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시인동네> 매거진이 배송됐다. '정기구독이 끝난 거 같은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근데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왔다. 분명 무언가 잘 못됐다.
책장에 꽉꽉 들어차 있는 <시인동네> 매거진 한 권을 집었다. '전화번호가 어디 적혀 있을 텐데...' 뒷장 겉표지 하단에서 번호를 발견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1분째 연결음만 들린다. 두 번의 시도에도 연결이 안 되자 설마 다음 달에도 오겠어란 생각으로 전화 거는 걸 그만뒀다. 그리고 나는 잊어버렸다.
6월 1일 월요일. 둘째와 마트에 다녀오는데 우편함에 익숙한 물건이 보였다. <시인동네> 6월호였다. 그 자리에서 당장 핸드폰을 꺼내 대표 번호를 꾸욱 꾸욱 눌렀다. 경쾌한 트로트가 흐른다. 개인 핸드폰으로 연결되는 듯했다. 얼마 후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네~"
"안녕하세요. 저기 <시인동네> 맞나요?"
"맞습니다. 어쩐 일이시죠?"
"다른 게 아니고, 정기구독이 끝난 거 같은데, 매거진이 계속 오고 있어서요.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어요. "
중년 남성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 제가 <시인동네> 대표예요.(잠깐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내 귀엔 분명 '대표'라고 들렸다.) 제가 정이 많아요. 정기구독이 끝나셨다고 잡지를 단칼에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정기구독이 끝나도 당분간은 계속 보내드리고 있어요. 혹시 부담스러우신가요?"
"어머. 그러셨어요? 저야... 무료로 보내주신다면 감사하지만, <시인동네> 측에서 제게 보내는 일은 회사 경비가 나가는 일이잖아요."
"그냥 보내드리는 거예요. 사실, 시 잡지를 정기구독까지 한다는 것은, 저는 세 가지 경우라고 생각해요. 시인이거나, 시를 너무 사랑하거나, 시를 공부하거나. 이렇게요. 시에 관심 있는 분이 아니라면 매거진을 정기구독까지 하셨겠어요? 부담스러우시면 그만 보낼게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문득 작년 11월쯤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 일반인들도 한 번씩 들어봤을 <샘터>라는 월간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샘터> 무기한 휴간, 사실상 폐간"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적잖이 안타까워했었다.
읽는 인구의 감소는 잡지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줬다. 한때 50만부를 찍어낼 정도로 인기를 끌던 <샘터>가 최근에는 2만부 이하로 부수가 줄어들었다. 20여 년간 주목을 받아온 <인물과 사상> 역시 이로 인해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름의 영역을 굳게 다져 온 두 월간지의 휴간 소식은잡지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 현실을 재확인해준다.
<샘터>의 폐업이나 다름없는 무기한 휴간 소식은 각지의 독자들에게 알려졌고 진심 어린 응원을 받게 된다. 또한 우리 은행 등의 기업에서 임직원 구독 캠페인 등 후원 의사를 잇따라 밝힌다. 이로써 지난 50여년 간 사랑받았던 <샘터>는 폐간의 위기를 넘긴다. 그렇지만 대중지나 교양지의 ‘생존’ 자체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용준 대진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한국 잡지 학회 회장)는 “전반적으로 읽기 문화 자체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그나마 고정 수요가 있는 전문지에 비해 대중지나 교양지는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재정위기 ‘샘터’, 독자·기업 후원에 휴간 안 한다. 노정연 기자. 입력 : 2019.11.06 17:43)))
그렇다면 <시인동네>의 호의는 회사 차원에서 분명 가볍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는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을까. 난 이런 값진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았다.
"저야 보내주신다면 감사하지만, 그만 보내주셔도 될 거 같아요. 덕분에 그동안 너무너무 잘 읽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대표님은 나의 이름을 물었고, 다음 달부턴 그만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통화는 끝났다.
둘째를 출산하고 세 달 정도는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탱탱볼 같이 예민한 첫째와 모든 것에 손이 가는 둘째를 본다는 것.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육아의 난관들을 거쳐야 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몇 갑절 힘든 일이었다. 첫째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됨을 이미 알고 있기에 둘째에게 예견된 고됨은 나를 더욱 힘들고 두렵게 만들었으리라.
그래도 첫째를 키우며 버틸 수 있었던 건 글쓰기 덕이었다. 근데 둘째를 출산하고부터는 그럴 정신을 쥐어 짜낼 수조차 없었다. 24시간 동안 체력은 체력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두 아이에게 묶여 잠시도 멈추는 시간은 없었으니까. 그 와 중에 글쓰기가 뭐람. 앞에 놓인 상황도 헤쳐가기 바쁜 마당에. 나조차 방치되고 있는 마당에.
감정을 분출할 곳이 없어지자 하루하루 나의 존재감은 뿌연 연기를 뿜으며 태워졌다. 조금만 주위에서 건들어도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고, 예민했고, 마음은 자주 짓이겼다.그러나 갈길은 멀었고 엄마로서 나는 버텨야만 했다.
태워질 대로 태워진 존재감은 잿더미가 되어 날아갈 거 같았다. 그때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핸드폰 메모장에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써나가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일지라도. 아기를 재우면서, 분유를 먹이면서, 젖병을 씻으면서 쓰디쓴 감정들을 메모장에 꾹꾹 채워갔다. 피폐한 정신과 바닥난 체력으론 길게 쓰면 감당이 안됐다. 그러다 보니 함축적으로 모든 걸 담아야 했고, 시와 비스무리한형식이되어갔다.
10개 이상의 시가 쌓였을 때쯤 시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아픔을 한데 그러 모아 시 안에 더 잘 가두고 싶었다. 그래서 그 방식을 접해야 했고 배워야 했다. 왜 이제서야 시의 매력을 알게 된 건지. 이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시를 읽었구나 싶었다. 시를 찾아 읽다가 어떻게 <시인동네> 홈페이지까지 흘러들어 가게 된 건진 기억이 안 난다. 명확히 기억나는 건 매거진의 표지가 이뻤고, 정기구독 버튼을 눌러 화면에 기재된 계좌로 구독비를 입금하고 있었단 것. 정기구독을 해야만 험한 육아에서 나를 지킬 수 있을 거 같다는 간절함 정도가 기억난다.
얼마 후 <시인동네> 매거진이 배송됐다. 포장은 비닐로 되어 있었고, 받는 이에는 '박현주 선생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뭐랄까. 나를 대우해주는 느낌이랄까. 매거진을 읽을수록 나는 시에 의지했다. 가장 힘든 시기였던 둘째의 첫돌까지 시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를 더 사랑하게 됐다. 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가 멀리서 나를 응원하고 신경 써줬다는 사실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포근한 감동을 주었다. 앞으로 이런 값진 선의를 받을 수 있을까.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내 기억 속에 꽁꽁 묶어놔야지.
각박한 세상에도 따스한 정을 나누는 사람은 있다.
주위에선 잔혹한 사건, 괴로운 바이러스가 판을 치고 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따뜻함이 고개를 들 때 우리는 그것으로 살아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을 한 장 한 장 걷을수록 따스함의 밀도는 높아졌고 나는 그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