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흑흑흑. 정말 죄송합니다. 담임 선생님이 확진이세요.”
아침 7시에 걸려 온 원장님의 전화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TV에서만 보던 일이 내게도 일어나다니! 거기다 나를 더 낭떠러지로 밀친 건 옆반 담임 선생님도 확진이란 사실이었다. 분명 어제 둘째는 옆반 선생님의 케어를 받으며 등원했는데... 이를 어쩌지. 확진자인 두 선생님과 시간을 보낸 세윤이가 확진자가 될 확률을 가늠해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만약 확진자가 된다면, 우리 앞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우리 애는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생각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복잡해졌다.
온 가족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지금껏 코로나 검사만 다섯 번을 받았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이토록 무섭진 않았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결과가 나온 시간은 다음날 9시 언저리였다. 막상 결과 문자를 받으니 마음은 수차례 팽창했다 쪼그라들었다. 핸드폰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고, 두 눈은 액정의 한곳을 매섭게 노려봤다. 세윤이도, 나도, 첫째도. 우리 가족 모두 음성이었다. 순간 신이 정말 존재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애타는 마음을 알아주신 거 같았으니까. 팽창과 꺼짐을 반복하던 마음은 다소곳해졌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2주 동안의 자가격리만 무사히 보내면 되었다.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그러나 격리 5일차에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따스히 비치던 8시 반 세윤이는 깨났고, 내 품에 안겼다. 거실로 나가자는 제스처를 취하길래 안고 나왔는데, 평소와 달리 맥이 없었다. 물을 달라기에 줬고, 벌컥벌컥 마시더니 소파에 철퍼덕 엎드렸다가 이내 내 품에 다시 안겼다. 기운을 차리지 못하던 세윤이는 구역질을 몇 번 하더니 구토를 했다. 내 옷과 세윤이 옷이 따스한 위액으로 젖어갔다.
"여보~ 여보~ 일어나 봐!!!"
그 사이에도 세윤이는 토를 해댔고, 맥없이 축 늘어진 채 힘없이 눈을 감았다. 내 눈동자는 한없이 흔들렸다. 몇 달 전의 상황과 같아도 너무 같았으니까. 저혈당으로 응급실과 입원을 몇 차례 해야 했던 그 상황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때 의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저혈당 증상이 보이면 주스나 사탕류를 먹이라고, 냅다 세윤이 입에 마이쮸를 넣었다. 애가 오물오물거리며 씹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5분도 안 돼서 마이쮸의 핑크빛이 그대로 위액과 함께 게워졌다.
"여보 안되겠어! 병원 가야겠는데?! 근데 자가격리 중에 어떻게 병원 가지? 병원에서 받아주긴 하나?"
신랑은 자가격리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일요일이라 근무 시간이 아니라는 또랑또랑한 여성의 멘트만 흘러나왔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1339부터 눌러댔다. 5분이 넘도록 연결은 안 됐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어렵게 연결된 상담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부천 보건소로 전화 걸라며 번호를 알려줬다. 보건소로 전화해서 담당자와 통화했지만, 담당 공무원과 통화한 후 전화 준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맥없이 누워있는 세윤이를 보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화 연결에 마음은 타들어갔다. 10분은 지났을까. 보건소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담당 공무원과 통화했고, 부천 성모 병원에 말해놨으니, 그쪽으로 전화 걸라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부천 성모 병원에선 다행히 우리를 받아주기로 했고, 준비하려면 20분 정도 소요되니, 20분 후에 자차로 병원에 오라고 했다. 그 사이 나는 온몸이 위액으로 얼룩진 세윤이를 대강 씻겼고, 나도 대충 씻은 후 짐을 챙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5분이 지나 있었다. 황급히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 간호사 한 분이 우릴 맞이했다. 자가격리실이 있는 뒷문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신랑과 첫째는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간호사와 음침한 뒷길을 걷다 보니 응급실 뒷문이 나왔다. 거기로 들어가자마자 왼쪽 방으로 우릴 안내했다. 자가격리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문을 두 개나 통과해야 했는데, 마치 비밀 연구소로 들어가는듯했다. 자가격리실 즉 음압실은 1인 병실과 모양새가 같았다. 병실 한가운데 침대가 놓여 있었고, 구석엔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아이를 눕히자마자 간호사가 들어와서는 내게 썬캡처럼 생긴 보호막과 가운 그리고 니트릴 장갑을 건네며 말했다.
"어머니! 방호복 입으셔야 해요!"
입고 나니 어색했다. 나를 쳐다본 세윤이는 사뭇 놀란 듯 눈이 커졌지만, 기력이 없어서 한번 흘겨 본 후 다시 눈을 감았다. 가져온 짐을 정리하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진행되는 검사와 치료에 대해 설명했고, 간호사는 옆에서 라인을 잡았다. 아이는 맥이 없어서 바늘이 살을 찌르는데도 울지도 못했다. 포도당 수액이 연결됐고, 수액 라인에 포도당 주사가 주입됐다. 할 일을 다 한 의료진들은 분주히 병실을 나갔다. 의료진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매번 방호복을 입고 벗었는데, 그 번거로움을 보자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의료진을 부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세윤이는 음압실에서도 두어 차례 구역질을 하다가 토를 했다. 그런 후 힘없이 다시 잠들었다. 1시간 정도 수액을 맞고 있는데, 의사가 들어왔다.
「혈당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1시간 후에 물 마시고 구토 안 하면 귀가해도 될 거 같아요.」
「근데 선생님 저는 이왕 어렵게 온 거 입원까지 해서 하루 이틀 증상을 더 보고 싶어요. 저번에도 집에 갔다가 반나절만에 다시 병원에 왔었거든요. 그때와 달리 지금은 응급실에 오고 싶어도, 음압실 자리가 없으면 올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죠.. 알겠습니다. 입원하도록 하죠. 음압 병실 자리는 있을 거예요. 그럼 코로나 검사 바로 진행할게요.」
음압 병실이기 때문에, 코로나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입실할 수 있었다. 병실에 올라가려니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진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자가격리자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마주쳐선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옆으론 병원 보안 요원이 붙었고, 사람들을 피해 구석으로 구석으로 돌아 병실에 도착했다.
병실은 생각보다 좋았으나, 병실 구석에 있는 음압기는 마치 대형 실외기가 방 안에서 거침없이 돌아가듯 시끄러웠다. 병실로 올라와서도 구역질을 하는 세윤이를 보자 의사는 입원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입원하던 두 밤 동안 아이는 잘 먹어주었고, 잘 자주었다. 컨디션도 돌아와 입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마지막 날 회진 때, 소아과 교수님과 주치의가 들어왔다. 그때 교수는 말했다.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어머니 정말 다행입니다. 옆에 계신 선생님이 잘 케어해주셔서 아이 상태가 좋아졌네요. 선생님이 수락해 주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이가 응급실에 올 수 있었어요. 만약 선생님이 거부했다면, 올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다른 지역에선, 자가 격리 중이던 어린아이가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마다 받아주지 않았어요. 요새 병원들은 자가 격리자를 받아주려 하지 않거든요. 그런 분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받아주신 것이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만약 거부 당했다면, 우리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주치의에게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연거푸 말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퇴원할 때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주치의 성함을 알아냈다. 이. 정. ○ 선생님. 평생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 한 문장이 떠올랐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전적으로 수긍이 갔다. 이번 일만 해도 그랬다. 보건소로 안내해 준 1339 상담원, 병원을 수소문해서 부천 성모 병원으로 연결해 준 보건소 담당자, 자가 격리자임에도 우리를 받아준 이정○ 의사 선생님, 아이를 적절히 체크하며 케어해준 간호사들. 그들의 분주한 손길로 우리는 아이를 지켜낼 수 있었다.
부모가 되어 매번 느낀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우리 가족만 아등바등 몸부림친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지금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선 많은 분들의 손길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부모는 아이를 지켜낼 수 있다. 물론 세상이 지금처럼 따스한 얼굴로 미소 짓기도 할 테지만, 때로는 자비 없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밀어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한 번 더 나아가고, 다시 온 몸에 푸른멍이 들도록 온 힘을 다해 헤쳐가는 게 부모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상황에 상처받고, 절망도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빛깔의 세상을 더 많이 만나게 될까. 그저 지금처럼만 미소를 지어준다면 우린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며 무럭무럭 자라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