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바켄두잇 Jun 26. 2020

이웃들에게 환멸을 느끼다

“에휴.. 진짜 사람들한테 환멸을 느껴.”


빌라 반상회를 다녀온 신랑이 썩을 대로 썩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잠깐 혼자 있겠다는 말과 함께 방문을 닫기까지 한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랑은 동대표다. 2017년 12월부터 했으니 2년이 넘었다. 우리 빌라는 2017년도에 지어졌고, 우린 여섯 번째로 입주했다. 10세대가 채워지자 곧 반상회가 열렸다. 우리 집은 남편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날 신랑은 동대표가 됐다. 상당수가 막내가 먼저 맡고 2년씩 돌아가며 하자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신랑 빼고는 모두 40~50대였다.


첫 동대표의 할 일은 많았다. '하자보증금'으로 옥상 우레탄 시공, 재활용 분리 수거함 설치, 분리수거함에 쓰일 포대자루 구입, 차량 단속기 설치, 자전거 거치대 위치 선정과 설치, 흡연 구역지정과 담배꽁초 버릴 쓰레기통까지 하나하나 직접 알아보며 처리했다. 동시에 일의 진행상황도 빌라 단체방에 공지했다. 반년 후 이웃들의 태도는 변해갔다. 신랑의 공지에 읽씹 했고, 필요할 때만 문자를 했다. 해결하고 나서는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신랑은 점점 서운했다. 세 가지 사건은 서운함에 기름을 부어 화로 거듭나게 했다. (일어난 순서대로 적는다.)



1. 재활용 분리수거 사건. (동대표 된 지 1주 된 시점)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는데 오히려 지저분해졌다. 플라스틱 칸엔 비닐과 캔이 있질 않나. 비닐 칸엔 커다란 종이 박스를 접지도 않은 채 쌓아 올리질 않나. 분리수거조차 귀찮았는지 커다란 봉지에 담아서 버린 사람도 있었다.

신랑은 분리수거에 신경 써달라는 공지를 해야 했지만 달라지진 않았다. 결국 이 집 저 집 다니며 직접 부탁해야 했다. 다들 알겠단다.


그날 저녁 신랑은 목장갑을 끼고 나갈 채비를 했다. 난장판이 된 분리 수거함을 정리해야 했으니까. 먼저 내려가서 정리하던 신랑은 5층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머! 깨끗해졌네요!"

아주머니는 이 말만 뱉고는 자기 집으로 쪼로록 들어갔다. 내가 내려갔을 때 신랑은 씩씩대고 있었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리하고 있으면 도와줄 생각은 안 드나!? 도와주진 못할망정, 고생한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진짜 기가 막힌다 정말!"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적지 않은 양을 정리한 신랑에게 그 누구도 수고했다고 말한 이웃은 없었다.



2. 담배꽁초 사건 (동대표 된 지 1년 된 시점) 

우리 앞집은 3층 다세대 주택이다. 거기엔 노부부가 산다. 어느 날 노부부가 빌라 입구에 동대표와 대화하고 싶다는 메모를 붙였다. 신랑은 앞집 할아버지와 통화했다. 내용은 이랬다.

 

"반년 전부터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담배꽁초가 보였다오. 처음엔 그러려니 넘겼는데 며칠 안 치웠더니 담배꽁초가 더 쌓여 있지 뭐요?! 우리 건물 사람일까 봐 수소문해봤지만 아니었어요. 범인을 모르니 어째. 참고 지켜볼 수밖에. 그러다 당신네 빌라 옥상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거기가 유력해요. 왜냐면 여기서 수십 년을 살았는데 당신네 빌라가 들어서기 전엔 이런 일이 없었고, 위치로 보나 방향으로 보나 옥상에서 던지면 딱 여기겠더라고. 지금까지 일은 좋게 넘길 테니까 빌라 사람들한테 하지 말라고 말해주쇼."

신랑은 공지한다.


그러나 담배꽁초는 계속 던져졌다. 끝내 화가 난 노부부는 빌라 입구에 대문짝만 한 메모를 붙였다.

‘담배꽁초 버리지 마세요!!!!! 지금껏 모았던 꽁초 도로 드립니다!!!!!'

입구 옆엔 담배꽁초가 한가득 채워진 비닐이 놓여 있었다. 그것도 옆으로 쓰러진 채로. 퇴근 한 신랑은 박카스와 과일을 사들고 노부부에게 찾아가야 했다. 신랑은 꽁초가 담긴 봉지 사진을 올리며 한번 더 공지했다.

'1층에 담배꽁초가 담긴 봉지와 메모 다들 보셨지요? 확인해보니 담배꽁초는 모두 던힐이었습니다. 옥상에서 앞집으로 던힐 꽁초 버리는 분은 다시 한번 간곡히 자제 부탁드립니다.'


단체방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 주 주말 신랑은 집집마다 들려 요청했다. 그중엔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꽁초는 던져졌다. 얼마 후 두 명의 남자가 찾아왔다. 그들은 동사무소 민원담당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고 난 옥상엔 과태료 딱지가 붙여졌다. 그 후론 앞집 계단엔 담배꽁초는 쌓이지 않았다.



3. 하수도 역류 사건 (동대표 되고 반년마다)

신랑의 화를 터지게 한 건 하수도 역류 사건이다. 어느 날 주차장에 악취 나는 물이 흥건했다. 다들 코를 막고 지나다녀야 할 정도로. 처음 겪어보는 진귀한 상황을 신랑은 탐정처럼 하나하나 짚어갔다. 원인은 주차장 구석에 있는 하수도였다. 거기서 물이 역류되고 있었다. 신랑은 고무장갑을 끼고 맨홀을 열었다.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3시간 후 하수도 해결을 위해 업체가 왔다.

업체 쪽에 말에 의하면 배관 구조가 좋지 않아 자주 막힐 거란다. 아니나 다를까. 하수도 역류는 반년마다 일어났다. 세 번째 역류 때는 물이 더 많이 고였다. 주차장 반이 잘박 잘박했으니까. 또 하필이면 일요일이었다. 월요일 9시가 지나자마자 신랑은 업체에 연락해 해결했지만, 신랑은 그 사이 빈정이 상해있었다.


그 누구도. 업체가 오기 전까지 하수도 오물을 정리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빌라 입구를 들락거린 사람들은 주차장을 가로지르다 오물을 밟았을 텐데도 말이다. 반나절 지켜보던 신랑은 짜증을 내며 내려갔다.

"다니기도 힘든데 어쩜 아무도 안 치우냐? 본인들 집 아냐?! 내가 지들 종이야 뭐야?!!!"

그는 빗자루로 주차장에 고인 오물을 하수도로 쓸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장은 말끔해졌다.






세 번째 하수도 역류 사건은 신랑의 묵은 감정까지 역류하게 했다. 2년마다 돌아가며 동대표를 하자는 이야기가 쏘~옥 들어간 시점에서 그는 공지한다.

'이번 주 일요일 저녁 8시에 반상회를 열려고 합니다. 안건은 '동대표 교체'입니다. 일정이 어렵거나 이의 있는 분은 말씀해주세요.'

그리하여 반상회는 열렸고, 30분 만에 벌겋게 상기된 채 신랑은 돌아왔던 것이다.



20분 후, 신랑은 방에서 나왔다. 얼굴색은 돌아왔지만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아놔 열 받아. 아무도 안 나왔어.”

신랑은 말했다. 수요일에 공지했단다. 일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모두 읽씹 했다. 토요일에 다시 한번 공지했으나 역시 읽씹. 악에 바친 신랑은 아무 의견 없으니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단체방에 올렸다.

반상회 당일. 세 집은 참석 못한다는 연락이 왔단다. 그러면 남은 여섯 집은 왜 참석을 못한 거지?!! 씩씩대며 돌아오는 신랑은 보았다. 주차장이 만석인 것과 한집 빼곤 불이 켜져 있는 빌라를. 그는 어이없다 못해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어서 단체방에 한 마디를 남긴 채 탈퇴한다.

‘너무들 하십니다. 전 오늘부로 동대표의 모든 일에서 손 뗍니다. 동대표가 정해 지거든 장부 받으러 오세요.


흥분하며 말하던 그는 내게 마지막 말을 토해냈다.

“이래서 애초에 호의를 베풀면 안 돼!!! 사람한테서 환멸을 느껴!”

하루가 지나도록 연락을 하거나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3일 후 4층 아저씨와 신랑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고 아저씨는 머쓱히 사과했다.

“그제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신랑은 속으로 그가 괘씸했다. 며칠 열에 뻗쳐하던 신랑은 그들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것도 아깝다면서. 조금씩 역한 감정을 털어냈다.


1주가 지나도록 연락은 없었다. 비소를 흘리던 신랑은 아무나 지목해서 장부랑 동대표를 넘기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싸움이 날 수도 있는 일이다. 어머니는 말했다.

"싫으나 좋으나 계속 마주치게 될 사람들인데 악감정 만들며 불편하게 지내진 말아야 돼. 골이 깊어지면 세연이랑 세윤이가  조금만 시끄럽게 해도 항의할 거야. 그러니 좀 더 고심해보자."

신랑도, 나도, 어머니도 뾰족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5일 후 신랑은 방안을 말했고, 1주일 간격으로 두 개의 공지문을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다섯 집이 참석했다. 신랑은 그들에게 한 마디 던졌다.

"진짜 너무들 하시는 거 아닙니까!?"

나이 불문하고 다들 사과했다. 직접 와서 신랑에게 손을 내민 이웃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서운하진 않았을 테다. 







사람들은 왜 그럴까.  내가 바라는 이웃이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다. 동대표가 재활용 수거함을 정리하면 고생했다고 말 한마디 건네는 예의. 반상회를 공지하면 반응해주는 성의.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 걸까?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하기까지 하겠는가. 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제발 우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요. 어차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발붙이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니 서로 노력을 해나가자고요."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동대표를 존중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공지에 반응해주고, 동대표의 수고를 알아주며 고생했다고 말 한마디 건네주는 거면 족하다. <개인주의자 선언>의 구절처럼 '한동안은 이 땅에 다 같이 붙이고 살아야 하는데 서로 노력해야 한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노력 말고, 서로가 서로에게 행하는 노력. 이게 필요하다. 작은 노력일지라도 서로를 향한다면 관계는 좋아지기 마련이다.















- 이미지: © geralt,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정기구독이 끝났음에도 호의는 배달되고 있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