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십 중독 아빠와의 평화 협정(1)

우리 가족의 사랑의 언어, 함께하는 시간!

by 금머릿

“엄마, 제발 아빠 좀 어떻게 해 줘!”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있노라면, 자주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막내 딸아이의 외침이다. 한두 번 들은 소리가 아닌지라 나는 한숨을 훅 뿜는다. 그리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서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남편을 외쳐 부른다.


“여보오~!”


그러면 남편의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귀 기울이지 않아도 안다. 어째서 이제는 아빠에게 뽀뽀해 주지 않느냐는 불평, 아빠는 그냥 네 옆에 앉았을 뿐인데 왜 싫냐는 불만, 이러면 아빠는 어디서 위로를 받냐는 호소...

이쯤 되면 한쪽 머리가 지끈거린다. 큰아이 사춘기 때부터 해오던 이야기를 오늘도 해야 하나 싶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스킨십을 꺼리는 시기가 되면, 부모는 아이를 팔로 안아주는 일에 절제를 발휘해야 한다. 물론 집집마다, 아이마다 상황이 모두 같은 건 아니다.


큰아이 중학교 시절, 아빠의 포옹이 고민이었던 아이가 친구와 나눈 대화를 슬쩍 엿들은 적이 있었다.

“너희 아빠도 맨날 너 끌어안고 그래?”


그랬더니 친구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아니. 넌 좋겠다. 난 우리 아빠가 나 좀 안아줬으면 좋겠어.”


그 문제로 친구와 한참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아, 다 같은 건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 집, 세 아이는 너무도 비슷하다. 큰아이가 불편을 느낀 그 나이 즈음에 둘째가 그랬고, 비슷한 시기에 막내가 그러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아이들의 표현에 의하면) 끌어안아 버리는 아빠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며 아이들은 호소한다. 특히, 집 밖에서 마주쳤을 때,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목을 끌어안고, 온몸을 끌어안는 아빠의 포옹은 숨이 막히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민망하다는 거다.


밖이라서 싫다는 말도 못 하고,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저 아빠가 만족할 때까지 참고 있어야 한다. 그때 아이들의 두 귀가 빨개지곤 하는데, 그토록 곤욕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나 역시 숱하게 목격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편도 아이들도 짠하기 이를 데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빠의 포옹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했던 아이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빠보다도 더 세게 아빠를 끌어안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꾸만 미간을 일그러뜨리고 “아빠, 제발...”을 읊조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빠가 싫은 것은 아니라는 걸, 그저 숨 막히게 안는 방식이 불편할 뿐이라는 걸 나는 알겠는데, 남편은 자꾸만 상처를 받곤 한다.

“여보, 이제 아이들이 컸으니까 팔로 안아주기보다 말로 안아줘야 해.”


남편 역시 모르지 않는다. 매번 ‘알았다’고 응대하는 남편이다. 그러나 좀처럼 끌어안는 방식이 바뀌질 않는다. 이 짠한 불편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아빠를 미워할 리 없다. 그러나 아빠의 방식만을 고집하다가 정말로 미워하는 마음이 싹 트면 어쩌나, 고민이 됐다.


그러다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공동체에서 해본 적 있는 ‘사랑의 언어 테스트’!

이것은 게리 채프먼(Gary Chapman) 박사의 ‘5가지 사랑의 언어’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테스트이다. 사람마다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이 다르다는 단순한 진리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사랑 표현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의 저서인 <5가지 사랑의 언어>는 1992년에 출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며, 부부 상담뿐 아니라, 친구 관계, 부모 자녀 관계에도 두루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심리학계에서도 ‘실용적 도구’로 자주 언급된다고 하니, 위기 앞의 우리 가족에게 딱 필요한 도구가 아닐 수 없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