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님이 쉬시는 날이다. 모처럼 평일에 쉬게 된 어머니는 바쁘다. 아이들을 등원시키러 어머니와 나왔다.
"세연, 세윤~! 할머니 빠빠~있다보자~ 아이들 등원 잘 시키고!" 하면서 우린 골목에서 헤어졌다.
11시 반. 빨래를 돌리며 대청소를 하고 있는데 볼일을 보고 들어오신 어머님이 나를 불렀다.
"현주야! 왜 전화 안 받았어?.... 아~! 청소하느라 못 들었구나. 밥 먹었어?"
"아뇨. 아직요."
"시간을 보니까 딱 네가 밥 먹을 시간인 거야!! 그래서 바로 전화했는데 안 받길래. 에고야~ 점심 먹고 자나보다 했지. 점심 안 먹은 거 맞지? 그럼 내가 마라탕 사줄게!"
어머님의 요지는 이랬다. 볼일이 끝나자마자 내 생각이 났단다. 몇 달 전에 마라탕을 먹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나였다. 신랑은 마라탕이 내키지 않다며 심드렁하게 반응하던 터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오늘 꼭 내게 마라탕을 사주고 싶었다고.
"네! 좋죠!! 빨래만 끝나면 바로 나가요! "
알겠다며 어머니는 자기 방에 들어가셨다.
그 순간 기분이 묘했다. '불편하지 않을까.' '아... 먹었다고 할걸 그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4년 동안 어머니랑 살며 단 둘이 외식하긴 처음이었다. 삐삐삑 거리며 세탁기는 끝났다. 빨래를 널고 어머니와 나왔다. 며칠 전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더니만 오늘은 외투를 입기엔 더웠다. 나오자마자 날씨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4년 동안 같이 살며 단 둘이 대화도 많이 했기 때문이리라. 불편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12시 반. 마라탕 집에 들어섰다.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부리나케 자리 잡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혼자 와서 핸드폰을 보며 먹는 남자. 유모차에 아기를 재우고 친구와 먹는 애엄마. 푸짐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호호 불어가며 나눠 먹는 여대생.
그 옆으론 앳되게 보이는 여자 한 명이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며 서빙하고 있었다. 어떻게 시켜야 할지 몰라 직원에게 물었다.
"마라탕 처음 먹는데 어떻게 주문하면 돼요?"
옆 테이블을 치우던 직원은 고개만 돌린 채 채소 냉장고에서 먼저 먹을 것을 골라 담으라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채소 냉장고 앞에 섰다. 뭘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몰라 서성이다가 청경채부터 담기 시작했다. 우리 뒤로 직원이 지나가며 말했다.
"각각 바구니에 담고 저울 재러 오세요. 선불하고 드셔야 해요."
결제를 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막상 맞은편에 어머니와 단둘이 앉으니 집에서 밥 먹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어색한 공기가 우리 둘 사이를 메꿨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맛없으면 어떡해요? 어머니 향신료 안 좋아하시잖아요. 향신료 향이 세면 어쩌죠?!" 하고 있는데 직원이 내 것부터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어머니 것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나온단다. 큼지막한 그릇에 내가 고른 초록 초록한 채소들이 벌그스름한 국물에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을지 걱정됐다. 반찬은 따로 없었다. 마라탕 하나만으로도 입은 꿀꺽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셨다. 어머니는 먼저 먹으라며 손짓했다. 작은 국자같이 생긴 숟가락에 벌건 국물을 떠서 한입 먹었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얼큰하면서도 진한 국물이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어머니도 한입 드시라고 권했지만 먼저 먹으라는 손짓만 하신다. 곧 어머니 마라탕도 나왔다. “어머니 어서 드셔 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향신료 냄새도 별로 안 나는데요?!”
숟가락에 듬뿍 국물을 담아 입안에 갖다 댄 어머니는 정말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육각형 기둥처럼 생긴 어묵 같은 걸 드시더니 떡처럼 쫄깃쫄깃하다며 연신 좋아하셨다. 호로록호로록. 어머니와 난 후후 불어가며 마라탕을 먹었다. 먹을수록 담백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맛있게 먹다 보니 어색함도 제법 사라졌다. 서로 맛있네. 이건 이런 맛이 나네하며 대화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세연이 세윤이 얘기, 신랑 얘기, 어머니 회사 얘기, 어머니 가족 얘기 등등 생각보다 대화거리가 많았다. 하긴 신랑과 결혼할 때부터 어머니는 본인의 얘기를 서슴없이 하셨다. 회사 동료와 일어났던 일이며 어머니 형제와 있었던 일 등등. 그러다 보면 나도 내 이야기를 자연스레 했었다. 생각보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으니 할 얘기도 많았다. 약간 어색할 때면 호로록호로록. 김이 모락 나는 마라탕이 입안으로 들어와 꿀꺽 삼키면 몸이 따스해졌다.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대화를 하며 호록 호록 먹다 보니 어느새 건더기도 국물도 사라졌다. 배부르지만 손을 놓기 싫어 얼마 남지 않은 국물마저 후루룩 마셨다. 맛있다. 맛있어. 또 먹으러 와야지. 어머니도 배를 쓱쓱 문지르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미소를 지으셨다.
어느덧 식당엔 사람이 많이 빠져있었다.
“맛있게 먹고 가요. 수고하세요.”
아아. 좋다. 좋아. 진짜 맛있었다며 어머니와 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집에 가서 한 숨 자면 딱 좋겠다 싶었다. 하늘은 높고 따스하던 낮의 거리는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다들 어딘가로 바삐 움직였다. 우리 옆으로 수다를 떨며 하하호호 웃는 연인이 손깍지를 낀 채 지나갔다. 앞을 주시하던 어머니는 스킨과 로션이 떨어졌다며 올리브영을 구경하고 싶어하셨다. 올리브영에 들어섰다.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다 왜 이리 비싸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어머니 우리 동네에 화장품 할인점 있잖아요. 거기 가봐요. 한 번도 들어간 적은 없는데 거기 장사 잘 되더라고요”
“그래?!! 그러자. 여긴 내 스타일이 아니네. 뭐가 이렇게 비싸고 종류도 많니?!”
서로의 장단에 맞춰 수다를 떨며 그곳을 향해 걸었다. 날은 한없이 좋았고, 기분도 한 없이 좋았다. 앞으론 종종 어머니와 단둘이 데이트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한층 가까워진 거 같아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