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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치과를 갔어야 했다

“으~~~ 아~~~ 악!! 꺼억~꺼억~으~악~~~~~”

진료실 안에서 아이가 악을 쓰며 운다. 오늘은 신경치료를 세 번째 받는 날... 하... 어른인 나도 신경치료가 싫은데 아이는 오죽할까. 앞으로 2~3번은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걱정이다.


세연이는 구강검진을 시기마다 성실히 받았다. 작년엔 42~53개월차 검사였다. 내가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있던 때였기에 신랑이 아이를 데리고 다녀왔다. 우식증 없이 깨끗하다고 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까지 치과에서 충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고, 양치도 열심히 했으니까. 올해는 54~65개월 구강검진이었다. 마실 나가듯 등원 전에 후다닥 동네치과를 향했다. 둘째를 안고 첫째를 킥보드로 태우고 가면서 구강 검진하는 치과가 동네에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두 아이 엄마가 되니 뭐든 멀리보단 가까운 곳에서 해결하는 게 편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윗니 세 군대에 충치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린이 치과에서 치료받는 걸 권유했다. 유아 치료는 아이가 온몸으로 바둥거리면 케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까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선 거리가 있는 어린이 치과에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게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미룰 수도 없었다. 사실 아이는 보름 전부터 이빨이 종종 아프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누워보라고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이빨 사이에 꺼무티티한 충치가 보이지 않았다. 나와 신랑 그리고 어머니는 아이가 피곤하거나 밥 먹기 싫어서 투정 부리는 거라고 여겼다. 워낙 밥 먹을 때마다 꾀를 부리는 애였기에. 우식증이 있다는 결과를 듣고 세연이의 말을 간과한 거 같아 죄지은 사람처럼 미안했다. 그날 중으로 아픈 이빨을 확인하고 치료하는것으로 참회하고 싶었다.


어린이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은 이미 두 달 후까지 차 있었다.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당일 접수를 해야 하고 대기는 기본 50분이란다. 일단 아이를 등원시킨 후 오후에 가기로 했다. 하원한 첫째와 둘째를 안은 나는 택시를 탔다. 다행히 세윤이는 내 품에서 바깥 풍경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별 탈 없이 치과에 도착했다. 치과는 밖에서 본 것보다 규모가 작았다. 문을 열자 커다랗고 새파란 흔들 말 장난감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카운터에는 커트머리에 안경을 쓴 둥글둥글한 인상의 코디네이터가 앉아 있었다. 예약을 못하고 당일 접수로 온 것이므로 최소 50분은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대기실 옆에는 한 평정도 되는 놀이방이 있었다. 때 마침 어린 여자애가 언니 같이 놀자며 세연이에게 다가왔다. 세연이는 쑥스러우면서도 거침없이 놀이방으로 들어가 동생과 놀기 시작했다. 어느새 아이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도 뒤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다. 치위생사가 다정하게 안내하자 아이는 부끄러운지 히죽 웃으며 진료 의자에 누웠다. 천장에는 헬로카봇이 틀어지고 있었다. 세연이는 두 손을 입에 갖다 댄 채 신기하다고 수줍게 말했다. 곧이어 의사가 왔다. 여의사의 목소리는 나긋하면서도 단호했지만 친절했다. 검진하면서도 "세연이 너무 잘한다! 씩씩하네. 여기 아프겠다. 조금만 참자! 선생님이 얼른 끝내줄게! 너무 잘하니 대견하다!”라고 쉬지 않고 말했다.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에 아이는 하라는 대로 잘 따랐다. 엑스레이 찍을 때도 투정 한 번을 안 했다. 오히려 난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아 나간 상태였다. 진료실에서 나온 아이 손에는 분홍색 하트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선생님이 씩씩하게 잘해줬다며 선물로 준 거라고 의기양양하다.


결과 설명을 듣기 위해 우리는 상담실로 안내됐다. 아이를 검진했던 여의사가 들어왔다. 근데 의사 입에서 뜻밖에 말이 나왔다. 충치가 심하며 신경치료를 최소 네 군데는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두 군데는 염증이 깊게 퍼져 있는 거로 짐작되어 신경치료가 한 번으론 안 끝날 수도 있다고 했다.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분명 1년 전 구강검진시 충치가 없다고 했고 오늘에서야 충치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온 건데, 1년 사이에 이렇게 심해질 수도 있냐고 물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내 목소리는 다소 격양되었다. 의사도 의아해했다. 이지경이었으면 1년 전 구강검진시 진단해주셨을 텐데라고 말을 흐리다가 아이 이빨은 어린이 치과로 오는 게 정밀하게 체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망연자실한 채 대기실로 안내받아 코디네이터에게 치료 과정과 금액 등을 설명 들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신경치료를 최소 4번 이상은 해야 한다는 말에, 신랑 반차 사용 여부도, 아이가 견뎌줄지도 걱정이었다. 내가 너무 안이했나. 난 그저 구강검진 결과를 믿었기에 1년 사이에 어린이 치과 방문은 생각도 안 했는데... 혼이 나가 있던 내 옆으로 치위생사 한분이 가지런하게 이빨이 보이는 공룡인형을 가져와 양치하는 법을 알려줬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진 어른이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양치할 때는 위에 어금니까지 꼼꼼히 닦여야 하기에 아이를 눕히고  엄마 눈에 아이 윗니가 다 보이도록 각도를 맞춘 후 이빨 결에 따라 양치질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리곤 따뜻한 물로 입안을 헹군 후 어린이 치실을 사용해 칫솔로 걸러내지 못한 음식 찌꺼기를 제거해주라고 설명했다. 마무리는 물로 헹궈주면 된단다. 치실도 생각 못했고, 아이 양치는 눕혀서 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내 머리를 치는 거 같았다.


세연이는 다행히 두 번째 치료까진 치과 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오늘은 치료 잘해서 어떤 반지를 받을지 설레어하기도 했다. 근데 세 번째 치료부턴 안 가겠다고 바닥에 누워 울고불고 난리였다. 치과에 올 때도 가기 싫다고 시위하다 징징거리는 아이를 신랑이 안아 차에 태웠고, 대기실에서도 진료실에 안 들어갈 거라고 간이벽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고래고래 울부짖었다.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간신히 진정시키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다시 귀청이 떨어져라 울기 시작한다. 자기는 절대로 진료 의자에 눕지 않을 거라고! 치료 안 받을 거라고! 집에 가고 싶다고!! 피 튀길 듯 울먹였다. 시간이 지연되자 치위생사가 내게 말했다. "어머니 치료를 안 할 순 없으니, 저희가 강압적으로 하는 건 싫으실까요?" 10분은 소요된 터라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우는 애가 달래 질 거 같지도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치위생사는 진료 의자 옆에 달려있는 거대한 망을 가리켰다. 아이 몸을 감싸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데 오늘은 사용해야 될거 같다고 괜찮냐고 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치료는 해야 하고 치료 시 아이가 몸을 버둥거리면 위험하니까.


나는 세연이가 진정될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에게서 떨어지려 했지만 악을 쓰며 내 옷을 놔주질 않는다. 마음이 찢어진다. 그럼에도 단호하게 나와야 했다. 뒤이어 처절한 울음소리와 고함이 들렸다. 얼마 후 세연이가 진정됐다며 들어와도 좋다는 안내를 받았다. 어찌 된 일인지 둘째가 자기가 치료받는거마냥 고래고래 울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이 대신 들어갔다. 엄마가 들어갈 거라 생각했을 텐데... 곧이어 아이가 울며불며 악다구니를 쓴다. “으~~~ 아~~~ 악!! 으~악~~~ 꺼억꺼억~으악~~~” 앞으로 두세 번은 더 와야 하는데  암담하기만 하다


얼마 후 치과에서 6년 동안 일했던 지인에게 물어봤다. 치과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자기가 다녔던 치과는 구강검진을 대강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정신이 가루로 으스러지는 순간이다.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거 같아 아이를 볼 면목이 없었다. 동네 치과를 가면 됐지. 굳이 어린이 치과를 가는 건 유난 떠는 거라 여겼던 나였다. 단 한 번이라도 왔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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