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택시들이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운전기사는 대게 중년 남성이다. 살짝 벗겨진 머리에, 구부정한 자세로 오른손을 운전대에 올린 채 멍하니 밖을 응시하는 분도 있고, 운전석을 뒤로 눕혀 휴식을 취하는 분도 있고, 통화를 하는 분도 있다. 그런 중년의 아저씨들을 볼 때면 생각나는 택시 기사님이 있다.
예전 일이다. 두 아이와 영등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필이면 퇴근시간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인도의 가장자리로 가서 손을 뻗었다.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첫째를 먼저 태우고 둘째를 안고 나도 따라 탔다. 흰머리가 성성한 기사 아저씨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대략 60대 중반은 되지 않았을까.
“어디로 갈 거유?”
그게 아저씨와 나의 첫 대화였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기사님은 운전만 했다. 퇴근시간이라 영등포에서 부천까지는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나는 첫째와 이야기하다 밖을 보다 택시 미터기를 봤다. 택시비는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만원이 넘어갈 때쯤 기사님은 입을 열었다.
“저도 예전에 부천에 살았어요. 지금은 이사했지. 아들네는 인천에 살고요. 근데 이사한 아들네 집에 여태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6년 동안 말이유. 거 웃기지 않수?”
사연은 이랬다. 아들네 부부는 맞벌이를 했고 손주는 학생인데 밤늦게야 학원에서 왔다. 모두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다. 다들 바빴다.
“가도 만날 수가 없는데 뭐하러 가요. 그리고 늦게 간다 해도 민폐지 뭐. 다들 피곤한데.”
어느 날 아저씨는 너무 섭섭해서 화가 났다. 그래서 아들과 통화하다 말고, 집에 있는 시간은 쥐꼬리만 한데 왜 돈 들여 집은 산거냐며 성을 냈단다. 그렇게 말한 아저씨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아저씨의 속 얘기도 듣게 됐다.
기사님은 일찍이 혼자였다. 홀아비로 아들을 키웠고, 결혼을 시켰다. 이제 할 일 다 했으니 노년을 즐기고 싶지만 택시를 그만둘 순 없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용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아저씨는 택시를 그만두고 아들네랑 같이 살고도 싶었다. 그러나 시홀아비라 며느리는 불편한 내색을 하더란다. 그래서 같이 사는 생각은 버렸다고. 아들네한테 신세 지고 싶지 않아서라도 택시를 몰 수 있을 때까진 용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그의 뒷모습은 한 없이 쓸쓸해 보였다.
뭐라도 위로를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말이 툭 튀어나왔다.
“전 시어머니랑 사는데 괜찮던데요.”
아저씨는 말했다. 시어머니는 그래도 괜찮다고. 며느리는 시아버지 대하는 걸 더 많이 불편해하더라고. 아들과 지내던 집은 한없이 넓었고, 자식의 빈자리는 컸다. 그래서 아저씨는 작은 집으로 이사해 여지껏 살고 있다고. 그 말을 하고도 아저씨는 앞을 보며 묵묵히 운전했다. 지금 그의 표정은 어떨까? 아들이랑 연락은 자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의무가 끝난 자리에는 공허감이 들어선다. 그는 허망했고 쓸쓸했다. 할 일을 다 하고 나니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그동안 애쓴 그를 안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포근한 쉼도, 끝도 없었다. 택시로 용돈이라도 벌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아저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라도 안 했으면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며 밖으로만 싸돌아 다니거나, 그게 아니면 TV에 나오는 영감들처럼 집 근처 공원에 멍하니 앉아 시간이나 때웠겠지.”
기사님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천천히 그리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예전엔 죽을까 생각했어요. 근데 그거 알아요? 한국은 죽고 싶어도 맘대로 죽을 수 없는 나라라는 거. 자살을 하잖수? 그럼 벌금이 나와~ 그것도 500만 원. 무슨 비용인지 아슈? 시체 처리 비용이야.
한강에 빠지면 잠수부가 동원되고, 산에 목 매달아 죽으면 소방대원이 동원되잖수. 그 사람들한테 나가는 돈이란 말이지. 자살하면 본인이 돈을 못 내지?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
가족이 그 비용을 내야 한단 말이야! 애석하지 않소? 죽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맘대로 죽을 수도 없어. 죽는다고 해도 남은 가족들이 고생이란 말이야.”
이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는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죽음을 생각했던 아저씨는 알아보셨던 걸까?
난 앞 얘기는 애써 무시하면서 뒷부분에 대해서만 ‘아 그러냐고’, ‘정말이냐’고 반응했다. 아저씨가 죽음을 생각했다는 말에는 쉬이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너무도 무거웠으니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택시는 집 근처에 들어섰다. 이제 곧 내려야 한다. 어쩐지 죄송했다.
“다 왔네요. 14,000원이예요.”
나는 두 아이들과 택시에서 내려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봤다. 첫째가 어서 들어가자고 옷을 잡아당겼지만 발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1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택시 기사님을 볼 때면 그가 생각난다. 어떻게 지내실까. 여전히 혼자 살고 계실까. 아들네 집엔 여전히 안 가고 계실까.
아들네와의 해피엔딩인 결말을 바라진 않는다. 그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뿐, 현실은 다르니까. 그저 그때 이상으로 쓸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래오래 택시를 몰았으면 한다. 그래야 아저씨는 덜 외로울 테니까.
(*아저씨가 말한 대로, 공공장소에서 자살 시 유가족이 배상금을 물게 되는지가 궁금하여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공공장소 자살 벌금’ ‘공공장소 자살 유가족 배상’ ‘시체 처리반 유가족 청구’. 여러 키워드로 검색해봤지만 생각보다 내용은 많지 않았다.
태양신이나 지존들은 대부분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자살 시에 그 방법에 따라 시체 처리비용, 사고 수습비용으로 수백만 원 정도를 가족들이 내야 합니다.
어떤 기사에서는 거기에 더해 자살자가 변사체가 되면, 사건의 정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부검을 실시한다고 한다. 찰과상 또는 타박상이 보이면 자살이 아닌 타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조사하고자 시체를 부검한다고. 부검 시 부검 비용은 약 백 만원 전후인데, 유족에게 전액 청구하거나 지자체가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고 적고 있었다.
변호사의 답변도 있었는데, 법률 용어가 다소 들어가 쉬이 이해되진 않았다. 그러나 검색할수록 자살한다고 유족이 벌금을 물진 않는다는 의견으로 정리가 되었다.
여기서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는 중요하진 않다. 다만 검색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살을 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씁쓸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연간 자살 사망자는 1만 2천463명이다. 2016년 1만 3092명보다 629명 (4.8%) 감소했다. 전체 자살 사망자 가운데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7:3이고, 자살률은 대체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했다.
10~30세는 정신적 어려움, 31~50세는 경제적 어려움, 51~60세는 정신적 어려움, 61세 이상은 육체적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청소년(10~24세)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열한 번째로 높았고, 노인(65세 이상)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 2017년 자살률은 2016년에 비해 감소했지만, 여전히 OECD 최고 수준으로 심각하다. 이 숫자 속에는 각자 많은 사연과 사정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아프고, 고통스럽고, 처연할 것이다. 그들의 고통을 내가 오롯이 알 수는 없다. 다만, 100세 시대에 스스로 숭고한 삶을 끓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애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