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피아노, 7만 원 내고 버렸다

by 금머릿

피아노를 팔았다. 아니 버렸다. 나와 함께한 세월이 30년이 된 피아노는 국내 브랜드 제품이었고, 30년 전 약 300만 원에 부모님이 사주었던 악기였다. 중고 피아노를 ‘판매하고 싶다’는 문의에 나는 바로 퇴짜를 맞았다.


“요즘 수출이 전혀 안 되고 있어요. 5년 지난 국내 브랜드는 돈 내고 버리셔야 합니다.”


단돈 몇만 원이라도 받고서 처분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웬걸, 오히려 수거 비용을 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조금이라도 더 금액을 쳐주는 곳을 고르려던 나는 조금이라도 싸게 비용을 매기는 업체를 찾아 이리저리 수소문해야 했다.


업라이트 피아노(가정용, 학원용)의 무게가 대략 200kg 정도이니, 내가 직접 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구청에서 대형폐기물로 신청하고, 스티커를 발부받으면 약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상당의 비용이 발생한다. 그럴 경우, 스티커를 출력해서 붙이면 되지만, 문제는 지정 장소까지 그것을 옮기는 일이 만만치 않은 과제로 남게 된다.


처음 신혼집으로 실어 올 때부터, 옮기는 일에 참 애를 먹었다. 승강기가 없는 주택 2층으로 피아노를 옮기느라, 사다리차를 불러야 했던 기억이 난다.


승강기가 있는 아파트로의 이사 때도 그리 수월치 않았다. 피아노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사 비용은 늘 추가되곤 했다. 그뿐인가, 거실에 놓았던 것을 이 방, 저 방으로 옮길 때마다 이불을 깔고 밀고 끌며 남편과 내가 흘린 구슬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업체를 부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말았다. 수거 비용 아끼자고 다치고 병원비 드느니, 그게 더 현명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막상 버리기로 하고 수거 기사를 기다리자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연주하는 동안 누렸던 즐거움이 적지 않았다. 또한 새록새록 돋는 추억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련했다. 내가 쓰던 악기를 세 아이와 함께 연주하며 놀 수 있어서 좋았다. 온 가족이 피아노 주변에 둘러앉아 함께 노래하던 시절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선명히 빛을 발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 동네 언니에게 집에 있는 피아노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너무 배우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배울 수 없었다고 했다. 딸은 피아노 학원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의 배움을 위해서 값을 치르는 게 부담이 된다는 언니였다.


나는 그녀에게 기꺼이 무료로 피아노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악기가 있고, 교재가 있고, 배울 사람과 가르칠 사람이 있으니,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우리의 수업은 약 1년간 지속되었고, 언니는 체르니 100번 정도까지 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고 우리의 수업은 중단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다시 수업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사이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집에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미안한 시대가 되었다. 관리사무소에서는 ‘피아노, 기타 등 악기 연주가 이웃에게는 소음이 될 수 있으니 가능하면 연주를 삼가 달라’는 방송을 자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하루 1시간 정도 서툴게 연습하는 소리가 1년간 지속되었어도, 단 한 건의 민원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끔 생각나서 잠깐 연주를 해도 방송이 울린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늦은 시간, 서툴게 연주되는 악기 소리가 얼마나 귀에 거슬리는지는 나 역시 겪어서 잘 알고 있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늦은 시간’이라는 조건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거다. 늦은 시간뿐만 아니라, 낮이어도, 어느 시간대여도 악기 소리가 싫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는 어느 주민의 손글씨가 쓰인 종이가 붙었다. ‘정확히 몇 호인지는 모르겠지만, 악기 소리가 자꾸 들린다. 아마도 리코더(피리) 소리인 것 같은데, 너무 견디기 힘드니 연주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문구를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빠져나왔다. 리코더라면 아무래도 초등학생이 연주한 것일 텐데, 학교에서 연습해 오라는 숙제를 내주지 않았을까 싶다. 낮에 연주되는 리코더 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곳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숙제를 해야 할까. 마음이 답답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 편히 연주할 수 없는 악기는 집 안의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피아노를 팔 거라 결심했지만, 아이들이 가끔 연주한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차였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책 등을 정리하다 보니, 비로소 결심이 섰다. 이제는 피아노를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고. 더 미루지 않기로 했다. 결국 팔지는 못한 채, 7만 원을 지불하고 보내야 했다.


수거를 맡은 기사의 손길에 따라 옆으로 위태롭게 세워진 피아노를 보면서 가슴이 짠했다. 마치 나의 소중했던 추억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비눗방울이 된 것 같았다. 잘못 건드리면 펑 하고 터져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두길 잘했다. 보내지만 잊고 싶지는 않았다. 민원이 들어올 걸 각오하고서, 마지막으로 열심히 연주했다. 연주하지 않은 시간이 긴 만큼 손가락이 굳어 있었고, 만족스러운 연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는 사라졌지만, 거기에 얽힌 소중한 추억만큼은 오래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웃의 삶의 소리가 더 이상 미안하지 않은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https://omn.kr/2hflg

작가의 이전글난 키우지 않았다