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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싸이월드여 안녕_나의 추억도 이렇게 저무는구나

눈앞에 보이는 건 동그란 표시만 뱅뱅 도는 화면뿐이다. 벌써 2분째.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싸이월드는 찬란했었다. 도토리를 살 때는 설레었고, 배경음악을 고를 때는 고심했고, 좋아하는 사람의 미니홈피를 살필 때는 두근댔다. 그 시절 싸이월드는 ‘사이좋은 사람들’이란 모토답게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주며 활기가 넘쳤다. 그랬던 사이트가 이젠 적막하다 못해 간당간당하다. 내가 접속한 날도 그랬다. 내 미니홈피에 접속은 되는 건지 뱅뱅 도는 버퍼링 표시를 보며 속이 타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머릿속에선 그동안 들었던 말들이 시끄러이 울려댔다.

“싸이 언제 문 닫을지 모르니까 서둘러 백업해!"



2019년 10월 싸이월드엔 접속 오류 사건이 있었다. 그때 싸이월드 유저라면 부리나케 접속해 기록들이 잘 있나 살펴봤을 거다. 나도 접속이 안됐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10대, 20대 시절이 모두 거기 있는데?’ 며칠 후 싸이월드는 서버를 1년 더 연장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다행이었다. 근데 그때 나는 왜 백업을 하지 않았을까.


그 일이 일어난 6개월 후, 싸이월드에 접속했더니 버퍼링만 2분째였던 것이다. 4번의 시도 끝에 가까스로 접속했지만, 사진 하나 보기가 힘들었다. 뭐 하나 보려고 하면 버퍼링만 연신 돌아간다거나, 카테고리가 'C언어'처럼 화면 왼쪽을 채우는 식이었다. 서버가 더 불안정해졌다. 난 금방이라도 앓아누울 것만 같았다. 뒤늦게야 허겁지겁 인터넷으로 싸이월드 백업하는 법을 검색했다.



다행히 백업하는 프로그램은 있었다. 그것도 한꺼번에. 살았다 싶었다. 바로 다운로드했다. 그. 러. 나 실행은 됐지만 백업이 안됐다. 내가 뭘 잘못하는 건가 싶어 먼저 했다는 블로거들의 글을 찬찬히 읽어봤지만 잘못한 건 없었다. 두어 번 더 시도를 했는데도 안되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걸 만든 개발자의 블로그로 다시 접속했다.

‘싸이월드 쪽 서비스 부하로 인해 중지 요청을 받고 서비스를 중단합니다.’라는 글귀가 빨간 글씨로 굵게 페이지 하단에 기재되어 있었다.



'4천 개가 넘는 사진을 이제 어떻게 백업한담?' 

일일이 저장하자니 어느 세월에 끝낼까 싶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백업에 관한 정보를 찾다가 싸이월드에 관한 여러 글을 읽게 됐다. 도메인 연장은 했지만 싸이월드는 자금난으로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를 했고, 서버를 운영할 직원조차 없다는 기사에 눈이 갔다. 거기다 더해. 2020년 11월 12일까지. 그러니까 도메인 연장한 날까지만 가까스로 서버만 유지하다가 운영을 끝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성 글도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불안해졌다.



나는 바랐다. 문 닫기 전에는 운영을 중지한다는 공지와 함께 백업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주길. 근데 관리도 안되고 있는 싸이월드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때 가서도 안 해주면 어쩌지?' 내 머리는 혼란스러웠고, 다급해졌다. 나의 10대, 20대 모든 기록들을 홀랑 날릴 순 없지 않은가.

입은 왼손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오른쪽 다리는 달달 떨고 있었다. 정신없이 검색하다 보니 인터넷 창만 9개가 떠 있었다. 그중에는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올린 글도 꽤 있었다.

‘싸이월드 백업 프로그램 안 되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하나요?’라는 물음 아래에는 ‘그러게요. 어쩌죠?’ ‘아놔~ X 됐다.’ ‘럴수럴수 이럴 수~’ 등의 댓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나 역시도 X 됐다는 생각에 애가 탔다.


  

다음 날, 집착적으로 다시 검색을 했다. 백업이 무사히 끝나야 이 짓은 중단될 터다. 이번엔 방법을 바꿔서 최근 발행된 글 중심으로 알아봤다. 그리고 찾았다. ‘싸이 e북으로 제작하기!’ 차선책이지만 이게 어딘가. 블로거는 자기도 ‘싸이월드 백업 프로그램’이 안돼서 자포자기하다 혹시나 하고 ‘싸이 e북’으로 제작을 시도했단다. 글 하단에는 PDF 파일의 싸이 e북을 캡처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당장 따라 했다. 


‘싸이월드 접속 → 미니홈피 접속 → (버퍼링 때문에 다른 거 누르지 말고) 우상단에 동그라미 3개 표시 클릭→ 싸이 북 클릭 → 싸이 e북 제작하기 클릭 → 싸이 e북 제작 → 결제 → 완료되면 파일 다운로드’



중간에 버퍼링이 오래 걸리자 가슴이 타들어갔다. 화면을 뚫을 기세로 1분 정도를 응시하다 보니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아슬아슬하게 미션을 완수해나갔다. 힘겹게 파일 하나를 결제했는데 문득 의구스러워졌다. ‘만약 싸이 e북이 제작이 안되면 어쩌지?’ 혹시나 해서 남은 파일은 결과를 보고 결제하기로 했다. 처리 기간 1일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지만 내일 웃으며 나의 과거와 마주할 수 있을진 확실치 않았다. 



한 시간 후, 싸이 e북이 완료됐다는 메일이 왔다. ‘처리기간 1일 이랬는데 벌써?’ 흥분된 마음에 아이들은 뒷전이었다. 언제 안될지 모르니 서둘러 남은 파일까지 결제해야 했으니까. 둘째가 노트북을 만지려 하자 나는 화를 냈고, 아이는 바닥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마치 아이유 콘서트 표를 예매하기 위해 1초를 사투하듯 나는 맹렬히 파일들을 결제했다. 마찬가지로 한 시간도 안됐는데 제작 완료 메일이 왔다. 서둘러 파일들을 받았다. 잘 열리는지도 확인했다.


 

거기엔 10대, 20대의 내가 있었다. 오랜만에 추억들과 마주하자 뭉클해졌다. ‘맞아. 저땐 저런 일이 있었지. 내가 저 일 때문에 힘들어했었는데.’ ‘여기도 놀러 갔었구나.’ ‘이런 생각도 했었구나.’ 

머릿속에 꺼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불을 밝혔다. 기억 하나하나, 추억 하나하나가 켜질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벌써 10년 전 일이라니.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니. 나의 추억이 바래진 만큼, 나는 나이를 먹고 말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자. 

사랑하는 이를 태운 기차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무겁게 발걸음을 떼듯. 

내 추억도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고, 나도 애써 보내줘야 했다. 

잘 가. 내 청춘아. 나의 아름다웠던 추억아. 다시 또 만나자.







내 과거는 174MB로 정리되어 컴퓨터 한쪽에 새끼손톱만 한 4개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죽으면 이름만 남는다더니, 15년의 추억은 174MB 파일이 되었다. 내 15년의 흔적이 겨우 174MB라니... 왠지 서글펐다. 화려했고 복작 복작댔던 싸이월드 그리고 나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말미가 변변찮고 쓸쓸해서 나까지 숙연해졌다.


나의 과거도 함께 초라히 저무는 거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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