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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북튜버이자 작가 바켄
May 27. 2020
나는 백치미가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머리에 든 지식이 이리도 없나 자책하며 나름대로 책을 펼쳐서 공부도 한다. 그러나 뒤돌면 까먹는다. 어떻게든 머리에 담아보려 반복적으로 읽어보고 연필로도 수차례 적어가며 암기도 해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여기서의 시간은, 대게 3일도 안 되는 듯하다. 내 머리는 왜 이렇게 꼴통인 걸까. 얼마나 달달 봐야 하는 걸까. 더 슬픈 사실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는 거다. 내 나이 36살인데 말이다. 어쩌지.
중, 고등학교 때 성적은 늘 하위권이었다. 그렇지만 국민학교 때는 똑똑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모범생이란 수식어는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하물며 공부 못하는 친구를 담임 선생님이 짝꿍으로 앉히며 말했을까.
“현주야. 옆에서 많이 도와주렴.”
짝꿍을 챙기면서도 내 성적은 올 수였고, 간혹 우가 들어가기도 했다. 정말 창대하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가 재미 없어졌다. 그저 친구들과 돌아다니는 데 맛들려 버렸다. 그때부터 머리는 더 이상 발달도 못한 채 퇴화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시절에는 일상적인 돈 계산도 헷갈렸으니까. 종종 돈을 모아 친구들과 놀러 갔고, 돌아오면 남은 돈을 갈랐다. 총무인 친구가 잠시 부재이면 자기 돈으로 계산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럼 돌아와서 돈을 가를 때, 그 친구에겐 그만큼 제하고 계산해야 한다. 총무가 알아서 내 몫만큼의 돈을 다시 걷어가거나 건네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왜 이 금액을 건네야 하는지, 왜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저 잘 줬겠거니 믿으며 받을 뿐이었다. 집에 오면 나름대로 이해해보려 종이를 꺼내 계산도 해봤지만 알아내지도 못한 채 머리는 쥐만 났다.
작년이던가. ‘라디오 스타’에서 개그우먼 안영미가 ‘계산 못해서 편의점 알바에서 잘린 사연’을 말하는 걸 봤다. 내용은 이랬다.
손님에게 지불 금액이 5,500원이라고 말했다 치자. 손님은 10,000원을 건네면서 주머니에서 잔돈 500원을 더 건넨다. 이러면 안영미는 머릿속이 까매진다고. 그래서 계산기를 꺼내 들고 10,500원에서 5,500원을 계산했다는 썰. 웃기면서도 슬펐다. 얼마나 위안받았는지 모른다. 나만 그런게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얼마 전엔 어느 예능에서 간미연이 베이비복스 시절 장미 스펠링을 ‘lose’로 말해 놀림을 받았던 에피소드를 언급하는 걸 봤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고 당당히 고백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나 역시도 기본적인 영어 스펠링조차 모르는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백치미가 있는 연예인들이 웃음거리가 되는 걸 볼 때면 남일 같이 않아 마음이 따끔거린다.
나의 백치미는 남편과 연애하던 시기부터 더욱 빛을 발했다. 나와 달리 남편은 박학다식하다. 그런 신랑은 누구와 대화를 해도 지식을 동원하며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뉴스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난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보기 바쁜데 신랑은 내게 이 현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경제, 정치, 인물, 역사, 사회, 법, 스포츠 등등. 어떤 분야든 박식한 신랑. 그래서 신랑의 친구나 지인, 직장 동료들은 그를 ‘만물박사’라 부른다. 뭐든 물어보면 다 아니까.
그와 알고 지낸지도 벌써 10년이다. 여전히 그는 아는 게 많다. 연애시절엔 신랑 옆에 있으면 무식한 내가 더 한심해져서 스트레스였지만 부부로써 신랑의 박학다식은 나의 무지를 메꿔줘서 든든하다. 어째서 그는 이리도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걸까. 원체 머리가 좋아서 한번 들은 건 척하고 뇌에 달라붙는 걸까.
어느 날, 달리는 차 안에서 두 아이가 잠들자 우린 모처럼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 그때도 박학다식한 신랑의 면모는 빛을 발했다. 리모델링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신랑은 또 한 번의 지식을 방출한 것. “아파트 리모델링일 경우엔 보통 한 평당 백만 원정도 나간다 보면 돼.” 검색도 안 하고 즉답한 신랑. 늘 이런 식이다.
나는 그날 신랑에게 말했다. 박학다식한 당신이 참 부럽다고. 그에 비해 나는 관심 있는 내용을 기억하려 메모하고 몇 번이고 쳐다봐도. 며칠이 지나면 까먹어버린다고. 근데 신랑은 예상치 못한 답변을 했다. “나도 노력해.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시간 내서 공부하는 거야. 잊어버릴 거 같으면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그러는 거지. 만약 정치계 인물이 궁금하다 싶으면 그 사람을 검색해. 그러고 나서 나무 위키에 들어가. 00구 몇 선 위원, 00 법안을 발의했고, 가족관계, 학력, 종교 등등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어. 나라고 뭐 천재인 줄 알아.”
사실 놀랬다. 뭐든 한번 듣고 기억하는 줄 알았던 남편이었다. 근데 지식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고개는 끄덕렸지만 큰 한숨이 나왔다. 신랑도 나와 비슷한 시간을 할애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으므로. 즉, 같은 시간 동안 신랑은 했고, 나는 못했단 사실은 다시 한번 나를 뼈아프게 했다.
신랑과 나의 지능을 굳이 비교해보자면, 신랑은 어떤 내용도 척척 이해하는데 반해 나는 이해가 아주 느리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뒤 돌면 머리가 뒤죽박죽 꼬이면서 '무슨 말이었지?' 라고 머리를 쥐어 뜯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신랑은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해도 상위권이었고, 나는 공부해도 하위권이었단 사실.
이건 분명 아이큐와 기억력.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에 대한 능률과 효율에 관계된 일일 것이다. 공부 못했다고 후회하는 게 아니다. 난 그저 기본 상식이나마 알길 바랄 뿐이다.
이런 내가 엄마가 되자, 아이들에게 확고하게 바라는 바가 생겼다.
부디 아빠 머리를 닮길.
그리고 아이가 크면 옆에서 같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아이가 교과서를 펴면 나도 아이 진도에 따라 국어, 역사, 사회, 지리를 공부하면 어떨까 싶다.(수학은 제외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공부하니 얼마나 좋은가. 아이가 이것도 모르냐고 채근하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할 테다. 아이가 나를 가르칠지라도 함께 공부하는 엄마이고 싶다.
아이와 함께 공부할 날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아이의 머리가 채워질수록 나의 무지도 더디게나마 메꿔지길 바란다. 백치미 엄마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도 싶다.
사진: © davidmatos,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