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만들어주신 박현주 씨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소소하게 친인척만 초대한 돌잔치에서 신랑은 너스레를 떨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멘트에 나는 당황했다. 그 사이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소리가 제법 크다.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
8년 만이다. 영상 작업에 손을 댄 게….
언젠간 영상을 만들 일이 있겠구나 싶었지만 그게 둘째 돌잔치가 될 줄은 몰랐다.
일요일이 돌잔치였고, 오늘은 월요일이므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다. 신랑에게 에프터이펙트라는 프로그램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바쁜 신랑은 수요일 저녁에야 깔아주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4일. 솔직히 막막했다.
'할 수 있을까? 8년 동안 한 번도 프로그램을 만진 적도 없고, 영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걸?!'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리워하던 이를 만난 듯 몸서리치게 반가웠다. 재회의 감동은 뒤로하고,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 남은 4일 동안 아이들이 잠든 후에 작업해야 한다는 걸 감안해야 했다. 난 그때의 내가 아니다. 하고 싶은 대로 프로그램을 다룰 수도 없다. 고퀄은 무리다. 고민 끝에 잔잔한 음악을 깔고 최소한의 움직임만 주기로 했다.
우선 음악부터 다운로드 받아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막혔다. 8년 전엔 뭐든 잘만 다운로드 받았던 나인데... 지금은 능력 밖이었다. 삽질만 하다 시간은 어느덧 1시. 아무것도 진행이 안된 상황과 내 능력에 속상했다. 그때의 나였다면 벌써 반 이상은 하고도 남았을 텐데.... 마음을 가다듬었다. 결실도 없이 하루를 흘려보낼 순 없었다. 작업에 쓰일 세윤이의 사진과 영상을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추리기로 했다. 어느새 120개의 사진과 영상이 추려졌다. 시간은 3시. 내일은 좀 더 부지런히 진행시켜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도 아이들이 잠들면 쪼르륵 노트북 앞에 앉았다. 목요일에는 MP3 파일을 받아 전체적인 구성을 잡고 음악에 맞춰 사진과 영상을 배치했다. 금요일에는 사진과 문구에 투명도와 움직임을 주었다. 토요일에는 금요일에 했던 작업들을 세세하게 손을 보고, 음식에 양념을 뿌려 풍미를 더하듯 영상에도 영상 소스를 사용하여 풍성함을 더했다. 영상 소스가 자리를 잡으니 퀄리티가 한층 높아졌다. 랜더링을 걸어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잊으려 애썼던 그 시절의 내가 되었다.
8년 만에 영상작업을 하게 된 4일 동안 나는 살아 있었다. 새 건전지가 채워지듯 내게도 활력이란 새 건전지가 채워지며 잊고 있던 지난날의 나를 움직였다. 처음엔 단축키도 기억나지 않아 버벅거렸지만 자고 일어나면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단축키를 누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신기하고 놀라웠다. 나는 잊었다고, 희미해졌다고 생각했던 흔적들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고마웠다. 그때의 나를 잊지 않아 줬다는 것이. 그 아이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 그 날의 나는 사라진 게 아니고,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현실에 의해서든, 이상에 의해서든,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담배를 끊으면 금단현상이 오듯, 영상을 끊은 내게도 금단 현상이 왔다. 그것도 장장 8년 동안이나. 마음은 항상 메말라 있었고, 무얼 해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유로운 일상도, 가만히 있는 손가락도 낯설었다. 내 심장을 두 방망이 쳐 줄 또 다른 꿈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찾으면 찾을수록 가슴은 쩍쩍 갈라졌다. 대체할만한 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으니까.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나로 살지 못했다. 그저 살아갔다. 꿈을 향해 걸어갔던 시간만큼 떨쳐내는 시간도 걸리는 걸까. 그렇다면 내겐 얼마나 남은 걸까? 대체 얼마나 지나야 괜찮아질 수 있는 건지 수도 없이 물었다. 그러다 이번 작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견딜 수 없을 거 같던 상처들이 작업을 하는 동안 하나하나 매듭지어지며 정리되고 있다는 것을. 지난날의 사진을 다 보고 앨범을 덮으며 아련한 미소를 짓듯. 8년 만에 작업한 영상은 인생 1막을 덮는 시간이 되었다. 슬플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덤덤하고 편안했다.
그 아이는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다. 꿈을 위해 당차게 나아갔던 아이. 내 삶에서 가장 빛났던, 그렇지만 가장 아팠던 그때의 내가. 이번 일로 외면했던 그 아이를 만났다.
그때의 나를 가슴 한켠에 고이 품으며 살아가야지. 당차게 내달렸던 그 아이를 절대 잊지 말아야지.
내 앞에 틀어지고 있는 영상을 보며 내 왼쪽 가슴은 두근거리다 못해 터질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