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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문화공모전에 출품 안했는데 수상작품집이 택배로 왔다

아이를 하원 시켜야 할 시간이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쓰~윽하며 땅에 무언가 걸린다. 잡지만 한 택배 봉투가 바닥에 놓여있다. 뭐지? 주문한 게 없는데? 이상했다. 허리를 굽혀 송장을 살폈다. 


"한식문화 공모전 수상작품집"


어?! 올해 출품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당장에라도 뜯어보고 싶었지만 하원 시간이 촉박했다. 여기저기를 만지다 식탁 위에 내려놓고 헐레벌떡 어린이집을 향했다. 아이와 산책하면서도 생각은 내내 택배에 가있었다. 40여분의 산책이 끝나고 들어왔다. 아이는 뒷전이었다. 부리나케 식탁으로 총총 걸어 큼지막한 가위를 꺼냈다. 택배 봉투를 쓱쓱 잘라 내용물을 꺼냈다.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2020년 한식문화 공모전 수상작품집이었다.  


'설마... 작년 수상자라고 챙겨준 거야?!!"


작년 이맘때 메일을 주고받았던 담당자분이 생각났다. 그분이 보내준 건가.... 아니라면 내게 보내기 위해 작년 수상자 리스트를 보며 주소를 입력했을 누군가에게 일개 아무개인 내가 챙김을 받다니.  평생 잊지 못할 뭉클한 대우를 깜짝 선물로 받은 날이었다. 너무 고마워서 책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 흥분이 가라앉고서야 책을 살폈다. 



책 표지 왼 상단에 적힌 '우리 家 한식'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엔  정겨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시골집 마당에서 손주들과 식사를 준비하며 호박전을 부치고 있는 할머니. 그 뒤로는 고추가 빨갛게 여물고 감나무가 먹음직스럽게 열려 있었다. 마당엔 갈색 빛깔의 낙엽들이 떨어져 있고 그 옆으론  손주가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갖다 댄 체 물을 마신다. 오른쪽엔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손녀가 두 손을 번쩍 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책 표지는 갈색 빛깔이 넘실거렸다. 글자의 갈색, 손녀 가디건의 갈색, 감나무의 갈색, 평상의 갈색이 한데 어우러졌다. 가을이 거기 있었다. 빛깔은 표지 너머 내게로도 닿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진 모르지만 작년 수상작품집을 꺼내와 나란히 놓았다. 양장본의 질감도 크기도 같았다. 문득 1년 전의 시간이 스르륵 다가왔다. 



2019년 9월 5일 밤 10시. 아이들을 재우려 준비하고 있었다. 브런치 알람이 떴다. 구독하는 작가님이 새 글을  올렸나 보다 설핏 보다가 눈은 빠질 듯 커졌다. 제안 메일이었다.

마음이 가속도로 쿵쾅쿵쾅 펌프질 하며 빵빵하게 더 빵빵하게 부풀었다. 아이들이고 뭐고, 잠이고 뭐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떤 내용이지? 궁금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두 손이 떨렸다. 

 '출간 제안이면?' '강연 제안이면?' 차마 클릭하지 못하는 손에 힘을 주어 눌렀다. 실눈을 뜬 채 내용을 응시했다. 제안 메일이 아니었다.



'2019 한식문화 공모전 입상 안내 메일'이었다. 눈알이 틔어 나올 거 같았다. 그 글은 발행하고도 큰 호응이 없었던 글이다. '설마 실수로 메일 보낸 거 아냐? 회신했다가 잘못 보냈다는 사과 메일을 받고 상처 받으면 어떻게 추스르지?'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메일을 몇 번이나 한 글자씩 힘주어 읽었는지 모른다. 일단 회신을 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았다. 그제야 본명을 회신해달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타닥타닥 쳤다. 첫 문장은 이랬다. 


'메일 받고 너무 놀랬어요! 저한테 잘못 보내 신 건 아닌가요?'


답장이 바로 왔다. 꿈이 아니었다. 정말이라니. 내가 맞다니.

그제야 마음이 터질 듯 기뻤다. 설레서 잠도 오지 않았다. 내 인생에 다신 없을 일일지도 모르므로 한껏 흥분을 만끽했다. 뜬눈으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행복한 새벽을 보냈다. 얼마 후 수상작품집이 배달됐다. 내 글이 실린 페이지를 보고 또 보다 이내 책장에 꽂았다. 처음 출간한 나의 소중한 첫 책 <모든 나를 응원한다> 옆에 나란히. 그리고 한식문화 공모전과의 연은 그게 끝인 줄 알았다. 



내 앞에 있는 두 권의 수상작품집을 이리저리 살핀다. 

작년엔 글로 인정받았다는 환희를 느꼈다면 지금은 겉도는 나를 잡아끌며 안전궤도로 안내받은 고마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내게 읊조리는 듯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봐요. 계속'.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느낌. 잠시나마 쓸쓸하지 않았다. 힘이 났다.



기쁨을 만끽하고 나자 한달음에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불현듯 밀려오는 슬픔, 스멀스멀 피어나려는 우울, 기어코 이런 일은 다신 없으리라는 탄식, 평소와 다름없을 내일 같은 것들이 말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눈을 감고 희미해진 1년 전의 감정을 더듬었다.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이내  수상집의  단단한 표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첫 장을 걷어 읽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내 눈에 담았다. 잊기 싫은 그때와 지금의 감정을 꽉꽉 눌러 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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