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원정대가 내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어"
요새 인기몰이중인 <놀면 뭐하니?! - 환불 원정대 편>을 볼 때면 유독 엄정화에게 눈이 간다.
어릴 적부터 Tv에서 수차례 봤던 그녀를 보는 마음은 이번엔 사뭇 달랐다.
'Don't touch me' 녹음날. 엄정화는 노래 부르기 힘들어했다. 8년 동안 원치 않은 공백기를 가졌던 그녀였다.
엄정화는 10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하고 얼마 후면 목소리가 나올 거라고 말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검사를 받는다. 결과는 성대마비. 수술 후유증으로 성대가 제 기능을 잃은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를 힘들게 했던 건 성대마비는 평생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25년이란 시간 동안 연기와 노래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녀에겐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내가 말을 하지 못하면.... 난 이제 노래도 못하고 연기도 못하는데 어떡하지?'
공백기 동안 그녀는 자주 울었다. 우는데 우는 소리가 안 나니까 복받치고 감정 조절도 안되니까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더란다. 그녀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찾는다.
카메라를 코로 넣어서 성대에 주사하는 시술법을. 그때부터 인위적인 방법으로나마 목소리를 되찾을 순 있었으나 주사 효과는 일시적이었으므로 1년에 두세 번을 맞아야만 했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의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다. 한동안 시술법에 의지하며 지내다가 지금의 재활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덕분에 주사를 맞지 않고도 말하고 노래하기에 이른다.
알지 못했던 그녀의 시련을 알고 나면서부터 엄정화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유튜브에 접속했는데 엄정화의 영상이 떠있었다. 2018년 1월 8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온 엄정화의 모습이었다. '딸각' 마우스를 클릭하자 영상이 플레이되었다.
관객석 뒤에 출입문이 열렸다.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 풍성한 파마머리에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한 그녀는 농염한 눈빛을 취한 채 한껏 포즈를 취했다. 그녀가 한 바퀴 뱅그르르 돌자 <엔딩크레딧>의 도입부 반주가 틀어졌다. 엄정화는 박자에 맞춰 요염하게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청보라색의 언발란스 원피스는 그녀의 각선미를 부각시켰다. 스타일에서부터 한눈을 사로잡는 그녀는 역시 엄정화였다.
엄정화는 한껏 웃으면서 관객에게 악수와 포옹을 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무대로 올라온 그녀는 홀로 춤 추기 시작했다. 미소를 머금은 표정, 안무 하나하나에서 한없이 즐거워하고 설레어하는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유희열과 정규 10집 < The Cloud Dream of the Nine>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희열은 <엔딩크레딧>을 처음 듣고 궁금했다고 한다.
유희열: 우아! 누가 썼지? 누가 이렇게 했지? 편곡은 어떻게 이렇게 했을까? 과연 여기다 춤은 어떻게 춘다는 얘기지?
엄정화의 무대를 보고선 해내네 해내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 앨범이 사뭇 기대된다고 호평한다. 그다음 이어진 엄정화의 말은 나를 감명시켰다.
엄정화: 그러니깐요. 저도 기대가 돼요 근데 사실... 쓰읍....(숨을 들이마시며 2초 정도 말에 공백이 생겼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을 구태어 망설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엄정화는 말했다.
엄정화: 근데 그게 또 의미가 있다고 생각돼요. 여러분들 기억해주세요. 저 엄정화라는 가수예요.
가수로 배우로 굉장히 오랫동안 지금까지 꾸준히 여러분들이 엄정화라고 하면은 제 이름은 아시잖아요?! 제 꿈을 향해서 그만큼 열심히 해왔어요. 힘들 때도 여러분들 생각하고 제가 꿈꾸던걸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날 좀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근데 그게 뭐 친구 때문도 사랑 때문도 아니에요. 약간 가수로서 대중에게 좀 멀어진 거 같은.... 그런 외로움?
그녀는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만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 관객들의 박수세례가 이어졌다. 애써 눈물을 참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엄정화: '난 왜 이렇게 앨범을 만들려고 하지?' '뭐야? 뭣 때문이야?'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어요. 나이 들어서 그만 하라는 분들도 있어요. 그치만 가슴이 뛰고 제 열정이 있다는데 그런 것 때문에, 나이깠것 때문에 제가 외로움을 느낄 순 있지만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받았던 마음도 떠올랐고요. <엔딩크레딧>이 저의 엔딩 크레딧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음... 또 다른 영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8살 때 엄정화는 데뷔했다. 나의 성장과 함께 그녀도 신인에서 스타로 성장했다.
엄정화는 90년대에 대단한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가수로도 연기자로도 인정받으며 레전드 반열에 오른 레전드 중에 레전드고 현재 진행형인 레전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려한 스타 엄정화. 그런 그녀도 대중에게서 멀어졌고 그런 지금을 애써 인정하며 내려놓을 건 내려놓으려는 모습이 내 눈에 더욱 들어온다. 한 인터뷰에서 했던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 놓치지 않고 계속해가고 싶다는 엄정화.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그런 본인의 모습을 녹여가며 연기와 음악 모두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엄정화.
끝없이 두 가지 일에 대해 고민을 안고 살겠지만 그것 역시 기대된다는 엄정화.
그녀의 다짐처럼 나 역시 늙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엄정화의 간절함과 꿋꿋함 그리고 열정을 보며 나도 용기와 에너지를 받는다. 그래서 '환불 원정대'를 볼 때면 엄정화에게 유독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 응원은 내게 보내는 격려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