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수고하세요."
어린이집 문을 닫는다. 집으로 가는 길이 먼 것도 아닌데 발걸음은 분주하다. 우선 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플레인 요거트, 불가리스, 우유를 샀다. 저녁거리는 무얼 살까. 마트 안을 둘러보다 짜장밥을 만들기로 결정! 신랑도 아이들도 좋아하는 메뉴다. 서둘러 짜장 소스와 감자를 고르고 당근도 골랐다. 마지막엔 고기를 고른 후 계산했다.
집에 도착하니 30분이 흘러있었다. 10시다.
장 본 것을 정리하곤 운동화를 신고 런닝머신 위에 올랐다. 툭툭 툭툭. 유튜브 영상 하나가 끝날 때마다 강도를 높였다. 헉헉. 20분을 채운 후 정지 버튼을 눌렀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핸드폰을 집어 든다. 홈트레이닝 어플을 켠 후 아령을 들고 근력 운동을 한 후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한다. 시간은 11시 반. 서둘러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화장대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이번 주는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하다가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브런치에 발행할 글이다. Mrest의 '겨울비' 외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 시간 동안 모든 정신을 글쓰기에 집중한다. 배가 허기져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 반이다. 노트북을 끄고 부엌으로 향했다. 장 봐왔던 재료들을 꺼내 요리를 시작했다.
감자 껍질을 벗기고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썰었다. 당근도 마찬가지. 탁탁 탁탁. 고기도 마찬가지. 쓰윽쓰윽. 큰 냄비에 재료를 넣고 물을 자박하게 채운 후 익을 때까지 끓인다. 그 사이 저녁에 먹을 밥은 충분한지 확인하고는 청소를 시작했다. 바닥에 나뒹구는 장난감도 정리하고, 과자 부스러기도 청소기로 빨아들였다. 담백한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자 청소하다 말고 부엌으로 가서 재료들의 익은 정도를 확인했다. 감자를 입안에 놓자 부드럽게 으스러진다. 짜장 소스를 3번에 나눠 넣으며 저어준다. 완성이다. 청소를 마저 하고 짜장밥을 국그릇에 담아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 일정을 살폈다. 유튜브 영상 작업 그리고 책 읽기와 독서 리뷰가 남았다. 시간은 2시. 내겐 1시간 반밖에 안남았다. 어쩌지?! 아쉽지만 독서 리뷰 정리는 오늘 못할지도 모른다. 마음이 바쁘다. 1분 1초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 짜장밥을 먹으며 영상 작업에 임한다.
나의 주중 스케줄은 바쁘다. 9시 반 아이들을 등원시키면 월, 수, 금은 1시간씩 홈트레이닝을 하고, 화, 목은 '뉴아 고주파 기기'로 20분씩 홈케어를 한다. 그 외의 일정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살림 1시간 반, 브런치 글 퇴고 1시간, 독서 1시간, 유튜브 영상 작업 2시간. 대략 6시간을 숨 가쁘게 보낸다.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 7년 동안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던 순간이니까. 그리고 다시 워킹맘으로 돌아가기 전 주어지는 마지막 '자유 시간'이므로. 1분 1초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신랑은 내게 말한다. "쉴 수 있을 때 쉬지. 왜 사서 고생해."
난 안 할 수가 없다. 7년 동안 절실히 고대했던 시간이므로 악착같이 하고 싶다. 내 만족을 위해서일지라도 나는 해야만 한다.
내가 정한 스케줄대로 하루하루 완수하다 보면, 묵직한 덩어리들이 내 안에 충만하게 채워지는 기분이 드는데, 참으로 벅차다.
엄마라는 지위를 내려놓고,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확보될수록 나의 밀도는 높아진다. 점점. 점점.
나를 위해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은 온몸 신경들이 멈춘 채로 나만의 세계에 들어선다.
온몸 구석구석 신경 하나하나에 생기가 뿌려지고 활력이 돌며 몸 전체가 따스해진다. 어떨 땐 몸이 부웅 뜨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살이 있음을 느끼는 이 순간이 너무 황홀하다.
내가 정한 하나하나의 일정들을 완수하며 난 이만치 왔고, 나를 지켜내고 있다.
2018년도엔 <모든 나를 응원한다>를 출간할 수 있었고, 2019년도엔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고, 같은 해엔 '한식문화 이야기· 일러스트 공모전'에서 입상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2020년도엔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을 통해 SBS 스폐셜에서 섭외 연락도 왔었다.(비록 SBS의 대대적인 개편으로 내가 나오기로한 기획은 제작이 중단되었지만)
중간에 주저앉아 모든 게 올스톱이 된 적도 있지만, 멈춘 시간보다 나아간 시간이 많았으므로 난 여기까지 왔다.
괴롭든, 상처 받든, 체념하든. 어쨌거나 내게 주어진 할당치를 묵묵히 해내며 나아간 시간들로 일궈낸 결실들이다. 그만큼 값지고 각별하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내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했기에 이벤트들이 내 삶에 노크했다. 내가 했기에 일어난 이벤트들은 나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묵직한 결실들은 엄마로 한 일이 아닌. 나를 위해 한 일들. 엄마의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들로, 나를 더욱 나 답게 만들어 준다. 그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해서 멈출 수가 없다.
절실하고도 간절하게. 나는 더욱 나다워지고 싶고, 나를 알고 싶고, 나를 지켜 내고 싶다.
계속. 계속...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