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 사랑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큰아이에게 가끔 문자를 보낸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옷은 따뜻하게 잘 입고 다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안부를 묻기 위해서다. 그 문자를 자기 전에 보내게 된다면, 문자의 마무리는 늘 정해진 내용으로 갈무리한다.
‘잘 자, 사랑해.’
여느 다른 집처럼 우리 집에도 독특한 루틴이랄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전에 꼭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00야, 잘 자, 사랑해.”를 말하면 아이들도 똑같이 “엄마, 아빠, 잘 자, 사랑해.”로 응대한다.
다섯 가족이 안방에서 모두 함께 잘 때도 그랬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자는 지금도 우리의 인사말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 말이 오가야, 마침내 하루가 마무리되고 우리는 스르르 잠들 수 있다.
이 습관적 인사를 언제 처음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시작했는지는 분명했다. 어느 육아 전문가가 말했었다. “아이들에게 하루 세 번 사랑한다고 고백해 보세요.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라날 거예요.”
그 시절, 우유 광고에서 흘러나온 문구도 늘 뇌리에 맴돌던 때였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면 하루 세 번....”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나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한다. 그러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당연하고도 쉬운 일이라, 뭐 대단한 일인 것처럼 조언하고 권장하며 유난을 떨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양육의 현장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나는 그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가끔 얄미운 행동을 한다. 어느 때는 하도 말썽을 피워서 감정적으로 쉽게 안아주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성적으로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쉽사리 안아주지 못할 때가 있음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럴 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습관은 그 감정의 벽을 깨는 작은 망치가 된다. 좀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조금은 퉁명스럽게나마 습관적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고 나면, 정말로 그 마음이 온 가슴을 서서히 적시는 일이 일어난다.
물론 그러한 신비가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막내 아이를 호되게 야단친 날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가끔 휘몰아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퍼부을 때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잘 자, 사랑해’라고 인사하며 아이를 재워야 하는데, 도무지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질 못했다. 결국 이렇게 말해버렸다.
“오늘은 엄마가 사랑한다고 말할 기분이 아니니까, 그냥 자.”
그날 아이는 울음이 그치고 나서도 그 잔향이 남았는지 자꾸만 흐느꼈다. 무섭게 혼낸 엄마가 미울 법도 한데, 내 팔에 꼭 붙어 잠을 청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잠들기 직전에라도 사랑한다고 말할 걸, 너무도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