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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결혼식이라니!!

친한 동생 H가 문자를 보내왔다.


'언니~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ㅠ 이 시국에 결혼 소식 전하게 돼서 미안해. 시국이 시국이니까 안 와도 괜찮아. 부담 갖지 말고.'     


코로나 시대에 결혼식을 하게 된 이들은 너나 할거 없이 지인들에게 결혼 일정을 알리는 게 조심스럽고 난처하다. 동생 H는 2020년 9월에 결혼식을 했는데, 특히 그때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8월 30일 종료 예정이었던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는 2.5단계로 강화되는 것도 모자라 1주가 연장됐고, 또 1주가 연장됐다. 그 당시에 2.5단계는 여태껏 해왔던 조치 중 초강수였고, 규제 내용은 한층 강했다.   


  

2.5단계 규제 내용에는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의 집합·모임·행사 금지 조항도 있었는데, 결혼식도 여기에 포함된다. 예비부부들은 50명 이상의 하객을 초청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취소 또는 연기를 하거나, 50명 미만의 스몰 웨딩을 해야 했다. 하물며 50명이란 인원 안에는 예식장 직원도 포함된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직원을 제외하면 실제로 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얼마 되지 않았고, 거기다 직계 가족과 친인척을 제외하면 지인들의 비율은 지극히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어렵게 온 하객들에겐 식사 대신 답례품을 건네야 했다.      



사실 H는 결혼식을 6월에서 9월로 한차례 미룬 것이었다. 6월의 상황이 좋지 않아, 3달 후로 옮긴 것인데, 더 안 좋아질 줄이야. 그래서 동생은 더욱 속상해했다.    

 

"나 너무 슬퍼.... 진짜 눈물 난다... 이런 연락 돌리는 것도 속상하고, 이 상황에 올 사람이 있을까 싶고, 친척들도 안 올 수도 있대. 홀 안이 텅텅 비겠당.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혼여행은 알아보지도 않았어."  

 


누구라도 슬프고 속상할 테다. 가장 축복받아야 하는 자리가 곤란한 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H를 위로해 주고 싶었고, 기운을 복돋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홀 안에 들어가지 못하더래도, 잠깐이나마 얼굴 보며 격려와 함께 축복해 주고 싶었다.      



결혼식 당일 식장 앞은 한산했다. 앞을 서성이는 대부분의 사람들 손엔 똑같이 생긴 종이 박스가 대롱대롱 들려 있었다. 납작한 모양도 있었고, 길쭉한 모양도 있었으나, 길쭉한 모양이 더 많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대기실을 향했다. 다행히 대기실엔 출입 제한은 없었다. 환한 웃음으로 동생은 나를 맞았다. 머메이드 드레스는 몸매 라인을 부각시켰고, 쇄골과 가슴라인으로 떨어지는 오프숄더는 여성미를 극대화했으며, 잔잔하게 비치는 은색 펄 자수와 스팽글은 움직일 때마다 은은하게 빛나 우아함을 더했다. 그날의 동생은 여신 그 자체였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여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활짝 웃는 H를 보자 무겁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H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뭘~넌 당연히 와야지. 그동안 결혼식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했겠다."라고 말하며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진사가 촬영할 건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토그래퍼는 사진 찍는 잠깐은 마스크를 벗어 달라고 말한 후, 잽싸게 촬영을 마쳤다. 그 사이 대기실엔 H의 친구들이 들어왔다. 나는 H에게 있다 보자며 손을 흔든 후 물러섰다. 로비로 나오니 부주석이 보였다. 축의금을 내기 위해 부주석으로 갔다. 건장한 남성에게 봉투를 건넸더니, 답례품이 한과와 와인이 있는데 어떤 것으로 가져갈 건지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와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모양의 종이 상자를 건넸다. 나도 길쭉한 모양의 종이 상자를 든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다.      



예식이 시작되려는지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홀 안으로 들어갔다. 홀 인원 제한 때문에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 앞에 있던 직원이 35명이 아직 안 됐기 때문에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다. 조심스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좌석은 한 칸씩 띄어 앉게 되어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목 좋은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얼마 후 식은 시작됐다. 훤칠한 신랑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장했고, 곧이어 H가 등장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주례대로 가는 동안 동생 얼굴엔 환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놓치기 싫은 나는 사진과 영상을 연신 찍어댔다.     



식은 마무리됐고, 이제 하객 촬영만 남았다. 성큼성큼 주례대 앞으로 걸어갔다. 솔직히 난 하객 촬영 때는 잠깐이라도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을 줄 알았는데, 신랑, 신부 외엔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카메라를 바라봐야 했다. 그날의 촬영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보통 사진사 입에선 '환하게 웃어주세요~'라는 말을 남발하는데, 그날은 얼굴 표정이 안 나오기 때문에 제스처를 크게 크게 확실히 해달라고 여러 번 말했다. 

“큰 동작으로 박수 쳐주세요!” 

“양손으로 손하트 확실히 만들어주세요!” 

“애교 하트 발사하시는데 앞으로 잘 보이게 내밀어 주세요!”     



1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사진을 본다. 환하게 웃는 신랑과 신부 뒤로 하얀 마스크들이 총총 눈에 들어온다. 마스크를 쓴 그들은 열심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실 하객 사진을 볼 때의 재미는 그때 사람들의 표정이다. 촬영할 때는 몰랐던 주위 상황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웃음이 배시시 나온다. ‘이 분은 너무 웃어서 이빨만 보이네?!’ ‘어머! 얘는 이쁘게도 미소 지었당!’ ‘여긴 아이가 엄마한테서 벗어나려고 있는 대로 인상을 지었구나~’      



근데 1년 전의 사진에선 그런 재미를 찾기 힘들었다. 죄다 마스크를 쓴 통에 눈만 보였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사진이다. 코시국 중에 결혼식을 올린 부부에게도, 결혼식을 앞둔 신랑, 신부에게도 참으로 안타까운 시절이다. 지금도 결혼을 앞둔 이들은 마음을 졸이며 기도한다. ‘제발... 상황이 나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다 보면 상황이 나아졌을 때 식을 올리는 사람도 있고, H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식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만에 하나 거리 두기가 상향된다면 그대로 진행해야 할지, 연기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 테지만, 연기한다고 그때의 상황이 나아지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마음은 무거우리라.      



신혼여행은 또 어떤가. 이탈리아, 프랑스, 하와이 등의 인기 여행지는 생각할 수도 없다. 내 주위만 하더라도, 결혼하는 사람들의 95%는 제주로 떠났고, 나머지는 국내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갔다. 가면 또 어떤가. 코로나의 동태를 살피며 조심히 움직여야 한다. 결혼식은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다. 그리고 신혼여행은 결혼의 메인이벤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받으며, 새 출발을 알리는 인생의 중차대한 이벤트가 얼룩진다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다. 야속한 코로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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