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소외와 무관심을 괴로워하는데, 어린아이는 오죽할까.

낯선 감정을 감당할 수 없으니 날카롭게 표출된다.

물건을 던지도, 괴성을 지르고, 때리는 이와 같은 행동들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상처 받은 어린양을 부모는 인내하며 보살펴야 한다고 많은 곳에서 입을 모아 조언하고 있었다.

그래그래.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숨 가쁜 육아현장에서 마음의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엄마더러 누굴 공감하고 누굴 이해하며 누굴 신경 쓰라는 말인가.

그러나 엄마이기에 해야 했다. 내 자식이고, 내 가정이니까. 엄마의 충분한 관심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돌파구니까.


첫째가 안정되기까지 두 달이란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며 인내하고 사랑한다 고맙다 안으며 기다려야 했다.

차차 나아질 거라, 전처럼 쾌활하고 애교 많은 우리 딸로 돌아올 거란 믿음 하나로 버티고 버텼다.












나의 산후조리는 큰애 발등에 떨어진 불을 처리하는데 급급하기만 했다.

처음부터 만족스러운 몸조리를 원한 건 아니지만, 출산으로 벌어진 뼈들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심칠일 동안 만이라도 몸을 조심히 다루고 싶었다.

그러나 출산하고 이틀도 안된 몸으로 첫째를 씻겨야 했다.

엄마만 찾는 아이는 목욕도 내가 해주길 원했다. 안쓰럽게 여긴 친정 엄마가 대신해주겠다고 했지만 아이는 온갖 짜증을 부리며 거부했다.

아이를 씻기다가 찬물을 만지게 되었다.


'앗! 조리 중에 찬물을 만지면 나중에 뼈마디가 시리다고 하던데....'


서러웠다.

그럴수록 억지스러운 오기가 발동됐다.

더 처절히, 더 열심히 내 몸을 혹사시켰다.

'그래! 나중에 몸에 탈이 나도 내 탓 아니야! 난 편하게 몸조리하고 싶었어! 근데 상황이 받쳐주질 않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조리를 못해 훗날 몸이 불편해진 걸 보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때 나는 왜 그리도 삐딱하기만 했을까.

분명 내 주위에는 나를 보살펴주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산후조리 다운 조리를 할 수 없었기에 마음은 조각나 어긋나기만 했다.

후회는 되지만, 나를 책망하진 못하겠다. 다시 돌아간다고 달리 행동하진 않을 것임을 알기에.

마음의 여유라는 걸 모르던 그 시절의 내가 남을 이해한다는 건 무리였으니까.

서럽고 처량해서 정신을 차릴 수도 없던 때였으니까.









두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삶은 숨이 막히고 끔찍했다.

위태로운 마음 상태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건 혹독하기만 했다.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첫째로 인해 움직여야 했다.

모유 수유를 하느라 힘들어서 짜증으로 얼룩졌고, 잠이 모자라 아슬아슬한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

편두통으로 머리가 터질 거 같아도 두 아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하고, 버티고 버티다 육아의 쇠창살이 버거워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해가 뜨면 밤이 되듯, 일어나면 두 아이와 전쟁을 하고, 밤이 되면 한 아이와 사투를 벌였다. 어느 순간에는 새벽 수유로 잠을 못 자더라도 첫째가 자는 밤이 오히려 편했다. 아기만 돌보면 되니까.

40일도 안된 둘째를 안고 장맛비를 피하며 첫째를 등원시키고, 가시 돋친 첫째를 어떻게 보듬어 줘야 할지 알 길이 없어 불안과 걱정으로 절규하기도 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건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고만 싶었다.



죽을 거 같던 시간들은 지나가고, 모든 게 차차 자리를 잡았다. 정말 시간은 약이었다.

가족의 충분한 관심을 받은 첫째는 안정이 되어 갔고, 둘째는 파릇파릇 자랐다.

어느덧 첫째는 동생에게 사랑의 거름을 주기 시작했고,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찾아오던 억울함과 서러움도 드문드문 찾아오는 손님이 되었다.

때로는 서러워 며칠을 연달아 무너지기도 하지만, 처음보단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엄마로 사는 한은 일상을 짓밟는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숨 죽여 있다가 고개를 들겠지만 이겨내는 노련함과 무던함은 생겨나리라 믿고 싶다.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리던 때도 엄마라는 자리는 높게만 보였다.

아이와 마주하는 공간과 스쳐간 시간들은 내가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며 나를 변화시켰듯이.

두 아이의 엄마라고 불리게 된 지금도 그 자리가 높게만 보여도 두 아이들과의 생활은 나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가 뒤집고, 기고, 걷고, 놀고, 먹고, 기저귀를 떼고, 친구들과 놀기 시작하고, 엄마를 돕고, 졸리면 자기 방에 들어가 스스로 잠이 드는 첫째처럼.

높게만 보이던 엄마라는 자리에 앉은 내가 첫째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고, 밤잠을 설치고, 아기를 하루 종일 돌보고, 씻기고, 이유식을 만들고,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학부모가 된 지금의 나처럼.

못할 거 같던 순간과 오지 않을 거 같던 순간들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두 아이와의 폭풍우가 더 매섭겠지만, 궂은 날씨는 어느새 지나가고 맑은 하늘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니까.

이번에도 그 날을 꿈꾸며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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