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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절규는 무지외반증을...

워킹맘인 시절 출근하다말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적이 있다.

편한 상의와 하의,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는 푹신한 운동화를 신은 모습은 구질구질해 보였다.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고, 가죽재킷으로 한컷 멋 부리던 그 여자는 대체 어디 간 걸까.

점점 시드는 꽃처럼 초라해진 행색이 나를 작아지게 했다.


난 왜 이렇게 된 걸까.


엄마가 되면서 아이를 데리고 종종걸음으로 다니려면 편한 신발이 최고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과 살림, 육아에 치이며 치장을 할 여력도 나지 않았을뿐더러, 자연스럽게

멋보단 편안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엄마가 되어갔다.

그러나 그날은 내 모습을 놓아버려서는 안 되겠다는 비약이 툭 하고 던져졌다.

엄마라고 꾸미지 말란 법 있나.

아가씨라 여길 정도로 꾸며서 당당하게 어깨에 힘 팍 주고 다니겠다고 씩씩 거렸다.

선망에 이끌려 어느 구두 브랜드 매장 앞에 서 있었다.

들어갈까. 말까. 한참 서성이다 일단 구경만 하자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구두 가격들이 제법 있었다.

과도한 로망으로 주책을 떨고 있는 게 아닌지,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 머뭇거려졌다.

그럼에도 엄마라는 우중충한 날씨를 화창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구두를 장만하기로 했다.


매장 밖 여자 중 정장에 숄더백 하나 매고 뾰족구두로 포인트를 준 그녀가 그렇게나 멋져 보일 수 없었다.

나도 멋지고 세련되게 만들어줄 구두를 찾아내리라 두 눈에 힘을 주며 둘러보았다.

매장 중앙에 디피 되어 있던 검정 에나멜 뾰족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끈 리본이 앞부분에 달려 있었고, 구두 표면은 뱀가죽처럼 울퉁불퉁하며 광이 났다.

내가 원하던 품위와 우아함과 세련됨을 두루 갖춘 구두였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점원을 불러 치수를 말하고는 신어 보았다.

매장 안에서 또각또각 걸어 보았다.

예전의 내가 된 듯 주위가 화사해지며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당당히 걷고 있었다.

가격은 있었지만 나를 위해 장만했다.

그 길로 또각또각 발소리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구두 하나 신었을 뿐인데, 엄마라는 가면을 벗고 아가씨가 된 듯 살랑살랑거렸다.

그 날 이후로는 별일 없음 항상 뾰족구두를 신으며 레드카펫을 걷듯 우아하게 걸어 다녔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난 어느 날부터 엄지발가락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발을 살펴보니,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의 마법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팠지만 참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주문을 걸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점점.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고, 무릎까지 지끈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운동화를 신어 보았지만, 엄지발가락은 여전히 뻐근하게 욱신댔다.

바쁜 일상으로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오른쪽 엄지발가락은 계속 욱신댔다.

엄지발가락이 부러진 것이 아님에도 일상은 불편해졌다.

아이들과 걷다가도, 출근하다가도, 일하다가도 뻐근하고도 묵직한 통증으로 끝내 정형외과에 가게 되었다.

의사는 무지외반증이라고 말했다.


일상에 피해가 안 갔다면 수술을 외면했겠지만, 세 달 내내 신었던 구두로 변형된 엄지발가락은 반년 이상이나 일상을 콕콕 쑤시며 불편하게 했다. 겁은 났지만,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후 힘들었던 건 세 달 동안 무지외반증 수술 후 교정 신발을 신어야 했던 것이다.

통굽인 데다 발가락에 힘이 쓸리지 않도록 앞부분 밑창이 깎여진 채로 제작된 신발은 걸음을 뒤뚱뒤뚱거리게 했다.

하필이면 겨울이었기에, 1~2월에는 뻥 뚫린 교정 신발로 인해 비닐봉지를 둘둘 말아 양말을 신고 교정 신발을 신은 적도 있고, 소복이 쌓인 눈을 피하며 힘겹게 걸었던 때도 많았다.


마음에 드는 구두를 신은 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고역이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지만, 차곡차곡 내 뒤로 과거들은 쌓여갔고, 신발을 벗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신발을 벗는 순간 날아가는 듯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촉박한 출퇴근 시 마음처럼 빨리 걸을 수 없을 때, 눈이 내리던 날, 아이와 걷던 순간의 힘겨움들이 모두 벗겨졌다.

앞으론 절대! 뾰족구두는 신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팡팡 걸으며 집을 향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뾰족구두의 미련은 남는다.

고작 평범한 구두일 뿐이지만, 엄마이기 전에 여자가 되려는 그녀의 처절한 절규이며 몸부림이었고, 주문이었으며, 의식이었다.

또각또각 우아하게 걷는 순간은 엄마가 신데렐라가 되는 마법의 순간이기도 했다.

뾰족구두를 신지 못하는 내게 요정은 어떤 마법을 다시 걸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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